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네살이 된 나의 딸은 아직 시계를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한다는 것은 맹인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것과, 앞의 둥그런 시계를 보면서도
작은 바늘이 가르키는 숫자를 큰 바늘이 가르키는 분침을 전혀 모른다.
벌써 몇 년을 이걸 두고 나는 혼자 끙끙 댈 수 밖에 없는데.
열받으면 뚜껑이 열린다고 하던데.
그 말이 처음엔 도시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딸내미가 매 번 오늘은 몇 칠이야? 무슨 달이야? 요일이 뭐야?
지금 몇 시야를 반복 할 때.
미치고 팔짝 뛰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뚜껑이 열린다고 할 것이다.
장애아를 두고 있는 부모 마음이 다 그럴 것이다.
언젠가는 가장 정상적인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고.
비록 느리더라도 내 인내심의 한계를 금긋게 하고 기다리게 하는 뚝심같은 것을 길러야 자식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어쨋거나 나는 언제 딸내미가 시계를 보고 친구와 약속을 했다고 준비를 하면서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내려 무사히 그 친구를 만나는 과정까지를 원한다.
남들에겐 당연한 일상인데.
나는 이 당연한 일상 중에 한 부분인 때와 장소를 구별하지 못하는 딸내미 덕에 아동심리학이라는 학문에 책에 정보에 두루두루 섭렵을 한 덕인지. 느는 건 그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자. 재촉하지 말자, 나보다도 지가 더 갑갑하고 답답할 텐데...
다른 또래의 여자 애들은 뭘 가르칠까 어느 학원에 보내네 마네 하고
요즘 여름방학에 영어를 더욱 강화시켜서 학습능률을 올려야 된다고 방송이고 주위고 그 공부의 열기는 나날이 강도가 높아간다.
우리 딸내미는 그런 곳에서 무풍지대인 곳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집에 탁상시계와 안방에 접시시계 하나하고 마당에 두 마리 고양이 이름짓기에 골몰한 딸내미 등을 바라보고 있는 게 여름 내내 소일 거리다.
아침에 나에게 뺨 부비고 오는 인사는 최대의 오늘의 선물이다.
그런데 오늘은 벽 중앙에 접시시계를 손을 들어 가르키며.
엄마? 지금 일곱시 오뷴이야?
오! 오! 이게 무슨 말인가?
매일 아침마다 시계 앞에서 하는 지금 몇시야 하던 아이다.
그런데 정확히 시와 분을 말한다.
나는 와락 안고 뽀뽀를 하면서 난리가 나듯이 마당에 있는 남편을 불러대었다.
우리 영은이가 시계를 볼 줄 안다고 또 돌아보면서 영은이가 눈만 껌벅 껌벅 거리며
지금은 일곱시 십분이지? 그제야 또 접시시계를 보니 정확히 일곱시하고 큰 바늘이 2자에 향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 그래 내가 너무 조급하게 기다린 거다.
그냥 남보다 더 늦게 또 다르게 성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 다잡고 다진 그 몇 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이그 아이그 울 딸..이젠 친구들하고 몇 시에 만나자고 약속해도 되겠네...
응 근데..엄마 난 시계 읽으면 치킨 사준다고 했잖어?
뭐? 내가 그랬나... 기억이 안나네.
아! 그래도 시계읽은 기념으로 통닭 한 마리 튀기고 피자 한 판 구어달라고 해야지.
이 더운 여름은 이렇게 지내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