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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은 힙합에게 대중적 인기를 선사해준 멋진 해였습니다. 다이나믹 듀오의 Ring my bell, 조PD의 친구여 등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구요. 작년까지만 해도 "힙합? 거 왜,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손가락을 왔다갔다 하는 그 정신없는 음악 말이야?" 라고 하던 주변 사람들이 "아~ 힙합? 그거 들으면 엉덩이를 흔들흔들 하게 되는 음악 말이지?"하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힙합이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한 해였군요. 특히 제가 앞에서 말한 두 곡은 작품성이라던지, 홍보, 뮤직비디오까지 빠지지 않고 뭐라고 흠잡을 수도 없는 좋은 곡들이었습니다.
2004년 상반기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곡 중에 Street life라는 곡이 있는데요, dj.doc가 낸 싱글의 타이틀이었던 이 곡은 Big mama의 퓨쳐링으로도 유명합니다.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흥얼 거릴 만큼 신나는 곡이죠.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Street life 3절에서 찾을 수 있는 '내 Rhyme과 탁탁 찍어가는 내 Flow 속의 Soul을 한번 느껴봐'라는 구절에 대해서에요. 라임, 플로우, 소울. 랩의 3대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세 가지에 대해 말해봅시다.
랩/의/첫/번/째/요/소/메/세/지/
소울에 대해서 얘기하자더니 왠 메세지? 다름이 아니라 Street life에서 나오는 Soul은 앞의 페이퍼에서 말한 음악 장르라던가 영혼이 아니라, 자신의 랩에서 느껴지는 메세지, 또는 자신이 표현하려고 하는 것, 을 말하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내 Rhyme과 탁탁 찍어가는 내 Flow 속의 Soul을 한번 느껴봐' 이 구절은 완벽히 랩의 3대 요소를 찝어내는 구절이군요.
여튼 메세지라는 것은 말 그대로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말합니다. 랩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지요. 힙합에서 랩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랩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랩(가사)을 쓴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실제로 모든 랩퍼는 스스로가 랩을 써야만 하고 또 랩퍼 자신의 마인드를 가사에 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드렁큰타이거등의 1집 앨범이 간혹 가다 욕을 먹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드렁큰타이거가 1집에서 랩을 쓰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랩퍼는 자신의 마인드를 자신의 가사로 자신이 랩하는 사람이니까요. (다만 이 경우에는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한 드렁큰타이거가 한국어에 익숙하지 못해 대신 여러 랩퍼들이 참여했었음)
만약 라임과 플로우를 갖추었더라도 일관된 메세지가 없으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건 오늘은~으로 시작해서 참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처럼 주제없이 끝나버리는 초등학생시절의 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랩 가사를 쓰고 싶다! 라고 생각하신 다면 먼저 자신이 형상화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고 자신의 입장과 견해를 확실히 해놓은 다음이어야만 합니다.
랩/의/두/번/째/요/소/플/로/우/
플로우는 말그대로 흐름을 뜻합니다. 어떤 랩을 듣다보면 부분 부분 끊기는 느낌이 드는데 반해 어떤 랩은 끊김없이 지대로 흘러가죠^^; 바로 이런 때에 플로우가 별로다, 플로우가 예술이다- 등의 표현을 씁니다.
이것은 물론 뭉뚱그려 봤을 때이고, 자세하게 알아보자면 플로우는 랩스킬, 호흡, 비트 등 여러가지 요소와 상호작용합니다. 메세지나 라임이 가사, 즉 쓰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플로우는 실제 랩을 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플로우가 랩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는, 플로우가 없다면 랩은 그저 따다다다다.. 국어책을 빠르게 읽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플로우로 랩을 요리할 수 있을 때에서야 그것이 '음악'으로 들리게 되지요.
플로우라는 것이 워낙에 추상적인 개념이고, 뭐라고 확정짓기에는 억지인 감이 있습니다. 실제로 힙합곡을 많이 들어보고, 아, 이런 것이 플로우구나 하고 직접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랩/의/세/번/째/요/소/라/임/
라임은 다른 두 가지 요소에 비해 굉장히 할 말이 많은 부분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논의가 활발하고 가장 구체적으로 얘기되어졌거든요.
사전에서 찾아보니 라임의 뜻은 압운, 각운이라고 하는 군요. 압운법은 시 행의 끝소리를 같게 하는 일종의 각운을 말하는 것이라 하고, 각운은 시행의 끝소리를 같게하는 것을 말합니다. (쓰고 보니 똑같은 말-_-;;;) 그러면 각운에 대해 알아볼까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이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한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한용운 시인의 '알 수 없어요'라는 시입니다. 문장의 끝마다 '까'가 붙여져 있죠? 이런 걸 보고 각운이라고 합니다. 각운은 시에서 운율을 주는데에 사용하는데, 랩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플로우를 설명하면서 플로우를 잘 타야 '음악'으로 들리게 된다고 했는데, 라임 역시 랩에 운율을 주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랩에서의 라임이 단순히 끝글자를 맞추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집은 어려서부터 가난했었고, 남들 다 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god의 어머님께)' 처럼 끝 글자만을 맞춘 라임을 우리는 잘 썼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국랩퍼들이 대부분 많이 사용하는 라임은 이런 것입니다.
낯이 익지도 않았지만 같이 마치 달콤한 연인 같이 하나되는 우릴 봤지
(드렁큰 타이거의 난 널 원해)
초록색 글자로 표시된 부분을 읽어보면 발음이 비슷비슷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치, 가치, 마치, 봐찌, 처럼요. 이렇게 발음이 유사한 단어를 이용하여 운율을 나타내는 것 또한 라임입니다. 이렇게 계속 하다 보면..
내 자신이 내게 바라는 끊임없는 재개발화
철 같은 의지는 마치 체게바라
투지를 불태워 더욱 세게 발화(發火)
안되면 될 때까지 끝까지 되게 하라
(주석의 정상을 향한 독주 2)
Suckers can't feel my rhyming
어떻게 이런 놈들과 나란히
힙합을 얘기하니 아까워 내 시간이
(버벌진트의 overclass)
요렇게 됩니다. 얼핏 눈으로 읽으면 전혀 유사성을 찾을 수 없는 단어들인데도 소리내어 중얼중얼 읽어보면 분명 운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정도 까지 오면 상당히 라임을 잘 썼다고 말하지요. 특히 버벌진트의 라임은 그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메세지와 라임을 잘 버무려, 엄청난 라임을 구사하면서도 주제를 흐뜨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으로 큰 감명을 얻은 가사는 요고입니다.
언제부턴가 거울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지.
이젠 그게 너무도 익숙하니 꽤 멋진
표정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지을 수 있어.
하지만 내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편하지 않아.
그들이 내게 강요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남자스러움' 말야.
난 자꾸 그럴수록, 마냥 불쾌한 듯 찡그리다가 나중엔 그냥 웃지.
(kebee, 소년을 위로해줘)
초록색 글자와 빨간색 글자로 쓰인 부분을 봐도 왜 이게 라임인지 알 수 없는 분도 계시죠? 그런데 노래를 들으면 이 부분은 정말 라임입니다.(;) 이건 랩퍼의 역량입니다. 라임처럼 안 보이는 단어들도 라임으로 만들어버리는 랩퍼도 있고, 전혀 라임을 쓰지 않았는데도 운율이 잘 느껴지는 가사들도 있습니다.
자, 이제 랩을 구성하는 주요 3대 요소에 대해 모두 알아봤습니다. 제 짧은 설명이 '그의 Rhyme과 탁탁 찍어가는 그의 Flow 속의 Soul을 한번 느껴볼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사실 어느 곳에서든, 이 세 가지 요소 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그걸 뜻하는 게 아니라는 둥,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둥 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 가지 요소 모두가 조화를 이뤘을 때 정말 멋진 랩이 나오는 것이고, 그 외의 여러가지 요소들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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