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임상실험을 하는 학부모다.
그것도 나의 아들과 딸이 실험대상이다.
이렇게 말하면 인권침해하는 부모로 보일 줄 모른다.
현재 나의 아들은 중학교 이학년이다.
이 아이는 한 번도 학원에 간 적이 없다. 딸도 마찬가지다.
중학교에 입학 할 당시 영어는 알파벳도 몰랐고 선행학습이나 예습은 전혀 무관하다.
그렇다고 집에서 공부를 하는 아이냐? 아니다.
참고로 집에는 인터넷도 설치가 안된 집이고, 더불어 피씨도 없다.
아이들 장난감도 게임기도 비디오도 디비디도 전혀 설치 되어 있지 않다.
테레비도 유선방송을 설치 하지 않아서 국영방송과 교육방송만 나온다.
이것도 밤 아홉시가 넘으면 보지 못하게 한다.
아이들에겐 아직 휴대폰도 주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는 피씨도 13세이후로 사용하게 해야 되며. 만 17세가 되면 자신의 방에 피씨를 설치해주면 적절하다고 본다. 나의 아들은 17세에 컴퓨터를 사기 위해서 지금도 하루 천원꼴로 저축을 한다. 이제 시작이지만 끝은 결국 나중에 자신의 방에 컴퓨터를 살 일이기에 기꺼이 돈을 모은다. 아들에겐 어렵지 않은 훈련이다. 이것은 기다리는 훈련도 병행한 것이다.
나의 두번째 훈련은 바로 책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라거나 시키는 일은 잘 못한다. 입을 열어서 몇 번 지적을 해보면 그 지적사항만 즉시 해결 될 것이고, 그 나머지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부모의 마음데로 진행되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즉 시키는 것만 잘하고 그 나머지는 본인은 선택도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책읽기였다.
부모가 된 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식이 많은 책을 읽기 바란다는 것은 일종의 욕심이다.
그것도 다른 아이들은 무슨 책을 읽었네, 몇 권을 읽었네, 또 어디에서 상을 받았네등 비교를 해주면서 지적을 해주는 책만 앍는 경우이다. 이런 형태의 책읽기는 매번 엄마의 선택만 기다리지 자신의 책고르기 세계는 자꾸 좁아진다. 나는 그래서 일종의 방목을 하는 것처럼 늘 도서관에 몇 만권의 책꽃이 앞에 세워놓고 나는 나데로 나의 관심분야를 뒤적거리는 것을 보여 주었고, 아들은 아들데로 나를 보고 그 행동을 따라했다. 일종의 모방을 하게 한 것이다. 이 학습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언제든지 도서관은 무한정 이용할 수있는 기관이다. 그러니까 부모가 돈이 있던 없던 아무 상관없이 무료로 일년 삼백육십오일은 늘 열려 있는 곳이다. 나는 이 현장을 체험하게 하면 그만이고, 일일히 무엇을 읽었냐 몇 권을 읽었냐 묻지 않았다. 다만 아들은 나에게 질문을 한다. 그 질문에 대답 할 수 있는 대화를 한다면 책읽기는 성공적으로 시작이 된 것이다.
아들이 한 번은 나에게 그런다. 학원에 가는 아이들이 많단다. 그것도 시험을 앞두고 밤세서 공부를 하거나 잘 놀지도 못하고 문제지를 몇 권풀고 그러는데도 자신과 같이 시험을 보면은 점수는 같단다. 무엇이 질문요지인 지 난 알아 듣는다. 아이들 세계에선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별개로 점수화되는 실력들이 그대로 돈을 벌고 있는 부모에게 전달이 되어야하는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팔고 논팔고 대학까지 가르쳐서 사람 만든게 아니고, 돈을 누구보다도 더 잘 벌고, 아니면 일찍 출세를 하여 성공적인 기성인이 되려면 일단은 점수는 높게 확보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중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심지어 고등고시니 즉 나라일을 하는 공무원들 시험지에도 등장하는 애기다. 중요한 것은 이젠 교육은 어떤 사람을 참 좋은 인성을 길러내기위한 교육이 아니고 누구보다도 더 우월하게 가장 맨 먼저 앞서서 먼저 기득권을 획득하게 하는 교육이 거진 태반이다.
고시원은 그렇다치고 일반 도서관에서도 온통 나라에 취직하기위해서 고시공부하는 학생들이 십중 팔구이다. 대학에 박사과정까지 밟은 소위 인재들이 취업을 못해서 팡팡 노는 나라가 유일무이하게 대한민국이다. 사교육비도 전세계적으로 지출 순위 일위다. 이런 돈을 내보내지 못한다고 가정주부가 아이들 학원비 번다고 파출부에 노래방 도우미에 생업전선에 나선 부모들이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러니까 이게 다 자식들 교육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다.
독수리 아빠며, 기러기 아빠들이 있는 나라. 그럼에도 그렇게 가르친 자식들이 부모에게 정말 고맙다고 알아주냐도 아니다. 존속살해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일어나는 우리나라다. 예의가 있었고, 홍익인간이 살았던 나라에서 이런일을 지금 겪고 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이렇게 일이 꼬이고 교육다운 교육은 모두 다 어디로 숨었나 이젠 찾아 볼일인데. 이 술래잡기는 바로 우리들이다. 즉 자식이 없던 있던 우리들은 모두 후손을 위해서 이 지구를 온전하게 지키고 남겨 줄 의무가 있다.
나는 아마 나의 아들이 성장해서 성년이 되도 학원이나 선행학습이나 예습을 종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인생이 미리 배워서 익혀 점수따서 죽은 조상에게 보여 질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아들도 나에게 점수로 대변되는 인생공부를 그것도 제일 중요한 성장기에 사지선다형에 시험지에 시달리면서 사는 것은 원치 않는다.
나는 일등이라는 말과 꼴등이라는 말은 같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면 모두 일렬로 같은 대학에 들어가는데 뭐하러 순위를 매기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정 하고 싶은 게 잘못 배운 습관이나 인식들을 수정하고 선행을 한다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