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는 듯 잘 모르는 밥 잘짓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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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 좋은 쌀이란, 밥으로 지었을 때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차진 맛을 주는 쌀이다. 이런 쌀은 척 보았을 때 윤기가 흐르고 반투명에 가까운 빛깔을 띄며, 알갱이는 약간 작고, 그 중심에 불투명한 흰색 심이 없는 쌀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쌀이라도 보관을 잘 못하면 제 값을 하지 못하게 된다. 뒤주에서부터 쌀 냉장고에 이르기까지, 쌀을 최적 상태로 보관하는 핵심 기술은 낮은 온도와 통기성인데, 쌀통은 볕이 들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는 것이 좋다. 쌀통에 마늘을 통째로 넣어 두면 쌀벌레가 잘 생기지 않고, 사과를 넣어두면 쌀의 신선도를 좀더 오래 지킬 수 있다. 숯은 잡 냄새가 섞이지않게 하고 습기가 배어드는 것을 막아준다.
보통, 막 구입한 쌀은 여름엔 2주, 겨울에는 1달 정도가 실온에서 보관해도 좋은 기간이고, 냉장고에서는 3달 정도 처음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쌀이 떨어지면 불안해서 못 사는 게 한국 사람의 심리라고 하지만,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한 최고의 쌀 보관 법은 우리 집 식구 수와 먹는 양을 잘 따져봐서 필요한 양 만큼의 쌀을 적당한 기간 동안 두고 먹는 것.
쌀에서 묵은 냄새가 날 땐, 씻는 물에 식초 한 방울을 떨어뜨려 잘 헹구어 내면 된다. 좋은 쌀을 골라 잘 보관했다면, 이제는 잘 씻을 차례. 요즘 쌀은 도정이 잘 돼 꽤 깨끗한 편이지만, 그래도 쌀 겉에 묻어있는 더러움이 묻어 나오는 첫물은 되도록 빨리 헹구어 주는 것이 좋다. 쌀뜨물로 국이나 찌개를 끓이고 싶다면, 너무 뽀얗게 나오는 헹굼 물보다는 조금 말개진 즈음의 물을 받아두자. 서너 번 이상, 헹굼 물이 맑아질 때까지 부드럽게 눌러주듯 비벼 씻고 헹구기를 반복하면 준비 끝. 쌀이 폭 잠길 만큼 물을 붓고 30분 정도 불려주면 곧바로 밥을 지을 수 있다. 단, 30분 이상 쌀을 불리게 되면 쌀 속의 영양분이 빠져 나와 밥 맛이 떨어지고 밥알의 모양도 톡톡 살아나지 않게 된다. 불린 쌀은 체에 쏟아 물기를 빼두는 것을 잊지 말 것.
같은 쌀이라도 물과 불에 어떻게 다루어지느냐에 따라 밥맛이 180도로 달라진다. 묵은 쌀은 물과 비율을 1:1.5 정도로 잡아주는 것이 좋지만 보통의 쌀이라면 1:1.2 정도가 적당하다.
쌀에 채소를 넣거나 현미, 콩, 팥 등 잡곡밥을 지을 요량이라면 밥물도 그에 맞춰 조정해준다. 열을 가하면 물이 나오는 채소엔 당연히 평소(흰쌀밥)보다 적은 양의 밥물을, 현미를 넣을 땐 평소보다 넉넉하게, 콩이나 팥은 그보다 더 많이 밥물을 잡아준다. 불은 센 불에서 시작해서 밥이 끓어오르면 중간 불로, 쌀이 퍼지고 물기가 자작해지면 약한 불로 줄이고 충분히 뜸을 들이는 순서를 밟는다. 물론, 밥을 어디에다 짓느냐에 따라 불에 놓아두는 시간은 조금 달라진다.
 전기밥솥 | 따로 불 조절을 해 줄 필요는 없지만, 밥을 오래 담아 두어야 한다면 얇은 베 보자기를 씌워두어 촉촉함이 날아가지 않도록 해준다. 베 보자기는 오래된 밥에서 날 수 있는 묵은 냄새를 막아주는 구실도 한다.
냄비 | 바닥이 두툼할수록 좋고, 높이는 쌀 높이의 3~4배쯤이 적당하다. 센 불에 7~8분, 밥물이 끓어 넘치려고 하면 불을 약간 줄이거나 뚜껑을 살짝 열었다 덮는 식으로 조절해 가면서 중간 불로 넘어온다. 중간 불에선 5분 정도가 적당하다. 밥물이 잦아들면 약한 불에 10분간 뜸을 들인 뒤 불을 끈다. 밥을 위아래로 골고루 섞어주고 5~10분 정도 놔둔다.
 뚝배기·곱돌솥 | 센 불에 7분 정도 두었다가 밥물이 한 두번 끓어오르면 바로 중간 불보다 조금 약한 불로 줄인다. 누룽지를 원하지 않는다면 위아래로 잘 섞어주고 그 상태로 3분간 둔 다음, 아주 약한 불로 줄여서 3~4분간 뜸을 들인다. 뜸이 다 들었으면 불을 끄되, 솥을 바로 내려놓지 말고 그대로 둔다. 열이 오래가는 그릇들이라 남아있는 열로 한번 더 뜸을 들여줄 수 있다. 시간은 7분 정도가 적당하다.
압력솥 | 찰기 있는 밥을 빨리 짓고 싶거나 현미나 보리처럼 찰기가 떨어지는 곡물로 밥을 지을 때 안성맞춤이다. 압력솥에 밥을 지을 땐 쌀과 물의 비율을 1:1 정도로 맞춰 주는 게 좋다.
 죽 | 아플 때 먹는 음식으로만 접어두기엔 너무 아까운 우리 먹거리, 죽. 미리 지어 놓으면 바쁜 아침, 고픈 배를 달래주는 영양만점의 한끼 식사로 그만이다. 보통, 불린 쌀 ½ 컵에 3컵 정도의 물을 부어야 밥알이 뭉글하게 퍼진 정도의 죽을 지을 수 있다. 밥도 그렇지만 죽은 특히, 함께 들어가는 재료들을 꼼꼼히 살펴 물의 양을 잡아주어야 한다. 불에 올린 후, 저어보다가 물을 더 붓거나 하면 죽 특유의 부드러운 맛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음을 원한다면 쌀과 물의 비율은 1:9 정도가 적당하다. 죽에 쓸 쌀도 1시간 이상은 불리지 않는 것이 좋다. 불은 처음엔 센 불로 끓이다가 후르르 물이 끓어오르면 약한 불로 줄여서 쌀이 고루 퍼질 때까지 잘 저어준다. 두었다 먹고 싶다면 간을 미리 치지 말 것. 간을 하고 바로 먹으면 짭짤한 맛이 입맛을 돋구지만 아니라면 죽이 삭아버려 제 맛을 내지 못하게 된다.
 영양밥 | 영양밥이라고 하면 아주 고급스런 재료들이 곁들여진 밥을 떠올리게 되지만, 쌀이 부족하던 시절,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넣었던 감자나 고구마도 훌륭한 영양밥의 재료들이다. 제철 나물이나 특별한 성분을 지닌 한약재를 얹어도 좋고, 나와 내 가족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넣어도 좋다. 더 맛있는 영양밥을 짓고 싶다면, 그냥 물대신 양지머리, 다시마, 멸치 등을 우린 물로 밥물을 대신해 보는 것도 훌륭한 방법.
 초밥 | 왠지 입에서 맨밥을 당겨하지 않을 때, 달콤새콤한 초밥은 썩 괜찮은 대안이다. 초밥에 넣는 밥은 차진 느낌보다는 약간 된 쪽에 가까운 고슬고슬함을 주어야 제격. 밥을 차지게 하는 압력솥은 피한다. 밥물은 쌀의 1.1~1.2배 정도로 잡고, 불은 냄비에 지을 경우, 센 불로 시작해서 밥물이 끓어오르면 불을 조금 줄여서 4~5분을 더 끓여준다. 거품이 나기 시작하면 불을 조금 더 줄여 중간 불로 맞춘다. 그 상태로 10분 정도 더 끓여서 밥물이 잦아들게 한 뒤, 약한 불로 줄여서 7분쯤 뜸을 들인다. 밥물이 다 잦아들면 밥을 아래위로 섞어준다. 초밥은 나무통에 넣어 버무리는 것이 제일 좋은데, 나무통은 사용하기 전에 물을 뿌려서 약간 촉촉한 상태로 만들어 준다. 초밥초를 섞을 때는 주걱을 세워서 재빠르게, 살살 섞어주어야 하는데, 그래야 초밥초의 맛이 밥에 고루 스며들고 밥알도 으깨지지 않는다.
온갖 정보와 경험 기회들이 차고 넘치는 요즘, 원한다면 곧장 필라프, 치라시, 데마키, 도리아, 빠에야, 리조또 같은 세계의 쌀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아침 식사로는 죽을, 가끔 특별식으로 영양밥이나 초밥을 해먹을 수도 있지만, 우리들 끼니의 기본은 쌀과 물과 불 말고는 보탤 것이 없는 그냥 ‘밥’이다. 그런데, 우리들 밥상이 옛 그것과 같다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동과 서가 엉키고 설킨 지금의 밥상에서 하얀 쌀밥을 고집하는 일은 조금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흰쌀밥에 고깃국’이야 쌀과 고기가 귀했던 시절, 그만한 먹거리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 요즘 사람이 그런 식단을 고집했다간 온갖 성인병으로 직행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요즘 시대, 밥을 잘 짓는다는 것은 첫째, 색색이 화려한 다른 나라의 쌀 요리만큼은 아니더라도 빛깔과 향으로 변주를 할 줄 알고 둘째, 하얀 쌀밥에서 모자라기 쉬운 영양소들을 채워내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한 아주 쉽고 훌륭한 방법 중에 하나는, 오래 전부터 그런 역할을 해왔던 곡물들을 섭렵해 두는 것이다.
 찹쌀 | 밥을 좀더 끈기 있고 차지게, 윤기 나게 해주며 소화도 잘 된다.
현미 | 쌀눈이 깍여 나가지 않아 비타민 B₁, B₂ 등 영양소가 풍부하고 그 맛도 구수하다. 감촉은 거칠하지만 소화가 더디되어 과식을 막기에 좋다.
흑미 | 찹쌀처럼 찰기가 있고 특유의 향과 구수한 맛이 있다. 조금만 넣어도 밥을 검게 물들이는데 와인빛깔에 가깝다. 씹히는 맛은 약간 꼬들한 편.
보리 | 찰기가 없어 밥으로 해놓으면 푸실푸실하지만 섬유질이 풍부해서 배변을 좋게 하고 쌀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 B₁, B₂도 많이 들어 있다.
 팥 | 비타민 B₁이 많이 들어있고, 이뇨제의 효능도 갖고 있다.
녹두 | 콩 다음으로 단백질이 높은 곡식이다. 리놀산, 리놀레산과 같은 불포화 지방산도 들어있고, 해열, 숙취 해소에 좋다.
차조 | 약간 진한 녹색을 띠어서 오곡밥이나 인절미를 해먹기에 좋다. 낟알이 아주 작은 곡식이라 씻을 때 물에 흘러 내려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메조 | 기장쌀이라고도 한다. 찰기는 떨어지지만 고소하고 고운 노란 빛깔을 띠어서 흰쌀밥과 섞어짓기에 좋다.
콩 | 작두콩, 울타리콩, 강낭콩, 대추밤콩, 풋콩, 완두콩, 얼룩이밤콩과 같이 말리지 않은 풋콩은 까놓은 것보다 콩깍지에 들어 있는 것을 사는 게 좋고, 콩깍지 채로 밀봉해서 냉장 보관한다. 흰콩, 검은콩, 쥐눈이콩, 동부, 선비콩, 청태와 같은 말린 콩들은 상온에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 쌀과 익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 보통 하루 전날 저녁에 물에 담가 충분히 불렸다 사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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