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히면 죽고 통하면 산다
여기는 뭘 하러 오셨는가? 무슨 답답한 일이 있는가? 그냥 재미 삼아서 클릭했다면, 지체하지 말고 빠져나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사통팔달”이라는 말과 “인생론”이라는 말이 한데 결합되어 묘하게 사람을 잡아 끄는 구석이라도 있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인생이 무엇인가를,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인지를 궁리하는 사람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원하고, 구현하고 싶어하는 사람일 것이다.
누구나 시원하게 뻥 뚫린 인생을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세상살이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갈증에 시달린 사람이 신기루를 보듯, 내일은 무지재가 뜰 것이라고 생각하여 죽어라고 달려가지만 그 내일이 오늘이 되면 다시 또 내일의 신기루를 향해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신기루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행복한 삶,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충만한 삶은 늘 내일, 내일, 내일로 연기된다.
나를 찾아와서 길을 묻는 분들이 있다. 대개는 길이 막힌 것에 대한 답답증을 호소하고, 체증이 언제쯤에나 풀릴 것인지, 비방책은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소위 인생상담이라는 것이다.
사주팔자로 통칭되는 동양철학과 흔히 점성술로 번역되는 어스트롤로지, 곧 서양 철학을 조금은 믹스할 줄 알고,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선경지명과 종합적인 대처 방법이 제시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런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나는 이것을 본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저 알음 알이로 찾아오는 분들에게, 고민을 토로하고 함께 인생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마당을 제공할 뿐이다. 생년월일시에 나타난 사주팔자와 서양의 점성술을 결합하여 하나의 종합적인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당사자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 인생의 큰 설계도를 바라볼 기회를 갖게 한다.
삶이란 술래잡기 놀이와 흡사한 측면이 있다. 5%의 능력만 열어놓은 상태에서 나머지 95%의 숨어 있는 능력을 찾아 헤매는 게임이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가진 능력이 얼마나 광대한지, 표면의식에는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정보가 감추어져 있다. 그것을 얼마만큼이나 밝히느냐 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나는 한때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 선생께 잠시 문학 수업을 받은 적이 있고, 한 학기 동안 들었던 그분의 작문 시간에는 99점을 맞았다. “왜 하필 99점이냐?”라고 여쭙자 그분은 “인간에게는 100점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셨다. 하지만 99점도 황홀한 점수임이 분명하다. 그분의 사랑이 플러스 알파 되었기 때문에 받은 과분한 점수라고 생각한다.
“이방인”의 카뮈와 “구토”의 사르트르, “변신”의 카프카로 대표되는 무신론적 실존주위에 심취, 마술적 리얼리즘의 방법에 입각하여 소설쓰기를 하던 나는 한계에 부닥쳐 신음했다.
‘실존적인 허무를 전염시켜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쓸모를 위해 문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다른 노래를 하고 싶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가 만나면 플러스로 바뀌듯이 작가의 허무주의와 독자의 허무주의가 만나면 공감대라는 플러스가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것이 허무주의라는 본질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바닥까지 박박 긁어도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확대 증폭해서 말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새로운 원천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인생이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근원적인 질문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인간이 찾아낸 해답의 여러 진열장들을 탐색했다.
예수, 석가, 노자, 장자는 인간 정신의 황금맥이었다. 그 맥을 따라 그분들의 정신을 산책하는 것은 황홀한 시간이었다. 주역에도 심취했다. 단 카스터의 “정신력의 기적”, 노만 필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위시한 자기계발 부분의 책자는 500권 이상 읽었을 것이다. 호흡법을 위주로 하는 명상에도 심취하여 정수리와 눈썹 사이의 이마에 빛이 와 닿은 것은 물론, ‘빛의 드릴’이 심장에 꽂혀 나선형으로 회전하면서 심장을 어루만져 주고 청소하는 희한한 체험을 몇 차례 하기도 했다. 자기 계발과 명상, 수련법 등 정신세계 분야의 책을 번역, 편집하는 일을 해오고 있고, 최근에는 고명언 선생을 정점으로 하는 “스스로 치유 명상”에 입문, ‘작은 나’를 잊고 위대한 그 원에 접속되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자기탐색을 하는 20년 동안, 나는 조금씩 밝음을 향해 나아갔던 것 같다. 무신론적 실존주의라는 어둠 속을 헤매면서 자기 탐색을 하던 나에게는 어느 날 빛이 들어오는 작은 틈새 하나가 눈에 띄었고, 그 후부터는 그 틈새를 더욱 더 크게 하는 일에 매달린 셈이다.
소설가 이병주 님은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햇빛에 물들면 역사가 된다”고 하셨다. 달빛이든 햇빛이든 그것은 모두 ‘빛’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빛은 삶이라는 어둠 속에 나 있는 길이다. 우리는 빛에 의지하여 길을 찾고, 앞으로 나아간다. 길이 막힌다는 것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는 뜻이고, 빛이 부재한다는 뜻이다.
통하였느냐?
<스캔들>이라는 영화에는 바람둥이가 새침뜨기 정절녀를 무너뜨리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묘사된다. 조씨 부인(이미숙 分)은 남편의 소실로 들어오게 될 처녀를 사전에 장악할 의도로 천하의 바람둥이 조원에게 그녀를 무너뜨리라는 지령을 내리고, 작업의 진도를 수시로 점검하면서 그때마다 “통하였느냐?”고 묻는다.
“통하는 것”으로써 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비단 남녀상열지사에서만이 아니다. 복잡한 세상살이의 궁극에는 “통하는” 경지가 자리한다. 우리 모두는 세상물정에 통하고, 사물의 이치에 통하고, 하늘과 통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닐까?
통하지 못하고 막히면 답답하고 불편하다. 쉽게 말해서, 숨이 막히면 죽는다. 너무나 간단하다. 막히면 죽고 통하면 사는 것이 인생이다.
안간힘을 써도 제대로 통하지 않아 20분 이상을 화장실에 머물러야 하는 변비 신세라면 제 아무리 재미난 읽을거리를 들고 앉아 있어도 고역일 것이 뻔하다. 변비가 왜 만병의 근원일까? 건강한 상태가 피가 잘 통하고 기(氣)가 잘 통하는 상태인데, 음식물이 소화되어 배출되는 통로가 막히면 몸 안의 모든 작용이 원활하지 못할 것이 당연하다. 하수도가 막히면 집안에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여 견디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8차선 대로가 뚫려 있어도 교통체증으로 막히면 골목길보다 못하듯이, 우리 몸 안의 회로도 사방팔방으로 통하는 길이 뚫려 있지만 교통의 흐름이 원활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길은 통해야 한다. 내 안의 기와 혈이 가는 길도 원활하게 통해야 하고, 가족 구성원끼리도 통해야 하고, 이웃과도, 동료나 상사와도 통해야 한다. 위정자와 백성도 서로 통해야 하고, 나라와 나라도 서로 통해야 지구촌이 건강하다.
통할 것을 포기하고 문을 닫아걸면 고독과 우울이 찾아오고, 그것은 병이 된다. 통하지 않으면 인생은 감옥으로 변한다. 어떻게 해야 닫힌 문을 열고, 사방팔방으로 통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나는 두루두루 통하는 길을 모색할 것이다.
나는 내가 너무 좋다, 나는 이 일이 너무 좋다, 나는 이 사람이 너무 좋다, 나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는 충만감이 결여된 채, 하루하루를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운명의 신에게 끌려 다니는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인생길이 잘 닦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묵은 과거를 떨치고 일어나 적극적으로 “통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몸 안의 기와 혈이 잘 통하는 길에서부터 돈이 더 잘 통하는 길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잘 통하는 길에서부터 궁극으로는 하늘과 더 잘 통하는 길까지 …
스카이벤처 유영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