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오는 우기엔 드디어 발동을 건다.
그냥 비오는 마당을 내려다보며,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각각의 빗방을들을 모두 한군데에서 흘러 조금 낮은 곳으로 굴러가고 있다.
해마다 난 장마를 제대로 겪어 보지 못한 것 같다.
늘 수해에 홍수에 떠내려가는 것을 테레비로 근처 금방 넘실거리는 둑근처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저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애기가 아직 다 못한 애기들이 함꺼번에 쓸려서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을 때, 아! 나도 저렇게 어디에서 살다가 난데없이 비가 되어 쓸려가겠구나 했다.
장마가 지나고 난 후 파리떼들이 몰려왔다.
우리집에서 한 십분쯤 걸어가면 있을 돼지키우는 축사에서 사는 파리다.
난 약국에 가서 찐드기 쥐잡는 약을 산다. 가끔 얼빠진 생쥐들이 들러붙기는 하는데. 그보다 더 몇 천배의 파리들이 사뿐히 잘 앉는다. 오른쪽으로 우회를 하다가 또 수직 비상을 꼭 헬리콥터처럼 뱅뱅 돌더니 비행장에서 신호를 보낸 것을 받은 것처럼 사뿐히 앉는다. 그것이 마지막 파리의 비행이다.
발바닥에 붙은 찐드기는 절대 떠나지 않게 붙들어 맨다. 실로 약효 아주 효과적이다.
그렇게 한 번에 오는 검은 비처럼 온통 파리들의 마지막 비행들이 찐드기에 고정 되어 박제가 되어 가고 있다. 한 여름내내 울 안에는 파리들이 웅웅 거리는 소리에 꼭 손전화 진동하는 소리보다 더 위협적이다. 제발 절 떠나게 해주세요... 이런 소리다.
난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매몰차게 외출을 하려고 한다.
나도 어디에 가서 돈을 벌어야 하며, 그리고 하루의 수확을 위해 저공비행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모른다. 찐드기 처럼 나의 발목에 착착 감기어 오는 것이 있을 줄 모르니 잘 살펴 봐야 되고,
아니면 냅다 근처에서 나 죽어라 뛰는 백미터 단거리육상 선수처럼 줄 곧 종종대어야 하는 시달림을 겪어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 줄 모른다. 파리목숨이나 사람목숨이나 별 다를 게 없다고 한 거 그거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오늘은 나 혼자 술을 마시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의 술 친구들은 모두 서울에서 모두 고공비행을 아주 잘하고 살기에 나와 마주 할 틈이 없단다. 사실은 그게 아니고 그들이 나를 잊었고 나 또한 그런게 아주 자연스럽다고 할 정도다. 별 이익도 주지 못하고 연이 닿았다고 해서 사회적인 지위높이는데 아무 소용 없는 나다. 그러니 그저 누구의 노래처럼 술 잔을 마주하는 혼자는 되레 편하다. 그런데 이 놈의 소주가 영 물에 탄 것 마냥 싱겁다.
한 때 개구리들이 울어 대는 로고의 소주는 그래도 내 염장을 쓰게 다스려주더만, 인제 그게 아니다. 어찌 된 일인가? 했더니 순도를 낮췄다는데.. 술의 성격을 낮게 했다는 말인데. 이건 변절한 애인마음이다. 누구의 입 맛에 아주 간간하게 맞춰서 개발 했다는 건데. 영 술맛이 안난다. 하긴 술맛도 변하는 세상인데 사람도 못 변하면 병신이지...
집에 가야지.. 그려 나를 위해 열심히 파리들은 찐드기에 꼼꼼하게 도착 해 있을테고.
그래도 바로 죽지 못하는 목숨의 색, 즉 검은색의 눈빛들을 보러 가야 한다.
나도 아직 성분도 모를 찐드기에 보이지 않게 매여진 동아줄이 있어 질 질 끌려다닌 적 있을 것이고. 그냥 속이 상하다고 내 밷는 말이 더 가볍다. 그래야 후련하다.에이 이젠 소주 안 마실련다. 죽은 파리에게 꼭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