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을 잡고 웃다가도, 어느새 흐르는 눈물을 닦아낸다. 어떤 극적 효과도 없는 다큐멘터리지만, 이 영화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재주가 있다. 재일조선인을 다룬 영화 <우리학교>다.
이 영화는 '우리 학교'라 부르는 일본의 '조선 학교' 아이들의 모습만 철저히 따라 간다. 그들의 모습만 담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에는 관객 모두 눈물 맺힌 눈으로 엔딩 크레디트를 바라본다. 그만큼 그들의 삶이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일본의 '홋카이도 조선 초중고급학교' 다닌다. 이곳은 '조선 학교'다. 조선 학교는 일본의 재일조선인들이 세운 학교다.
해방 직후 재일조선인 1세들은 일본에서 살아갈 후손들을 위해 자비로 책상과 의자를 사들여 버려진 공장에 터를 잡아 조선 학교를 세웠다. 처음 540여 개가 넘던 학교는 일본 우익세력의 탄압 속에 이제 80여 개의 학교만이 남게 되었다.
'조선? 조선 학교? 그거 빨갱이 아니야?'
대부분의 사람은 '조선 학교'란 말을 들으면 조총련과 친북 단체만 떠올린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에게 '조선'은 역사 속에나 등장하는 옛 나라이다. 그리고 아직 그 명칭을 쓰는 쪽은 '북조선'의 용공세력들로만 생각한다.
이 영화의 김명준 감독은 우리의 이런 색안경을 벗겨준다. 벗으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그 색안경을 부셔버리지도 않는다. 아주 친절하고 조심스레 벗겨준다. 관객들은 그저 여과 없이 보여 지는 조선 학교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웃고 울기만 하면 된다.
거침없이 웃겨준다. 전혀 지겹지 않은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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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튜디오 느림보 |
| 이 영화의 총 상영시간은 131분이다. 2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다. 다큐멘터리를 2시간 넘게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관객들은 우려한다.
'2시간 동안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까?', '혹시 지루하지는 않을까? 진지한 이야기라 너무 무겁지는 않을까?'
하지만 이런 우려는 갖지 않아도 된다. 이 영화의 총 촬영 기간은 3년 5개월. 이렇게 긴 기간 동안 감독은 학생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모습을 담았다. 편집 기간도 1년 6개월이다.
그만큼 알짜 영상만 담았다. 많은 장면을 담기 위해 전개도 빠르다. '빠져 든다'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 영화 시작 후, 십분 정도만 지나도 관람 전의 우려는 사라진다.
'아이들의 넘치는 힘' 때문일까? 그들의 모습만 보아도, 줄곧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홋카이도 초중고급학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다. 한 학년 당 약 20여명의 학생이 있다. 어린 초등학생부터 제법 어른 티가 나는 고등학생까지 모두 모여 있다 보니, 이들의 삶은 항상 에너지가 넘친다.
고3 누나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온 몸에 그림을 그리고 엽기적인 춤을 추는 초급 4학년 남학생의 모습, 학생들의 서툴고 어설픈 우리말을 듣다 보면,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전혀 과장되지 않은 웃음. 그저 학생들이 귀엽고 대견해서, 절로 나오는 진정한 웃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 학교에 다니는 대부분 학생들의 국적은 '조선'이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상징적인 '조선'이다. 해방 후, 곧 통일이 되리라 믿었던 이들은 '남한'도 '북조선'도 아닌 '조선' 국적을 택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무국적자가 되었다.
이런 문제로, 일본 내에서 이들의 생활은 힘겹다. 조선 학교는 '각종 학교'로 분류되어 일본 정규 교육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대학 진학은 물론 취업하기도 힘들다. 일본 우익 단체들의 협박이 있는 날이면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불침번까지 선다. 북한으로 졸업여행을 가면서 남한에는 가기 힘들다. 남한에서는 이들을 같은 민족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영화 같은 일들이 이들에겐 현실이다.
[장면1] 뜨거운 여름, 축구부 학생들은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훈련을 한다. 전국 대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거리에 쓰러져 가며 마라톤 풀코스 훈련도 불사한다. 2회전에서 만난 팀은 홋카이도의 강팀.
맨 땅 운동장에서 먼지가 뿌옇게 날 정도로 뛴다.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뛰지만, 결국 그들은 지고 만다. 지고 난 이 후, 선수들은 땅바닥에 누워 울기 시작한다. 머리까지 삭발 하고, 결의를 다졌지만 결국 그들은 지고 말았다. 일어서지 못해 땅에 머리를 대고 바닥을 뜯으며 한참을 운다.
이들에게 경기에서 이기고, 전국대회에 나가는 것은 보통의 다른 고등학교 축구부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다. 자신의 명예나 학교를 위함이 아닌, 재일조선인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재일동포들에게 큰 힘이 된다.
그래서 이들은 교체 선수도 많지 않은 상황에도, 필사적으로 뛰는 것이다. 그리고 지고 나면 동포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누구보다도 많은 눈물을 흘린다.
[장면2] 고급 3학년 학생들은 북한으로 졸업여행을 떠난다. 남한으로 가려면 대사관에 허락을 받는 등 복잡한 절차가 있기, 때문에 줄곧 북한으로 간다. 북이든 남이든 이들에겐 고국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만경봉호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올 때, 반갑지 않은 손님이 마중을 나온다. 일본의 우익단체 회원들이 만경봉호의 입항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학생들은 저고리 위에 체육복을 걸친 후에 간신히 항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익단체들이 조선 학생들이 교복으로 입는 저고리를 찢어 버린다던지, 일본 사람들이 '조선인은 바퀴벌레만도 못한 놈'이라며 멸시한다는 언론의 보도를 종종 접한다. 이 장면을 보면 멀게만 느껴졌던 그들의 모습이 확 와 닿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없어져버린 '조선' 국적을 택한 이들의 아픈 실상이다.
영화에서 '우리 학교' 학생들은 자주 운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심히 가혹한 인생의 짐을, 그 사회와 환경이 지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학생들이 활짝 웃고 있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렇게 해맑게 웃기 위해, 이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우리 학교 학생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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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튜디오 느림보 |
| 대한민국 국민 중, 사라진 나라인 '조선' 국적을 가진 동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 없다. 그리고 그들이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학교를 세우고, 일본인들의 갖은 핍박을 견디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 영화는 이런 무관심에 대한 경고다. 그것도 아주 친절한 경고.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여과 없이 그들의 삶을 보여 주고 '그동안 우리가 이들에게 얼마나 무관심 했는가'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우리가 '재일조선인'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동안, 그들은 일본에서 우리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학교를 세웠다. 그 학교의 아이들은 우리말보다 일본말이 더 편하면서, 또 조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면서도 '조선은 내 나라, 내 조국'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자식에게 미국의 국적을 선사해주기 위해 원정 출산을 하고,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우리 국적을 포기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 보면 이런 사람들 보다 지금 이 재일조선인들이 더 우리나라 사람 같다.
"조국의 태양은 달라요, 거기 사람들은 눈빛도 달라요. 치마 저고리를 입고 있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아요."
조국 방문으로 북한 땅을 찾은 아이들은 발보다 먼저 손을 땅에 가져다 댄다. 태어나 처음 찾은 반쪽짜리 고향, 아직 아이들은 나머지 반쪽인 남한 땅을 '만져본 적'이 없다.
'조선'이 익숙한 아이들은 곧 하나 될 '우리나라'를 믿고 있다. 하나 될 '우리나라'를 믿기에, '우리 학교'에 다니며, 일본말 '오카상' '오토상'이 아닌 우리말 '어머니', '아버지'란 말을 쓴다.
통일된 한반도의 이름은 무엇이 좋을까?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우리 학교'가 있는 '우리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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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국회로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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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국회 시사회 개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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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에서 <우리 학교> 시사회가 열렸다. 독립영화 시사회라 그런지 객석을 채운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라 별 관심을 갖지 않던 관객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대부분의 관객이 눈물을 흘렸다.
관객들은 엔딩 크레디트가 끝까지 나올 때까지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결국 무대 인사를 준비 중이던 김명준 감독은 언제 무대로 올라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관객들은 "기대 안 하고 봤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며 극장을 나서는 순간까지 영화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감동이 고스란히 국회까지 전해질 예정이다.
오는 26일 오후 6시 30분 의원회관 1층 대회의실에서 <우리학교> 시사회가 열린다. 이번 국회 시사회는 민주노동당 천영세, 이영순 의원과 민주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한국독립영화협회가 함께 개최한다.
이번 시사회에서는 영화상영 뿐 아니라 최근 재일 민족학교 인권유린 문제 관련한 지구촌동포연대의 보고와 김명준 감독과의 대화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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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현(kimkui)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