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잇어야 돈이 필요한 법이다.
필요한 만큼 가져서 쓰고 남으면 쓰레기 버리듯이 유산을 남긴다.
돈의 개념이 반드시 주체가 누구냐인지.
돈의 주인을 이야기하면 도대체 무슨말인지 헷갈린다.
여하튼 지금 무엇때문에 일을 하시는 가? 에 대답을 구하다면
십중 팔구는 돈을 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 부터도 이게 돈때문에 사는건지. 돈을 위해서 사는건지 당최 가늠이 안가는데.
시어머니와 갈등을 어떻게 푸냐고 점집에 기백만원들여 굿을 한다고 했더니
그 무당이 그러더란다. 그 돈 만큼 같이 여행을 가본 적이 있냐고?
물론 없다. 맨날 누가 더 잘했나 못했나 따지다가 십수년 흐른 고부지간이 이 땅에 거진이다. 사이좋은 고부지간이 흔하지 않듯이 돈도 제대로 쓰고 모으는 생활인도 흔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잘났냐? 그것도 아니고..
그래도 이런 것은 아니다 싶다. 보험금을 노려 부모를 살해하고, 돈 때문에 일가족이 탄 자동차가 바닷속에 첨벙 뛰어들게 하는 그 무모한 용기들은 전혀 다른 괴물같은 결과이다. 언제까지나 돈 돈 하면서 돌 지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늙어 결국 죽는 날까지의 비용만 벌 뿐이다.결코 아낀다고 해서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줄어들어 손해를 봤다고 울상 지어도 끝엔 처음 올 때 똑같이 손으로 간다.
덥다. 더운 여름에 전기요금으로 술 술 빠져나가는 기름으로 돌아가는 에어컨 없으면 못 산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도 정작 에어컨 없어도 탱자 탱자 잘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네들은 무엇이 없어서 못 산다고 더워 죽겟다고 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여름은 있어야 되고 햇볕이 지금처럼 쨍쨍해야 벼도 익고 과일도 익어 더 맛이 잇어지는 과정이다.
내 몸도 더워 난리인데 벼는 아예 뒤집어져 화상을 입어야 이삭이 팬다.
이렇게 벼를 패게 할려면 열풍기 몇 천만데를 돌려야 한다. 그러니 그보다도 단 한개의 열을 공중에 매달아 놓고 익히는 저 태양은 누가 돈 주고 사지는 못한다.
이렇게 생각해도 저렇게 생각해도 여름은 길어야 몇 칠 더 있으면 저절로 서늘해진다.
이제 에어컨 온도도 일도를 내리면 그만큼 아껴진다는 애긴데.
나는 이래 저래 넒은 그늘을 가진 정자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삼백대의 애어컨이 자연으로 불어 나오는 바람을 만날 수 있다.
옛날 놋대야에 깊은 우물을 길러내 탁족을 즐기던 자리다.
머잖아 가을이 온다.
그 가을에 지금 몸을 데펴가면서 크는 누런 곡식을 기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