나의 노후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미련하기도 하고 느려서 그게 잘 상상이 안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이 노후다.
불과 이 십여년 전에 나는 갓 스므살이 넘어 사십대를 상상을 할 때.
늙어서 파파 할머니가 되어 그 때 죽는 나이라고 상상했다.
다행히 나는 아직 안죽은 사십대다. 지금은..
어릴 적 그 예언같은 예상을 또 이 십년 후를 달려볼까.
아마 울 아들 장가가서 오늘 애덜 학교를 보냈는 데..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 글쎄
아직 이 눔이 안왔데요? 이러면
난 허허..니 애비가 날 그렇게 속썩이더니 이젠 대대손손 그러네..이해해라..그거 다 지나간다...흐흐..
우리 때는 뭐가 이랬고. 저랬고 그렇고 그런 애길 경노당이든 나의 집 안방이든 아니면 아퍼서 어느 요양원에 낡은 침대에
누워서 오늘 죽을까. 낼 죽을 것인가? 고민도 분명히 할 것이다.
나라가 사정이 좋아지면 연금도 팍팍주고, 편리한 문명은 더욱 발전 할 것이고
백년을 제발 살아주세요 꼭!!! 이런 문구가 들어간 국민수명연장 캠페인도 예상이 된다.
즐거운 노후는 우리가 상상하는 바로 그 행동속에 숨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아직 오지 않은 불행을 시름시름 걱정한다.
그렇다고 눈뜨고 일어나보니 갑자기 이제부터 노후라는 시대는 절대 일어 날 수 없다.
즉 우리가 지금 노후가 되기 전, 노전에 대한 삶의 방정식은 전무하게 배우지 못했다.
老前
젊음이라고 할 수 있고.주름하나 없는 팽팽한 얼굴을 만들기 위해서 듬뿍 에센스를 바르는 시간을 말한다.
우리가 이 시간을 영원히 소유하며, 향유하며 누리며 살 것을 그 누가 주장하겠는 가?
아직 오지않은 늙음을 늘 불안하게 초라하게 바라보게하는 것은 따로 있다.
늘 바쁘게 살아야 사는 것 같은 원리, 즉 돈만 벌다가 은행에 부지런히 수없이 드나들다가 나중엔 저축만 하다가, 죽을 땐 두둑한 생명보험금만 많이 유산을 남겨줘야 하는 공식을 합법화 했다. 좀 억울한 것은 그저 좀 없는 게, 못 배운게, 잘난 자식들이 홀대하는 것도 좀 참아주는 것도 미덕이라는 것을 배워두어야 한다. 늙어서 참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단다. 미래는 내일이 아니다. 즉 앞으로 앞으로 자꾸 나아가면 둥글게 만나지는 지구도 아니다. 거기에서 살고 지고 별 게 아닌 것들이 전부인 삶의 샘이 무궁하게 돌고 돌아 오는 길이 미래다. 좋고 나쁨이 꼭 구분되어지는 것이 왜 노후에 꼭 필요하게 하는 지. 그것은 그 때가서 따져 보고 새로운 잣대를 개발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미리하는 걱정은 노후가 아니다. 팔자라면 또 모를까.
우리들은 지금 아직 노후가 아닌 노전이다.
노전에 사는 법도 할 일도 아직 배우지 못했는데
노후에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빨리 늙으라고 종용을 당한다.
은퇴도 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파노라마 풍경처럼 지나가는 행인 하나. 들처럼.
왜?
정말 누굴 위해서 종을 치는지.. 이젠 확인해도 탈이 날 군부시대도 아니다.
무엇때문에 우리는 한 곳에 머물고 그 곳에서 오래토록 존재해야 함을 거부당하는 것일까?
한 번 제대로 묻고 싶다. 그 누군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