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 나 빵장사 할까?
기본 주제방 2006/11/17 18:27   http://blog.azoomma.com/ifg01/236645

우리동네에 한 이십년동안 붕어빵만  일년 열두달을 구워서 장사하는 아저씨가 있다.

그러니 울 아들이 지금 열다섯살이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오로지 붕어빵을 구워서 판다.

 

 자리도 리어카에  오래된 옛날 붕어빵 무쇠틀이라  지금 나오는 붕어빵보다 한 배는 더 크다. 거기다가  천원에 여섯개이고 이게 이십년전이나 지금이나 갯수는 변함이 없다.

 나는 오랫동안 사 먹었다고  브이아이피라며 한 개 더 준다. 아들과 함께 가면 또 하나 얹어준다. 미래의 붕어빵 고객이라면서.

 

 붕어빵이 커서 두개만 먹어도 배부르다. 하긴 맞은 편에 잘나가는 제과점도 있는데. 이 가게는 두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더불어 간판도 이름도 두 번 바뀌었는데. 간판도 없는 붕어빵 아저씨는 그렇게 이십년을 한결같이 장사했다.

 

 제철은 겨울과 봄이지만 여기는 사계절 열두달 다한다. 그래선가 돈이 없는 분들도 싸게 천원한장 요기를 할 수 있고, 온가족이 하나씩 먹어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그 맛이 한결같게 이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가만히 보니 아저씨가 직접 반죽과 단팥을 쑤어서 만든다는 것이다.

 

 여전히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손님을 맞는다. 장사가 잘되든 안되든 상관이 없다.

이렇게 오랫동안 지켜보던 아들이 느닷없이 나에게 묻는 것이다.

 

 " 저 아저씨 부자야?"

" 왜?"

" 가난하면 붕어빵장사 하다가 안되면 후딱 없어지던데, 저 아저씨는 오래 하시쟎아?"

 

 그것도 일리가 있긴 있다. 늘 그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도 어느정도 뒷받침을 해줘야 되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조금 아름 아름 알아보니 붕어빵 장사하면서 자식들을 성가시켜 모두 분가시켰단다. 그리고 어느정도 기반이 되어  그 장사터를 아예 샀단다.

 

 이젠 장사를 안해도 될 수있는 넉넉한 분인데.

그래도 일년내내 붕어빵을 구어 판다는 게 예사롭지 않았던 모양이었나보다. 아들에겐...

 

그러더니 어느날 나에게 그런다.

"엄마! 나도 빵만드는 거 배울까? "

"어디서?"

"알아봤는데 기술학교에 입학해서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있더라?"

" 그려..."

 

 내심 나는 불안했다 . 언젠가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자신의 진로를 고민했었나 보다. 그런데 하필 왜 빵이냐? 했더니.

 

 나도 빵을 좋아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한가지 기술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취업도 잘안되는 대학까지 갈 돈도 사실은 아깝단다. 차라리 그 돈으로 우리동네 붕어빵 아저씨처럼 빵 실컷먹고 구워팔고 좋잖어?

 

 말 들어보니 그렇긴 하다. 프랑스에선 빵만드는 명장이 죽으니까 국상을 치뤄준 얘기를 했다. 천연누룩으로 사십년간을 오로지 빵만 만든 명장인데. 나라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헬기띄워 장례식을 생중계를 해주는 것을 얘기 해줬더니 아들눈이 반짝 거린다.

 

" 그럼 엄마! 나도 붕어빵 장사를 오래 오래 하면 나라에서 알아주는 거여?"

 

 누가 알아주는 게 문제가 아니다. 임마?

니가 무었을 하느냐가 아니고 너를 위해서 뭐를 할 것인가? 뭐그런 거지.

 

조금 철학적이기도 하지만 이런거는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요즘 수능시험에 시달리는 학부모들의 얼굴을 나는 많이 본다.

그들의 수척해진 얼굴뒤에 늘 불안한 대입수난이 그늘이 되어 있다.

물론 모두가 다 치뤄야 하는 의무교육은 아니면서도 의례 한 번은 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문제다.

 

 교육혁명은 절대 그냥 오지 않는다.

사실은 교육이라는 게 결국 나 자신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면 수단이  되어야한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특히 지금의 대입을 우선적으로 실행되는 평준화는 천재도 바보로 만드는 제도다. 여기에 어깃장을 놓고 싶다. 전부 일렬로 줄 세워 보내는 교육을 받은 분들 중에   부동산투기를 일삼아하는 세대가 되고 있다.

 

 월드컵 축구를 응원하기 위해서 칠백만이라는 응원단들이 과연 누구들인가?

절대 교육관은 없다. 가치관도 돈에 의해서 하루에 수십번 변덕부리는 칠색조가 부럽지 않다.

이런 세상에 몇 십년 우려먹은 현재의 교육으로는 우리들의 미래는 암울하다.

 

딴지걸이는 반드시 소수부터 시작된다.

내가  잘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도 거리에 낙옆과 쓰레기 치워주는  환경미화원이라고 말한다 한들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직업은 그 사람의 생명을 걸고 평생을 사는 것이다.

이런 존엄성을 배제한 오로지 성공과 실패를 생산하는 현재 교육의 횡포에 신경질을 낸다. 학부모로서. 부모로서.

 

조만간에 아들이 붕어빵을 팔지, 제과기술을 배울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그럼에도 나는  너는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누구도 대신 해주지 못하는 인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