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공동체 확대로 고령화 대비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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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공동체 확대로 고령화 대비해야 박 성 원·조 용 탁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고령화 속도 한국이 세계 최고…노인인구 급증에 따른 문제 해결의 실마리 찾아야 서울대 사회학과 권태환(64) 교수는 내년 정년 퇴임을 맞는데도 꿈에 부풀어 있다. 마음이 맞는 노인 10명과 함께 강원도 춘천에서 함께 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미 땅을 점찍어 두었고 올해 안에 공동주택까지 지을 작정이다.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는데는 십시일반 돈을 보태기로 했다. 그러나 생활비는 권교수의 연금을 주축으로 하고 약간의 농사도 지을 생각이다. 권교수에겐 장성한 자녀들이 있다. 그런데도 가족도 아닌 사람들과 노후를 보내려는 이유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권교수가 함께 살 사람은 동네 이웃·먼 친척·교회 친구들이다. 이혼한 사람도 있고, 사별한 사람도 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고 비교적 불우한 처지다. 그러나 대개 한가지씩 특기가 있다. 죽어가는 동물을 정성껏 보살펴 살려내는 데 재주가 있거나, 약초와 나물을 잘 캐거나, 음악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다. 함께 모여 살면 서로를 도와 자급 자족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권교수는 이 노인들과 단순히 모여살겠다는 생각만 하는 건 아니다. 음악가를 초청해 공연을 하거나 간단한 오페라를 직접 만들어 무대에 올릴 계획도 있다. 서양화가인 권교수의 부인은 미술을 통한 심리 치료에 능하다. 실의에 빠지거나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모아 그림 그리기를 통해 정신적 상처를 극복하도록 도울 생각이다. 그래서 많은 예술인들이 불우하나 따뜻한 노인들과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로 키워가겠다는 꿈이다. . 권교수는 이런 계획을 추진하면서 뜻하지 않았던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았다. 권교수가 함께 살자고 했던 노인들보다 그 자녀들의 표정이 더 밝아지더라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전통이 강한 한국적 정서론 다소 의외였다. 자녀들은 시름을 덜었다는 표정을 애써 감추려들지 않더라는 얘기였다. 권교수는 “자식은 늘 직장이 불안해 자신의 생계를 걱정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세상이 됐다”며 “양쪽 모두 짐을 덜기 위해서는 노인들이 따로 살면서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한국의 노령화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04년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전체 인구중 8.7%(4백17만명)다. 그러나 2019년엔 14.4%로 ‘고령사회’로 진입하며, 2026년엔 고령인구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현재 한국 고령인구의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고령화의 속도가 여느 선진국보다 빠르기 때문에 심각하다. 고령인구 비율이 7%에서 20%로 증가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국가별로 비교하면 프랑스가 1백56년, 미국은 86년, 독일이 80년, 일본이 36년이다. 그런데 한국은 고작 26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선진국은 고령화의 충격이 서서히 왔지만 우리에겐 일시에 몰아닥칠 가능성이 큰 셈이다. . 실제로 노령인구가 급증하면서 상대적으로 경제활동 인구는 줄었다. 그결과 노인부양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2002년 노인부양비는 11%였지만 2019년엔 20%로 껑충 뛴다. 1970년대엔 노동인구 1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다. 지금은 경제활동인구 9명이 한명의 노인을 부양하고 있다. 그러나 2019년엔 다섯명이 노인 한명을 부양해야 하고 2030년이 되면 2.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따라서 부양비를 두고 노부모와 자식간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노인들이 따로 집단촌을 형성해 자식과 떨어져 살려는 추세도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그러나 권교수처럼 10∼20명의 노인들이 모여 집을 짓고 살 경우,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주택 보유세 절감 혜택이나 수도세·전기료 경감 혜택을 받지 못한다. 춘천시청 관계자는 “함께 모여 사는 노인들에게 그런 혜택을 줄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집단거주 형태로 함께 사는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지 관심을 갖고 있는 정부 부처도 없다. 지자체별로 노인복지팀이라는 게 있지만 대부분 시회복지 시설인 양로원 지원이나 경로 교통비를 주는 정도의 서비스에 머물러 있다.
. 노인 지원 정책은 늘 정책순위에서 밀린다. 노인복지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한남대 임춘식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복지예산의 경우 대만은 3%, 일본은 5%를 할애하고 있지만 한국은 0.4∼0.5%에 불과하다”며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면서도 실제 예산을 늘리거나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는 데는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65세 이상 노부모를 부양하는 자녀들에게 주는 혜택도 크지 않다. 정부는 기업에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직원들에게 월 1만5천원 이상의 수당을 지급하도록 권유하고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그래서 실시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 단 정부 공무원은 1만5천원을 받고 있다. 이 정도로는 노부모를 적극적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지 못하고 있다.
. 그러나 법과 제도는 이같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문제의 예방보다 사후 대책에 치중하다보니 사회의 변화가 가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하고 대비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변화순 한국여성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가족의 범주와 기준 설정, 가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아 가족 구성원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17세에 아이를 갖게 된 김정순(가명)씨는 의사가 낙태를 거부하자 부모 몰래 출산한 뒤 입양 기관에 맡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태어난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도저히 떨어질 수 없었다”며 돈을 벌어 아이를 직접 키울 생각으로 직업훈련소를 찾았다. 그러나 갓난아기를 기르면서 돈벌이를 하는 데는 제한적인 요인이 너무 많아 생활은 늘 고달펐다. 정부로부터 최저생계비(월 67만원)라도 받고 싶었지만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이마저도 불가능했다. 독신모들은 경제력을 가진 부모가 생존해 있을 경우 집에서 쫓겨났더라도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없다. 이는 아이를 키우려는 의지가 있는 독신모로 하여금 생활고를 독신모 보호시설인 ‘춘천 마리아의 집’은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난 1997년 독신모 78명을 수용하고 있었으나 지난해엔 수용인원이 2백명으로 늘었다. 이처럼 독신모는 증가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제도는 미비돼 있다. 물론 최근 정부의 정책에 일련의 변화가 없진 않았다. . 1998년에는 어머니 호적에 아이를 입적시킬 수 있게 됐고, 2002년에는 보건복지부가 처음으로 독신모 가정에 생계비(월 67만원)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단 정부가 인정한 독신모 수용시설에 입소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독신모들은 여러가지 차별을 견뎌야 한다. 남성이 원할 경우 아이를 남자의 호적에 넣어야 하고, 여성의 경제력이 부족할 경우 양육을 포기해야 한다. 심지어 남성측이 데려간 아이를 다른 곳에 입양시켜도 이를 제지할 법적 수단이 없다.
. 선진국은 독신모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과 사회제도를 갖고 있다. 예컨대 스웨덴 정부는 독신모들에게 독신모 수당·육아 수당·아파트 보조금을 지급한다. 비록 같이 살지 않지만 아이의 아버지측에게도 가족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독신모와 합의해 아이를 만날 수 있고, 월 생활비의 일부를 책임져야 한다. 독신모 생활시설인 애란원을 운영하는 한상순 원장은 “한국도 비록 혼인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이들이 아이를 버리지 않고 부모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3D업종에서 일할 노동자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점차 더 늘어날 추세다. 그러나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끼리 결혼해 가정을 꾸리면 의료 보험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 스리랑카에서 온 자얀더와 사만티 부부도 마찬가지다. 2002년 한국에서 결혼해 7개월 된 딸을 하나 두고 있는 그들은 보건소에 가도 없는 주사약이 많아 결국 소아과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한번의 예방 접종 주사를 위해 5만원이나 주기도 했다. 결국 애써 번 돈을 아이 키우고, 병원비 대는데 소진할 수밖에 없다. 스리랑카의 부모님에겐 한푼도 못보내고 있다. 자얀더의 봉급으로는 세 식구 살아가는데도 빠듯해 딸 잔나라의 몸무게는 또래의 평균치인 8kg보다 2kg이나 적다. 사만티는 “못 먹여서 그런 것 같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외국인 근로자 지원센터의 김해성 목사는 “외국인 가정도 한국에서 정상적인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며 “이들과 함께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말했다.
. 급증하는 이혼율로 늘어나고 있는 편부모 가족 역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편부모 밑에서 크는 아이들은 심리적 상처를 받거나, 사회적 차별로 학습 의욕이 떨어질 수 있다. 송다영 호서대 교수(사회복지학과)와 성정현 협성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이혼 및 사별 가족 아동에 대한 교사들의 평가’라는 논문을 2003년 계간지 ‘가족과 문화’에 발표했다. 저자들은 이 논문에서 교사들이 이혼한 부모의 자녀와 사별한 부모의 자녀를 다르게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초·중·고 교사들은 이혼 가족의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공격성이 있다’고 평가하는 반면, 사별한 가족의 아이들은 ‘소극적이고 우울하지만 차분하다’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이혼을 감행한 여성에 대해 교사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들은 분석했다. 교사들이 아직도 이혼 여성은 이기적이고 잘난 여자라는 편견을 갖고 있으며, 이런 편견이 아이들의 성격까지 예단하는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 교사가 편부모 아이들을 동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소수집단에 있지 않으려는 방어심리가 발동하게 되고,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거나 학교생활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따라서 미국 교사들은 편부모 아이들을 다루는 특별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송교수는 한국 교사들도 특별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새로운 가족 형태가 속속 등장하자 정부와 국회는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법제사법위 법안심사소위는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호적등본이란 말이 없어지고 개인별 신분등록부가 등장하게 됐다. 이혼한 가족의 자녀들은 새로운 아버지의 성을 따를 수 있게 됐고, 재혼하지 않은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다. 과거 가족의 테두리 밖에 있던 며느리·사위·장인·장모·시아버지·시어머니·처남·처제도 생계를 같이 하면 가족으로 인정받는다. 결국 호주제 폐지를 통해 가족의 범위가 넓어진 셈이다.
. 올 1월 6일부터 시행된 ‘건강가족기본법’역시 정부가 가족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18개 정부부처가 나눠 담당했던 가족 정책을 ‘여성가족부’(과거 여성부)가 총괄하고, 가족해체·이혼·혼례·가정갈등 예방을 담당하며 각종 정책과 법안을 내놓게 된다. 가족의 문제는 가족이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정부가 적극 개입하기로 방침을 바꾼 셈이다. 윤성식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7일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국가 차원의 가족정책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말했다.
. 선진국엔 ‘에이지퀘이크’(Agequake)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고령화는 지진과도 같은 충격을 가져온다는 뜻에서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지도를 새로 그리지 않을 수 없다. 폴 엘리스는 ‘에이지퀘이크’라는 책에서 어린 자녀의 양육비는 부모들이 기꺼이 짊어지지만 나이든 사람들을 돌보는 비용은 사회가 떠맡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고령화는 국민연금과 의료보험비 급증을 야기할 것이다. 고령화뿐 아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도 정부의 부담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대책은 한가지다. 무작정 공적 부담을 늘려가기보다는 노인들과 새로운 가족 공동체들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도록 법과 제도의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서울대 권태환 교수의 실험은 분명 고령화 사회를 극복해 나가는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들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게 한국 사회의 안정과 직결되는 일이다.
. 권교수에게 가족의 정의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그가 노인 공동체를 만들려는 이유도 혈족들의 눈치를 볼 것 없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새로운 ‘가족’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어쩌면 다양한 형태의 가족 공동체를 인정하는 게 고령화에 따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200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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