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이던 팔십이던 평균수명과 내 수명은 하등의 상관이 없었다.
오늘 죽을까 심하게 골머리를 재고 촘촘하게 스케쥴은 짠다고 해도 내 운명이고
내 팔자였다.
시어머니가 나에게 그랬다.
" 그래..너도 너같이 똑같은 며느리를 얻어서 살아봐라..."
후후..
지나고 보니 울 시어머니와 같은 며느리가 나였다.
게으르고, 멋대가리없고, 통박 잘 굴리고. 여차하면 심한 건망증핑계로
모든 애경사를 싹 무시하는 처사를 예외없이 부려 먹었었다.
물론 지금도 갈까 말까 묻지도 않는다.
나를 불러 세워서 또 그 애기를 꺼내 실 필요가 없으실 것이다.
본보기는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두고 두고 잊을 만하면 또 일어나는 일들이 늘상이었다.
과거는 잊은 사람들은 편안한 인생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단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잊었는데, 그 상황이 똑같이 나에게 벌어진 다는 것이 업이라고 했다.
자업자득!
누구에게 탓을 덤으로 씌울 재주가 없다. 비록 속도는 느리게 아무도 모르게 침입하는 것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데서 뭘 교훈하고 체신을 차린다든가. 치레를 한 다는 것은 거추장스럽다.
울 어머니는 그대로 당신의 업을 지금 이고 앉아 계신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며느리, 즉 자식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 정정당당하게 당신 아들을 남편으로 데리고 같이 사는 여자. 그 여자의 눈치를 언제부터 살피고 계셨다.
사정이 바뀌는 것은 팔자처럼 언제가 될 지 아무도 모른다.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