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한 민족의 우주철학 사상의 근원적 재 해석(6)
신미(信眉)대사와 한글
속리산 복천암에 전해져 오는 ‘신미대사(1403~1480) 한글 창제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신미(信眉)는 속성(俗姓)이 영산김씨(永山金氏)인데, 영산김씨 족보를 추적해보면 ‘집현원학사(集賢院學士)’로 ‘득총어세종(得寵於世宗)’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집현전학사’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말이다. 이처럼 집안 내에서는 신미가 집현전학사였다고 내려오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그가 집현전에서 일했다는 기록이 없다. 불교 승려는 무대 뒤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시대였던 것이다.
세종은 죽기 전에 유언으로 신미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라는 법호를 내렸다. 하지만 유생들의 줄기찬 반대로 인해서 ‘우국이세’(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이롭게 했다)라는 표현은 삭제되고, ‘혜각존자’라는 단어만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신미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범어(梵語)와 티베트어로 된 불교경전에 정통했던 대학자였으므로 혜각존자라 할 만하다. 이러한 인물이니까 세종 사후에도 세조(世祖)가 불교승려인 신미를 만나러 속리산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한글이 창제(1443)되고 나서 불과 몇 달 후에 집현전 실무 담당자인 부제학 최만리를 중심으로 한 유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다. 그 반대 배경에는 훈민정음의 원리적 근거가 유교가 아닌 불교였기 때문이고, 그 불교의 한가운데에 신미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한글 창제 무렵에 간행된 국가적인 번역사업이 불교경전이라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24권 분량의 ‘석보상절(釋譜詳節)’이 그렇고,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도 그렇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도 찬불가(讚佛歌) 아닌가. 쉬운 한글을 만들었으면 ‘논어(論語)’‘맹자(孟子)’와 같은 유교경전들을 번역해서 백성들이 읽게 해야지, 왜 하필이면 불경을 번역했단 말인가.
‘월인석보’는 세종의 어지(御旨)가 108자이고, ‘훈민정음’은 28자와 3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찰에서 아침 저녁으로 종을 칠 때 그 횟수는 28번과 33번이다. 하늘의 28수(宿)와 불교의 우주관인 33천(天)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신미 창제설’의 결정적인 근거는 신미가 당대 최고의 범어전문가였고, 한글이 범어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이다.
[주석①]:태고사의 말과 글을 밝힌 강상원 박사와 상고사의 길을 연 율곤 이중재 선생과 몸통 학문을 완성한 골장 김태수 선생의 “골장의학사”와 “골장의학과 골장체질도표” 그리고 “의학원류사”를 탈고 하였습니다.학문의 암흑기를 벗어나게 하신 이분들의 공로는 위대합니다.나도 여기에 조금 동참 하고자 합니다.
[주석②]:우리 사회는 현재 아수라장이다.
그 이유는 공과 사, 토론과 대화를 구분 못 하는 사회 구조와 거물망으로 뒤 엉켜있기 때문이다.그 이유는 그 동안의 정치인과 지식인이 무식했기 때문이다.이말은 국가이익과 개인 이익을 구분 못하는 이유 이기도 하다.이것이 일본과 다른 이웃 나라 보다도 특없이 부족 하다고 본다. 이 모두의 뿌리는 국민 대 다수가 무식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무식은 사리 분별을 모른 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 점이 현재 한국의 가장 큰 문제다.
국민과 정치 지도자의 불신은 정치인은 국가를 팔고, 경영인은 자본주의를 팔고,국민은 자유를 판다. 여기에 그 어느 누구도 책임감이 없다는 것이 현재의 문제다.지난 100년은 잘 살아 보겠다는 욕망이 있었다면,지금은 자유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앞으로 우리가 해야할일은 무식으로부터 해방 해야 한다.그 무식의 출발은 공과 사, 토론과 대화를 구분으로부터 시작 되어야 함을 말 하고 싶다.우리 사회가 토론이 없는 사회는 갈등만이 존재 한다.국가 통일을 이야기 하지만 이를 치열하게 토론하지 않고,주의 주장만 한다. 그 밑바탕에는 사리 사욕적 욕심만을 대변한다.그래서 갈등이 온 매스컴에 조장 되는 것이다.현재 일본과 초계기 와 우리함정을 두고 서로 레이다 공방을 우리는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멀지않아 율곤 선생님의 표현대로 임진왜란때 밤에 일본 병사가 겁탈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앞산에 하얀 소복이 백로가 앉아있는 것처럼 많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겠습니다. 2019년 1월 20일 7:23분에 김태수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