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호지 문을 바르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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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며, 다른 허접스런 일은 다 해주는데. 남편은 유독 창호문은 바르지 않으려고 한다. 쌀쌀하게 아침저녁 바람이 선선 해질 무렵부터 얼른 창호문에 발라야 한다고 재촉한다.
나는 또 오랫동안 드나들었던 지물포에 간다. 거기서 창호문에 바를 한지를 고르고, 풀도 준다고 하는데 그냥 놔두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가에 이제 막 피어나는 코스모스에. 희게 구겨져서 피는 무궁화들이 보라색 젊은 갈대사이에서 마구 피어나고, 중간 중간 포인트처럼 말아 올라간 파란 나팔꽃이 파란 하늘을 꼭 빼닮았다.
될 수있슴 조금 기다리다가, 꽃 잎좀 말려서 흰 창호문에 코스모스에 푸른 잎사귀로 치장을 하고 싶은데, 꾹 참았다. 분명히 씨를 맺혀 다음 가을에 또 피울려면 꽃을 따면 안된다. 저절로 바람에 흔들리다가 혹시 떨어진 것이 있을까 하고 바닥을 보았지만. 꽃그늘만 넓다.
밀가루에 물을 풀어서 천천히 저어대니 몽글 몽글 풀로 엉겨 간다. 될 수있슴 묽지도 되지도 않을 간간한 끈기로 풀을 쑤어대니. 괜히 열무김치에 풀 쑤어서 금방 익힌 보리밥을 한그릇 먹고 싶다.
식게 평상에 내어놓고, 그래도 그동안 모기장을 달아 놓은 창호문을 하나 하나 떼어 마당에 나란히 세워놓고, 빗자루로 쓸고 털어 여름내 하루살이들이 쌓여 있는 무덤도 털고. 먼지도 털고 언제 달라 붙었나, 거미가 집을 지을려고 하다가 성급히 마당 한가운데로 툭 떨어지니, 어지간히 놀랐나 보다.
아이들이 이제 막 마당에 들어선다. 책가방을 마루에 집어 던져놓고, 서로 바른다는 창호문지 위에 풀을 바른다며, 손으로 부드럽게 감촉을 느끼나 마구 원을 그리면서 휘저어대도 창호문이 둥글게 풀에 번진다. 한장씩 한장씩 젖은 체 창호문을 바르면서 나는 입에 한 가득 물을 물고 있다가 푸우 푸우 하니, 옆에 딸내미가 재미있어 보이나 그것만 한단다. 해보니 그냥 물이 입에서 줄줄 새니 재미있나, 키득 키득 웃기만 한다.
마르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꼭 여름이 바싹 바싹 말라서 평평해진 창호문이 된 것 같다. 곧 이어 바깥에 누가 오면 잠망경처럼 확인하는 문구멍을 만들려는데 작년에 사용했던 작은 유리가 찾아도 없다. 그놈의 건망증에 어디 잘 두었다고 써 놓아야하는데, 하긴 써놓은 것도 못찾아 둘다 잊어버린 게 한두번이 아니다.
할수없다. 비닐로 된 스카치테이프로 작게 손가락굵기만큼 통로를 뚫고 마르면 덧대는 수가 있긴 있는데. 그래도 아쉽다.
이왕이면 하얀 종이에 코스모스며, 마른 잎사귀 몇 장 구텅이에 장식을 해보고 싶은데. 그래야 내년 겨울에도 그 화려한 계절을 보고 잊지 않을 것 같은데. 항상 창호문을 바르면서 늘 그게 걸린다.
지난 세월을 건망증에 걸려서 어디에 있을 줄 모르고 늘 찾아 다니게 하는것도 그렇고.
창호지문을 바르면 나는 늦게 더디 오는 늦가을을 기다린다. 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