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여자는 반드시 일상에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결혼하지 않아도 어쩌면 우리가 전부로 알고 지낼 수도 있는 것.
사랑과 섹스는 별개로 알던 말던
오래 된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대대손손 이어져 오는 것.
지금은 채널을 하나 돈 주고 사면
하루종일 여자의 몸이나 남자의 몸을 상품처럼 사서 볼 수 있는시대이다.
당연한 합법적인 절차로 이어져 오는 것이
무슨 마라토너들의 바톤 잇기처럼 전달받는 그 느낌들을
우리는 이젠 너무 많이 본 탓에 식상을 해버렸다.
그래서 좀 더 새로운 거 없나 뒤지고 다니는 마니아가 된다.
나는 섹스를 애기하고 싶지 않다.
누구나 다 하고 아는 애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섹스와 관계 된 또 다른 이야기를 연구해 보고 싶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종교이다.
특히 삼대종교이던 이대종교인던 간에
나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바로 기독교이다.
나의 어머니는 지금도 철저하게 교회를 다니시고, 권사이시며, 이글과는 무관 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나의 사유에 대해서는 전혀 별개임을 알린다.
나 태어나기 전보다 몇 백년전부터나 몇 천년전부터이던 간에 지금은 그 시대를 좀체로 느낄 수가 없다. 가까이 두고 본 다한들, 나에겐 너무 먼 애기다. 하긴 어떤 교수도 자신의 어머니가 찬송가를 부르면서 새벽기도를 드리러 가는 그 뒷모습에, 가까이 두고 당신 모습을 그리워 한다는 것은 그 어슴푸레하게 지워져가는 뒷 모습뿐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나도 그럴지 모른다. 그럼에도 무수한 궁금증은 나에게 숙제처럼 남겨졌고, 늘 머릿속 한구텅이에 모순처럼 양육되는 것이 바로 나의 종교관이었다.
신은 없다고 주장하던 니체에 관한 책도 아직 열어보지 못했다. 처음엔 배반하는 느낌으로 다가오더니, 나중엔 그건 기정사실이다라고 할 수 있는 배짱으로 난 니체를 만나지 않았다. 제정신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나의 오만한 판단에 자꾸 못 박고 못을 박아 길을 만들어 버릴 작정일 수 도 있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과 나의 삶에 절대로 낄 수없는 절대적인 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무엇이던 덤비고 할퀴고 반드시 적을 만들어 선과 악의 두축을 이용한 종교의 가장 상식적인 옹졸한 논리에는 넌덜머리가 날 정도인데.
거기에 날마다 거의 매시간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우격다짐하는 공세에 난 오히려 그 주장이 우상이라고 하고 싶었다. 날마다 우려 먹는 쇠꼬리 곰탕처럼 희뿌연한 맹탕같은 교리들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는게 나는 아연해진다.
그럼에도 오늘의 양식이 말씀이라는 말에 난 더욱 기가 막힌다.
사실 성경의 원조는 수메르신화를 각색한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성령의 역사라는 작가가 지금도 역사하시어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스테디셀러라고 하는이도 있는데, 이건 모르는 말씀이다. 스테디 셀러는 성경이 아니다.
그 신화를 신격화하고 성직자의 입맛에 시대별로 각색하여 만든 것인데.
차라리 모르면 영혼을 팔지 말던가 그러지. 아직 세상에 멀쩡하게 살아 있는 각각의 생명들을 자신들의 잣대로 지옥을 보내, 천국으로 갔어 하는 서슴없는 행태는 버젓하게 벌어지고 있다. 참말로 죽은 예수가 기절하여 다시 까무러쳐도 이해가 안되는 일을 하고 있는 곳이 바로 기독교의 세계관이다.여기에 예수는 절대 없다. 관여하지 못하고, 브랜드처럼 이름만 빌려주는 형태, 일종의 하청업자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할까.
특히 나는 미국의 기독교의 윤리관을 혐오한다. 가장 도덕적이며, 가장 거룩한 척을 잘하는 정치인들 전부가 이 기독교인들이다. 특히 유태인들이 즐비하고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 태반이 이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뒤로는 전쟁을 팔아 평화를 사야된다고 하는 논리를 펼쳐 활개를 치고 있다. 이것도 아주 전문적이다. 그들은 이런 논리를 어디서 배웠을까. 바로 성경에서 매일 예배드리며.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찾으라 하면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두리라 하면 열릴 것이다 한 성경구절에 맞춰 그들은 막무가내로 신대륙을 발견한 즉시 겁탈하듯이 인디언들을 말살시켰으며, 땅을 도륙했고, 수백만마리의 물소들을 자취도 없게 만들었다. 콜룸부스는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고 침략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기독교의 교리였다. 창세기에 자연과 더불어 사람과 잘 지내라는 말이 아닌 만물을 잘 다스려라. 누가 바로 이 기독교인들에게 명령을 했으니. 죄의식없이 마구 저질러도 나중에 회개 한 번 하면 눈과 같이 희게 되리라는 교리는 틀림이 없게 만들었다. 이런 행동은 지금도 여전하다. 우리나라에 온 미군들이 우리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우리는 열거하지 않아도 다 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일이라고 여전히 아멘아멘하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전쟁을 하는것이 특기가 되었다. 만일 진짜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들은 예배제단에서 불살라졌을 것이다. 너무나 가증스런 것이니. 내 이것들을 모조리 태워죽일 것이라고, 아니면 내이름을 팔지 마라고 했을텐데.
몇 년전 천주교에서 한 성명문을 교황이 직접 발표했다. 자신들이 삼백오십년전에 죽인 갈릴레오를 다시 복귀한다고, 즉 갈릴레오는 아무 잘못이 없으며, 그가 말한 원리 즉 태양주위를 지구가 돌고 있다는 그 논리를 인정한다고 했다. 이런 사실은 신은 인간이 필요해서 만든 어떤 선전 수단이며, 신에 의한 이름으로 그동안 저질렀던 그 숱한 전쟁과 죽음도 잘못 한 것이니 민큼 천주교는 이에 사과를 드린다는 거와 같다.
문제는 갈릴레오같은 사람들이 자꾸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죽어가면서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하던 그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자꾸 생기고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부정하고 싶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만 하면 목숨을 살려 준다는 종교재판의 회유에도 결국 죽음을 택한 갈릴레오가 삼백오십년후에야 한교황의 사면과 같은 조치로 종교의 권위는 말씀이 아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종교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지 몽매한 의식들을 일깨우는 역활을 담당하는 역활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권력반, 종교반으로 뒤섞여 있는 현대의 종교는 경멸한다. 이젠 자본주의까지 덮쳐 아전인수격이 되었다.
나라가 미국에 팔리던 말던.
우리 목사님이 지금 비행기를 타고 가니 가는 길 잘 보살펴 주시고.
전도가 잘되어서 교인이 한 없이 늘어 날 수있게 복을 더해주시고
조금 있으면 아들 수능이니 점수가 잘나와서 좋은 대학에 갈 수있게 도와주시고
..................,
좀 더 열거하면 이거 무당이 한 사람을 위해서 굿을 하는것보다 더 역겹다.
무당은 차라리 드러 내놓고 복을 간구하며 화를 막아준다는 차원이지만
기독교는 신의 이름을 빌어 거의 사정하다시피하는 애절하게 구걸하게 한다.
이런 기도는 참 잘한거라고 칭찬도 해준다.
무엇이 참 기원이었던가,
가장 기복적이고 늘 거지같이 매달리게 한 지금의 기독교는 쳐다보고 싶지 않다.
가장 근엄한 얼굴로 사람들의 영혼을 노략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아 내 영혼이 천국이던 지옥이던 그 선택에 늘 종종 대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요구한다.
도대체 어디로 갈 것인가를 선택하라고 한다.
갈릴레오가 죽음을 마주하고 과연 이런 문제를 고민했을 것인가.
그레도 지구는 돈다는 마지막 유언은 여전히
아침에 해뜨고 저녁에 달뜨는 우주를 만났기에 과감히 그들과 맞섰다.
나도 한때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의 어정쩡한 태도에 화가 나기도 했다. 자책감에 시달려 그들에게 오히려 주눅이 들기도 햇다.
그러나 어쩌랴...
날마다하는 섹스는 죄가 아니더라도.
잘못된 인식으로 범벅이 되어 포로가 되버린 나의 하루는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 누구를 십자가에 끌고 데려 갈 것인지
그들은 늘 노심초사하고 있슴을 고발한다. 이 자리를 빌어서 치사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