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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 이책
오늘도 나는 그놈의 성질머리를 죽여야 했다. 노처녀 히스테리 부린다고 할까 봐. 히스테리의 어원을 살펴보니 자궁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히스테라에서 나왔단다. 그래서 자궁을 갖고 있는 여자는 늘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살아간다나! 나는 <돈 잘 버는 여자 밥 잘 하는 남자>, <굿바이 굿 걸>과 함께 아침이슬이 여성문제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한 <자궁의 역사>를 찾아 들었다.
라나 톰슨이 쓴 <자궁의 역사>는 자궁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중심으로 서구문명사를 조망한 책이다. 자궁이 여성과 여성성을 상징하는 즉자적인 기관이라면 ‘자궁의 역사’는 최소한 ‘인류 역사의 절반’에 대한 혹은 ‘인류의 절반의 역사’에 대한 통찰이다.
톰슨은 우선 성서와 의학·철학·사회학을 넘나드는 풍부한 문헌과 도판을 근거로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궁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탐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결론은, 자궁의 역사는 한마디로 의학·종교·과학이 왜곡한 여자의 문화사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지만 자궁은 여자의 몸 내부를 떠돌아다니며 질병을 일으키는 골칫덩이, 뒤집혀진 음낭, 심지어 똬리를 튼 뱀같이 생긴 징그러운 생물체의 서식처로 이해(?)된다. 인체 해부를 묘사한 그림들로 의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다빈치조차도 혈관이 유방에 연결되어 있는 자궁을 그렸다.
자궁이 고정된 인체기관이라는 것이 밝혀진 17세기 이후, 자궁에 대한 오해와 왜곡은 여성에 대한 비하로 발전한다. 루소는 여성은 남자의 쾌락을 위한 도구일 뿐이므로 남자의 화를 돋우지 않도록 입속의 혀처럼 굴어야 한다고 했고, 몽테스키외는 아름다운 여인은 이성이 없다고 했으며, 칸트 역시 여자는 이성이 없으며 설령 이성을 가졌다 해도 남자들에 비해 추상적 사고능력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저자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자궁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현대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간의 무지와 오해와 왜곡이 의학 지식과 기술을 독점한 의사들의 소외와 간섭으로 바뀌었을 뿐 자궁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종의 생각 실험을 제안한다. 아담이 이브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면? 아담의 원죄 때문에 남자들이 여자를 임신시킬 때마다 전립선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는 운명을 타고 났다면? 전립선을 자극했을 때 이상한 액체를 방출하는 남자는 누구든 고문하고 사형에 처하는 의식이 전 유럽에 퍼져 있었다면? 남자들은 생식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앞서 말한 다빈치의 그림은 물론 소라누스가 그린 고양이 머리 모양의 자궁 등 여성의 생식기에 대한 인류의 이해(또는 오해)를 살펴볼 수 있는 삽화들과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 등이 실려 있어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데도 책은 많이 팔리지 않았다. 친구끼리 돌려 읽었다면 몰라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자궁을 가진 여자든, 자궁을 못 가진 남자든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자궁에 대한 무지와 오해와 왜곡과 소외의 역사를 보면서 떠오르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충실해 보기를 권한다. 올해 초 모 주간지의 ‘교양 돋보기’라는 지면을 통해 이 책을 논한 J씨처럼 ‘여성의 몸을 열등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남성 권력의 시각’을 읽어 낼 수도 있고,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왜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도 있고, 여자의 몸에 다이어트와 ‘섹쉬함’을 강요하는 폭력에 눈뜰 수도 있고, 이제껏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알고 분노로 몸을 떨 수도 있을 것이다. 해볼 만한 모험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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