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드 쌀을 넘어 인증미, 그 다음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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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쌀을 넘어 인증미, 그 다음은?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한국은 참 이상하다는 겁니다. 광고나 홈쇼핑 같은 데에서 자기네 제품을 자랑할 때 뭐 대단한 것 마냥 ‘미국FDA인증 획득 어쩌고’하는데, 그거 미국에선 별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FDA인증 땄다고 하면 뭐라도 좋은 게 있는 것같이 생각하고 광고나 홈쇼핑에선 그걸 내세우면서 사람들을 유혹한다는 겁니다. 그런 게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은 저도 공감을 합니다.
사실 FDA인증이라는 게 미국식품의약국에서 안전기준에 따라 심사를 해서 통과되었다는 의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한국의 식약청에서 인증(이건 KFDA인증)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성격입니다. 즉 먹거나 바르거나 사용해도 별 탈이 없다는 걸 인정해 준 것에 불과한데, 그게 마치 효능이 좋다고 인정받은 것 마냥 계속 강조를 하는 겁니다. 또한 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이건 먹어도 안 죽어’가 ‘이건 아주 믿을만한 효과가 있어'로 착각을 일으키는 겁니다.
원래 식품회사나 제약회사, 화장품회사 등이 허가를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설기준에 대한 검사를 통과해야하고, 제조과정에서도 준수범위를 지켜야만 합니다. 그 범위와 처음의 약속대로 자율적으로 잘 지켜가면서 만들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게 잘 안 되는가 봅니다. 그러다보니 원래는 당연히 안전해야 할 제품인데도 그걸 믿게 하기 위해 돈 들여 시간 들여 안전인증을 받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그걸 믿고 구매를 하고요. 그런데 단순한 이 안전인증이 제품의 신뢰도를 높여줌과 동시에 인체에 유익하고 나아가서는 아예 효과도 좋은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작용을 한다는 겁니다. 매출에 당연한 영향이 있습니다.
이런 인증바람은 쌀에도 어김없이 작용합니다. 전에는 생산지 중심의 브랜드쌀이 트렌드를 형성하면서 소비자를 유혹했지만, 이제는 각종 기관이나 지방자체단체 등에서 ‘ 품질인증’을 받았다는 의미로 ‘인증미’라는 서브네임을 달고 나옵니다. ‘이천쌀, 진천쌀, 서해안간척지쌀 등등’하던 것에 ‘OO도지사 품질인증미, OO농협인증미 등등’에 아예 어디서 인증을 했는지, 무엇을 인증했는지 조차 밝히지도 않고 ‘인증미’라는 걸 갖다 붙인 것도 많습니다. 불분명해도 ‘인증미’라고 하면 뭔가 있는 것 같은 심리로, 왠지 괜찮은 쌀 같아 보여 잘 삽니다.
길을 가다보면 음식점 간판이나 플랭카드에 ‘맛자랑, 멋자랑 출연업소’니 '맛따라 길따라 방영된 집’이니 하면서 광고를 하고 있는 집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방송3사에서 어쩌면 그렇게도 전국8도의 식당을 죄다 뒤졌는지 그런 거 붙인 식당은 정말 많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옆에 아무 것도 안 붙은 집보다는 그런 게 붙은 집에 왠지 뭔가 나을 것 같아 갑니다. 매스컴에 나온 집이라는 것이 그 집의 음식 맛에 대한 인증을 해 준 셈이지요.(그게 뻥이든, 잠깐 원조집에서 일한 적이 있든 간에) 그러다 보니 항간에는 그런 방송프로그램이나 신문의 취재를 따내기 위해 별도의 비용을 들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일단 매스컴을 타면 그 사실 자체가 자신들의 인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사나 방송을 보고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이후 출연사실 자체가 인증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 신뢰감을 주는 겁니다.
그런 개념과 유사한 것이 연말이면 각 신문사마다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는 그 해의 '소비자대상’이니 ‘마케팅대상’이니 하면서 각 품목별로 우수상품을 선정하여 상을 주는 일입니다. 거기에 선정된 업체는 수상사실을 계속 광고와 판촉에 활용하면서 소비자에게 타제품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재료로 씁니다. 물론 이런 일련의 행사가 소비자를 위함이라기보다 신문사의 아주 짭짤한 광고수익을 챙기기 것과 광고주의 제품에 힘을 실어주는 상호간의 거래라는 걸 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방송에 나온 경력이나 상을 받은 경력이 아주 좋은 마케팅 소재가 되는 가운데, 한 차원 더 나간(어찌 보면 허탈하기도 한) ‘인증활용마케팅’은 바로 자일리톨껌입니다. 화면에 백인가족들이 잠옷 바람으로 나오고 ‘핀란드에서는 자기 전에 자일리톨을 꼭 씹습니다.’ 라는 멘트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그리고 왜 그런 행위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치과의사단체에서 그걸(특정회사의 껌)을 인증해줬다는 걸 강조합니다. 유색인종이 가지고 있는 백인들에 대한 동경심리와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의 이미지를 함께 활용한 사례입니다. 실제로 핀란드에서 자기 전에 껌을 씹든 뭐를 씹든 상관할 게 아니지만(현지에선 그저 그런 씹던가 말던가 랍니다) 그게 백인들이라는, 우리보다는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해 ‘그 사람들도 씹으니 너희들도 씹으면 그 사람들과 같아지는 거야’라고 유혹하는 겁니다. 만약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에서 자일리톨을 씹는다면 그게 먹히기가 힘든 겁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자기 전에 꼭 자일리톨을 씹습니다.’라고 하는 상황과 같은 겁니다. 반대로 핀란드나 미국 같은 나라의 TV에 ‘한국에서는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 반드시 콩나물국을 먹습니다.’라고 한다고 해서 그 나라의 콩나물이나 관련식품의 매출이 오를 리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보다 생활수준이 높아 보이는 나라에서 그렇게 한다니까 믿는 겁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힘을 실어준 게 바로 우리 나라 치과의사들이 인증(?)했다는 내용입니다. 치아에 관련된 상품을 팔면서 치아에 관련된 전문인들이 인증을 해줬다는 것 이상 의미가 있는 게 없는 겁니다. 당연히 믿지요. 제품을. 의사들이 인정해줬다는데….
쌀도 이제는 단순한 인증의 수준에서 더 나아가 쌀과 관련된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의 ‘인증’을 얻는 방식이 효과를 얻을 것입니다. 농협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각자 알아서 ‘우리 것이 좋은 쌀이다’하는 식의 인증 말고, 누구나 호감과 전문성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나 단체로부터 인증을 얻는 것이 낫다는 겁니다.
‘대한 조리사협회 인증미’정도는 기초라고 한다면 ‘국내10대 호텔주방장이 추천한 쌀’로 인증마크를 붙이던가, 아니면 ‘한국의 음식명가 100인이 선정한 맛좋은 쌀’로 어느 인증 못지 않은 믿음을 사는 겁니다. 쌀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역할인 맛에 있어 최소한 우리보다는 나아 보이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걸 가지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어필을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우리는 몰랐지만 쟤들은 자기 전에 꼭 씹었대. 의사들도 인정한다잖아’라고 하는 껌과 같이 말입니다.
좀 치사한 방법이지만 광고도 ‘조금 있는 집안에선 밥을 지을 때 꼭 이 쌀로 합니다.’라고까지 하면 너무 한 걸까요? 쌀을 껌같이 하니까 좀 이상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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