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 하는말로 나는 연탄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있다.
삼 남매중 맏이로 태어난 나는 이른바 남들이 말하는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했던가 '
내 아래로 남동생만 둘이니 살림 밑천 노릇은 톡톡히 한것같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때 (지금은 초등학교 라고 하지만 난 국민학교가 더 친근감이 있다.)
엄마는 온갖 심부름을 나에게만 시켰다. 물론 맏이라 말기도 잘 알아듣고
동생들은 어리다고만 생각 했으리라.
온갖 심부름중 제일 하기 싫은 심부름이 연탄 심부름이었다.
지금 나의키는 150cm 될까 말까 이다.
우리 남편의 말을 빌리면 기분좋으면 150, 기분 나쁘면 148 할정도니...
그래도 얼굴이 쬐~끔 받쳐주니 우리남편 귀엽고 이쁘단다. (아이고~말이 삼천포로 빠지넹) ^^*
그건 그렇고 지금 40~50대 이신분들은 잘 아실꺼다.
옛날에는 살림이 넉넉치 못했기 때문에 연탄을 많이 들여놓고 사는집들이 별로 없었다.
엄마는 연탄을 대여섯장씩 사오라고하면 내가들고 올수있는 연탄은 두장이다.
연탄 가운데 구멍에 새끼줄을 넣어 밑에 매듭을 지어주면 연탄위로 한뼘 반정도 새끼줄을 잘라준다. 연탄을 들고 갈수있게.....
연탄을 들고오다보면 연탄이 무거워 손에서 점점 미끄러져 내려간다.
키가 작으니 연탄은 땅에 닿을수밖에 몇발자욱가다 쉬고 몇 발자욱 가다 쉬고
팔을 넓게 벌릴수 없으니 양쪽바지는 새까맣게 될수밖에 없고 손이 시려워 장갑은
벗을수도 없고...
그래서 생각해 낸것이 대야에다 연탄 세개를 담아 이고 오는것 이었는데 내 키와
체중 으로써 연탄 세장은 너무 힘에부쳤다.
그래서 또 생각해낸것이 연탄집 아저씨께 손으로 잡을수있는 부분을 좀 길게
잘라 달라고 하였다.
그러면 손에 한번 감아서 들기 때문에 무겁긴해도 미끄러 내려가질 않아서 수월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하면 왜 엄마에게 그런 고충을 이야기 안하고 그 연탄 심부름을
고분고분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엄마와 가끔 그시절 이야기를 하며 그때 엄마가 연탄 심부름을 너무 많이시켜서
내가 이렇게 키가 안자란 거라고 웃으며 원망아닌 원망을 해보면
엄마의 얼굴엔 어느새 미안한 기색이 역력해진다 .
그래도 키는 작지만 야무지단 소리 들으며........
덩~ 빼고 버릴것 하나없단 소리 들으며.......
시엄니 잘모시며......
175cm키의 건장한 남편만나 오손도손 잘 살고 있습네다.
^^지금 저에게 연탄 이야기를 하시는분이 계시다면 그건 저를 두~번 죽이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