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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숙려(熟慮)
아프리카 타렌시족(族) 남편들은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는 동안 친구들을 불러낸다. 오두막집을 통째로 옮기기 위해서다. 아내를 깨우지 않은 채 집을 16㎞쯤 떨어진 곳에 옮겨다 놓는 데 성공하면 부부 사이엔 이혼이 성립한다. 바비라족 남자는 이혼하고 싶으면 기름을 가득 담은 작은 항아리와 지팡이를 잠자는 아내 머리맡에 놓아둔다. 이튿날 아침 아내가 두 물건을 보는 순간 결혼은 끝난다.
▶이혼을 타렌시족처럼 어려운 일로 여기던 시절은 벌써 옛날이다. 두 쌍이 결혼하는 사이 한 쌍이 갈라선다는 세상에서 이혼은 바비라족 만큼이나 간편하다. 오전 중 법원에 협의이혼 신청서를 접수시키면 그날 오후 3시에 이혼 확인절차가 끝난다. 이혼, 특히 성급한 이혼을 줄여보려는 ‘이혼 숙려(熟慮) 제도’가 3월부터 시범 실시된다고 한다. 이혼을 신청하는 부부는 1주일 동안 심사숙고하는 기간을 거치게 하는 제도다.
▶영국·독일·프랑스·스웨덴, 그리고 미국 대부분 주(州)에서는 3~18개월에 이르는 숙려기간을 법으로 두고 있다. 숙려가 끝나면 자녀 양육과 재산 분할에 관한 합의서도 내라고 한다. 홧김에 하는 이혼을 막고 이혼을 하더라도 준비된 이혼, 후회 없는 이혼을 하도록 현명한 결정을 돕는다는 뜻에서다. 오만 정 다 떨어진 사람들더러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라는 것은 사적(私的) 영역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개입이라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이혼은 진보된 문명사회의 필수품이다. 그 사회에 개인의 자유와 경제 안정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몽테스키외). 이혼은 매일 밤 부부 사이에 누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많은 부부들은 그것을 못본 척하고 살아간다.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문정희 ‘남편’).
▶‘낱말을 설명해 맞히는 TV 노인 프로그램에서/ 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보이며/ 아니, 네 글자/ 평생 웬수…’(황성희 ‘부부’). 결혼은 전생의 원수가 만나 한평생 함께 살면서 서로 원수 갚는 일, 빚 갚는 일이라고들 한다. 서로에게 빚이 있다면 할부금 갚듯 정 주고 사는 거지 별것 있겠는가. 1주일 동안 가장 숙려해야 할 것도 그 원수 같은 정(情)이겠다. - 조선일보 만물상에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