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안계시지만...아버지가 살아계실때는 집안일에는 별루였어요...특히 밖에는 한없이 착한 사람...법없이도 살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어 다닐정도로
넘 착하셨지여...
그런 아빠랑 엄마는 자주 싸우셨어여...집안일에좀 도와달라고 말이죠...
사실 별거 아니거든요...주부들 어디 큰거 바라고 도와달라고 하지 않잖아요...
울 어버지는 양촌리 학운리에서 이장일을 7년정도 보셨는데...70년대 초 박정희대통령시절에 항창 새마을운동을 벌였잖아요...그시절부터 아빠는 집보다는 밖에서 동네를 위해 열씸히 하셨어여 (위의 사진이 항창 이장일을 하시면서 찍은 사진이랍니다 왼쪽에서 두번째 사진입니다)
이장일을 보시면서...동네사람들이 와서 도와달라고 하면 발벗고 도와주시고 보증도 서고... 울 엄마의 한숨과 일때문에 많이도 고단해 하셨거든요...
울 엄마의 친정일때문도 많이 힘드셨는데...분가를 해서도 힘들었고 늘 고단의 연속이었답니다...
명절날이 되면 울 엄마의 잔소리가 더 시작이 된답니다...이것좀 해라...저것좀 해라...작은방에 불좀 넣어주라...방문에 창호지를 붙여라...ㅎㅎ 암튼간에 어릴적에 저의 기억은 그랬어요...
그래도 명절날 울 엄마가 해주신 엿이 가장 기억이 납니다...아주 어렷을적에는 보일러가 없던 시절이어서 가마솥에 불을 지펴서 지냈거든요...
가마솥에 엿을 반나절 정도 고아서 만든 엿을 쌀 뻥튀기에 뭍여서 먹는 그맛은 정말 기가막힙니다
밖에서 파는 그런 맛과는 차원이 틀리죠...
시골에서는 집밖에 나가보아야...서울처럼 빵집이 있기를 하나...햄버거가 있기를 했나요?
저희 시골에서는 이런 엿이나...떡이 간식거리는 저희에게는 최고였죠^^
특히 엿을 만든 명절전날은 방바닥이 정말 찜찔방처럼 넘 뜨거워서 밤을 제대로 잔적이 없었어요...
그래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이렇게 행복한 추억거리를 생각하게 되나봅니다.
지금도 사실 그리워요...울 엄마가 해주신 엿이나...떡...너무나 그립거든요...이제는
연세도 드시고 많이 힘들어하시기때문에...생각조차 하질 않지만...정말 그립네여~
사실 예날분들은 남자는 밖의일...여자는 안의일을 구분을 정확히 했던것 같애요...근데 요즘...시대에 보면 ...밖에서 일만 잘하는 남자는 매력없잖아요...세상이 많이 바뀌고 여자들도 사회에 진출하다 보니까...이젠 집안일도 서로 각자 나누어서 현명하게 많이 하는 것 같아 좋은징조 인것 같애요...정말 바른 명절문화가 이루어져서 정말 명절날만 되면 온동네가 행복해서 들썩들썩 했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