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이 빈대떡보다 피자를, 밥보다 햄버거를 더 좋아하는 것을 ‘아이다운 것’으로 생각하며 수수방관해왔다. 토종밥상의 유익함은 성장기의 어린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일텐데. 이미 인스턴트 가공식품에 입맛이 길들여진 아이들을 어떻게 토종밥상 앞에 앉힐 것인가? 아이에게 건강한 맛을 가르치기 위한 엄마들의 부엌지침, 토종 밥과 찬을 중심으로 ‘건강한 아이밥상 차리기’를 알아보자.
채식 위주의 식단, 고기 없이 상추와 된장만으로 싸먹는 상추쌈, 몇 가지 잡곡이 들어간 밥, 두세 가지 종류의 김치, 투박한 된장찌개…. 만약 가족을 위해 식단을 새롭게 짠다면 이러한 식단을 흔쾌히 받아들일까? 아마 “글쎄, 가끔씩 별식으로는 한두 번 차릴 수는 있어도, 일상적인 식단으로는 좀….” 하고 꺼려할 게 보통이다. 아이를 둔 집일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식단은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익숙한 식단이었는데, 참으로 짧은 시간에 우리의 식탁이 변해버렸다.
어린아이의 식습관 변화의 속도는 특히 빠르다. 빈대떡에는 젓가락질을 하는둥 마는둥 하다가도 피자 가게에 간다고 하면 환호성을 지른다.
된장찌개에 아침식사를 내놓으면 식사 속도가 하도 더디어서 지각할까봐 걱정해야 하는데, 토스트나 샌드위치를 내놓으면 먹는 속도가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친구 생일집에 초대받아 가서 밥을 먹고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열이면 아홉 집 이상이 밥 대신 치킨, 피자, 햄버거, 탕수육, 군만두, 김밥 등을 내놓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웰빙 바람이 불면서 건강하고 바른 먹거리, 전통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문제는 있다.
음식재료를 건강하고 안전한 것으로 구입하겠다는 관심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조리법이나 식단 구성을 바꾸어보겠다는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 아침 식탁에 수입밀가루로 만든 부드러운 식빵을 내놓는 대신, 다소 거칠더라도 유기농으로 재배한 우리밀 빵을 내놓는 것이 좋음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건강한 음식재료로 대체했다 할지라도, 우리의 식탁에서 밥이나 전통 식단이 뒷전으로 밀려버린다면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전통 식단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아이들이 먹지 않는다는 것을 호소하는 어머니가 참으로 많다. 고기 종류가 올라오지 않으면 식사량이 뚝 떨어지는 아이, 정성껏 나물 반찬을 올려도 젓가락질 한번 하지 않는 아이, 파나 당근이 들어가면 건져내야 겨우 먹는 아이, 잡곡이 들어가면 아예 먹지 않는 아이…. 이런 아이들과 몇 번의 실랑이를 벌여도 아이가 변하지 않아 결국은 지쳐서 타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탓만을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부모 자신에게 있다. 아이가 현재의 식습관을 가지게 된 것에는 부모 책임이 가장 크다. 현재의 식습관이 형성된 원인은 멀리는 수유기나 이유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영양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수입재료로 만들고 음식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이유식으로 아이 식습관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는지도 반성해봐야 한다. 요즘 영어니 글쓰기니 피아노니 다들 조기교육 열풍이 부는데, 바른먹거리 관련해서는 조기 열풍이 거세지 않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피아노는 늦게 배워도 되지만 바른먹거리는 시기를 놓치면 절대 안 된다.
좋은 식습관을 어렸을 때 제대로 잡아주는 것은 곧 아이에게 ‘평생건강’을 물려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어찌 가장 큰 선물이 아니겠는가.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하는데, 비슷하게 ‘세 살 식습관 여든까지 간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전통 식단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에는 왕도가 없다. 어머니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 중의 하나가 아이들이 나물, 된장찌개 등 우리 전통의 음식을 잘 먹게 하기 위해서 여러 편법을 쓰는 것이다. 예를 들면 된장찌개나 심지어 나물을 무칠 때에도 고기나 맛살 등을 넣어 아이 입맛을 돋구려고 한다. 감자 등을 잘 먹게 하기 위해서 요리를 할 때 기름에 볶는 것을 선호한다. 또 우엉을 조릴 때에도 아이가 잘 안 먹으려 한다는 이유로 좀 달짝지근하게 조린다. 야채를 조금이라도 먹게 하려고 야채를 잘게 다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한 다음 볶음밥에 넣어 내놓는다. 또 갖은 양념과 조미료, 향신료로 아이들 미각에 호소하려 하기도 한다.
설핏 보면 그렇게 해서라도 나물이나 된장찌개 등을 먹게 하는 것이기에 나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고기를 좋아하는 식습관을 바꿀 수도 없고, 기름이나 설탕을 보다 많이 사용하므로 아이들 건강에도 결코 좋지 않다. 또 지나치게 많은 양념이나 기름, 설탕을 넣는다거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들면 아이들이 음식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내놓으면 당장은 아이들이 그 음식에 손이 갈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아이들에게 토종의 입맛을 돌려주려면 무엇보다도 ‘밥상에서의 세대 통합’을 이루어내야 한다.
주변에 보면 아이들 반찬 따로, 어른 반찬 따로 장을 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아이들을 위해 돈까스나 볶음밥 재료를 사고, 어른을 위해 쌈밥이나 해물탕 재료를 사기도 한다. 그나마 이는 나은 편이다. 어떨 때는 아이 반찬이 마땅하지 않으면 햄이나 소시지를 프라이팬에 지져서 주고, 1회용 봉지에 들어있는 햄버거 스튜나 자장 소스를 사기도 한다.
음식이 나뉘어진다는 것은 곧 ‘된장나라 음식’과 ‘치즈나라 음식’으로 대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찬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는 번거로움보다도 아이들 건강이 문제가 된다.
절대 아이들 반찬을 따로 준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조리법을 약간 바꾸는 것도 좋다. 김치를 담글 때 너무 맵지 않게 담아서 같이 먹도록 하고, 된장찌개 끓일 때는 너무 짜지 않게 해서 같이 먹어야 한다. 김치와 된장의 유익한 점에 대해서 아이와 자주 얘기하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다. 또 하나, 어렸을 때부터 김치와 된장 등에 익숙하도록 하는 방법이 밥상통합을 위한 지름길이다.
생후 6개월 이상이 되면 이유식을 먹이는 중간중간에 동치미나 물김치 국물을 한두 숟가락씩 먹여 입맛을 길들여 보도록 하자.
된장 역시 이유식 단계에서부터 묽게 풀어 시금치나 채소 등을 듬뿍 넣고 끓여 아이들에게 먹인다. 아이가 토종밥상에 즐겁게 달려들도록 하려면 간식 또한 잘 다스려야 한다. 아이가 밥을 제대로 먹지 않는다고 고민하는 주변의 엄마들이 참으로 많다. 자세히 보면 대부분 아이가 배고파할 겨를이 없이 온갖 간식을 먹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그 간식으로 내놓는 것이 워낙 아이들 입맛을 자극하는 맛이 대부분이어서 아이들이 밥맛에 흥미를 잃어버리게도 한다. 간식은 말 그대로 간식이어야 한다. 간식이 식사를 대신하거나 식사의 역할을 빼앗을 정도로 열량이 많아서는 안 된다.
간식만 제대로 다스려도 아이들의 입맛을 전통으로 돌리는데 반절은 성공할 수 있다.
옛말에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해도 아이들은 주변의 영향도 있고 해서 햄버거 등을 찾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한가지 대안으로 집에서 감자버거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만드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먼저 감자를 강판에 갈아 꼭 짜낸 후, 양념한 갈은 돼지고기와 잘게 다져 볶아낸 양파와 당근을 섞어 동글납작하게 만든다. 그런 후 이를 지져 생협에서 파는 아침빵이나 햄거버빵 사이에 끼워 내놓으면 된다.
때에 따라 상추 한 장과 케첩을 약간 곁들여도 좋다. 아이 식습관을 바로잡아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엄마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식탁에서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싸움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식탁이 ‘영양’과 ‘맛’의 신화로 인하여 이미 너무나도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식습관과 고집 때문에 힘들어도, 조금씩 해나가야만 한다.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욱 더 안전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하고, 또 그럴 권리가 있다. 안일함과 힘듬 때문에 간혹 타협하고 싶을 때가 있어도, 우리집의 잘못된 식탁을 바로잡는 파수꾼이자 마지막 보루는 이 땅의 엄마라는 생각으로 두 눈 모질게 질끈 감아야 할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맛에 관해서는 우리 아이들을 토종으로 키워보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