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으로 가는 먼 길 -공선옥-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들 2006/09/12 15:21   http://blog.azoomma.com/gusgml0131/232595

 

공선옥

소설가. 1991년 계간<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단편<씨앗불>을 발표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으로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시절들><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등이 있다.

1995년 제13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다.

 

밥으로 가는 먼 길

 

 언젠가 경북 봉화땅엘 간 적이 있다. 거기 예쁜 소년 둘이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집은 오두막집이었다. 이제 열 세살 연년생 형제는 할머니와 고추밭을 일구며 살고 있었다. 그들 가족의 생계수단은 오직 산비탈 밭에 일군 고추뿐이었다. 소년네는 고추를 팔아 쌀을 사고 반찬을 사고 소년들의 학비로 썼다. 그러나, 소년네가 먹는 밥은 쌀밥이 아니었다. 쌀과 감자와 조가 반반씩 섞인 밥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다음에 갔을 때 소년네가 먹는 밥에는 쌀이 섞여 있지 않았다. 조와 감자만으로 이루어진 밥을 소년네는 먹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난번 내가 본 밥은 특별히 손님이 왔을  때만 짓는 밥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제서야 알았던 것이다. 소년네를 어느 사진작가가 잡지에 소개했다. 세상에, 이 시대에도 감자밥, 조밥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니. 소년네를 소개한 글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자 소년들의 집에 왔다. 그 사람들 중에는 교회 사람, 사회복지사, 방송국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 소년들이 도움을 주고자 온 사람들을 거부했다. 아니, 사양했다. 이유는 단 하나, 오움을 받아서 그들이 쌀밥을 먹기 시작하면 이후에는 절대로 조밥, 감자밥 먹기 싫어질 것 같아서였다고 했다. 남의 도움 받아 쌀밥 먹기 시작하면 할머니가 해주시는 조밥, 감자밥을 무시하는 마음 생길 것 같아서라고. 우선먹기에는 쌀밥이 더 좋지만, 그래도 소년들은 할머니가 해주시는 조밥, 감자밥이 더 소중하다고. 소년들에게 밥은 그냥 밥이 아니라,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할머니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냥 할머니였다.

 

 소년들은 세상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쌀밥도 먹고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할머니 사랑을, 더 나아가 할머니 존재를 그들이 잊어버릴 것이 겁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경북 봉화 산골의 그 소년들이 내게 가르쳤다. 밥은 사랑이라고. 그것이 아무리 조밥, 감자밥이라도,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랑으로 만들어진 밥이니, 그것이 어찌 사랑 없는 쌀밥보다 귀중하지 않겠느냐고. 그리하여 소년들은 쉽게 얻을 수 있는 쌀밥의 길을 거부하고 오늘도 조밥, 갑자밥으로 가는 먼 길을, 그 거친 길을, 그 험한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거칠고 험하지만 당당한 길을.

 

                                                    

 

봉화의 소년들에게 밥으로 가는 길이, 한 그릇의 밥을 얻기 위한 그 길이 당당한 길이라면 내가 만난 전라도 곡성의 '오두막집 할머니'에겐 정직한 길이었다. 내가 곡성 살 때인데, 해도 지고 어두운 저녁에, 아이를 들쳐 업고 동네 한바퀴를 돌다 그 집을 발견했다. 전깃불도 켜지 않은 산 밑 오두막집. 그 속에서 문득 사람 소리가 났다. 귀신인 줄 알았다.  놀라서 들어가 보니, 머리가 하얀 조그만 할머니가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반찬이라곤 오직 토장국 하나, 거기에 밥을 말아 먹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니 할머니가 밥을 내민다. 같이 먹자고. 할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토장국 하나에만 밥을 먹고 살아왔다고 했다. 이 세상에서 맛난 것은 오직 한그릇의 보리밥과 토장국 한사발. 세상의 온갖 맛나다고 하는 것도 할머니는 맛있는 줄 모르겠다 했다. 하루종일 뙤약볕 밑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어둠 속에서 흙 묻은 손으로 먹는 보리밥 한사발이 할머니한테는 그 어느 진수성찬보다 맛있다고 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 그대로 할머니의 목숨줄이라고 했다. 토장국 만 밥 한그릇 먹고 물 한사발 마시면 할머니는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해 뜨면 일어나 다시 토장국에 보리밥 먹고 밭으로 일하러 나가고 밤이면 돌아와 어둠 속에서 토장국에 밥 먹고 잠자리에 드는 할머니의 삶이라니. 할머니는 밭에 토장국 만들 콩을 심고 보리밥 만들 보리를 심고 가꾸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먹고 살았다.

 

 할머니는 이 세상의 어떤 음식도 필요치 않았다. 이 세상의 어떤 장식도 필요치 않았다. 그냥 불 때서 법을 짓고 그 밥솥에 토장국을 얹어 쪄내고 그 불 땐 부뚜막에 걸터앉아 밥을 먹고 그 불 때서 따뜻한 방에 들어가 잠자리에 드는 것. 아, 한그릇의 밥과 반찬은 그냥 할머니의 일생이었다.

그리하여 그때 할머니가 내게 가르쳐 줬다. 토장국 한가지에 밥을 먹는 사람은 세상에 죄 지을 일이 없다는 것을. 세상의 죄란 죄는 진수성찬, 산해진미 찾는 사람들이 짓고 산다는 것을. 산짐승들은 세상의 딱 한 가지씩만 먹고 살기 때문에 '죄 없는 짐승' 소리를 듣지 않는가. 당당하고 정직한 길, 그것이 밥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니 밥으로 가는 길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한그릇의 밥을 얻기 위하여, 또 어떤 이들은 그 얼마나 비굴해지는가, 그 얼마나 남루해지는가, 그 얼마나 치졸해지는가. 그리하여 나는 오늘 내가 먹는 이 밥 한그릇은 당당함으로 얻은 밥인가, 비굴함으로 얻은 밥인가, 묻게 되는 것이다. 아니다. 그보다 앞서, 어렵게 얻어진 밥인가, 쉽게 얻은 밥인가, 절로 묻게 되는 것이다.

 

                                                   

 

잊을 수 없는 밥 한그릇  중에서

박완서 외 12인 지음

도서 출판 한길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