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은희(1926- ) 는1949년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서"로 영화계에 데뷔. 이후 신상옥 감독을 만나 함께 영화를 만들면서 본격적 으로 한국 영화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그녀는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배우로 당대 최고의배우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 감독 중의 하나다
아마도 당대의 영화평론가들에게 가장 최은희적인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별 망설임 없이 <상록수>(신상옥 1961)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1961)를 택할 것이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처럼 '신식 교육을 받은 구식 며느리' 같은, 한편으로는 이율배반적이면서도 시대적으로 보면 그럴 법한 이미지가 그녀의 페르소나[영화속에서 또다른 인격체]인 것이다. 최은희의 얼굴에는 전통과 근대가, 그리고 엄숙과 관능이 묘하게 뒤섞인 채 묻어난다. 그래서 영화평론가 김종원 같은 이는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1961)을 본 후 춘향 최은희에게 오히려 '서민이라는 열등 의식이 가시로 무장한 의지와 육정과 유혹의 독화(毒花)'라는 수사를 바치기도 했다. 즉 최은희의 이미지는 완전히 정숙하지 않다.
그러므로 최은희를 다만 '인종의 여인', 즉 체념하고 순종하는 한국 여인의 고전적인 정형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녀에게서 근대 여성의 체취를 말끔히 지워버리는 부당한 처사로 보인다.
이를테면 1958년은 어쩌면 모순되어 보일 수도 있을 근대의 두가지 표정을 최은희의 얼굴에 깊이 새겨넣었다. 요컨대 <지옥화>(신상옥 1958)의 양공주 쏘냐가 가족과 남편을 배반하고 자본과 정욕을 찬양하는 '모던한 욕망'이라면 <어느 여대생의 고백>(신상옥 1958)에서 변호사 소영은 남성의 법을 반신반의하는 '모던한 이성'인 것이다(소영의 변론은 사회의 법보다는 개인의 윤리에 호소하며 변호사인 그녀 역시 선의의 위법자이다).
그해 신상옥 감독의 <지옥화>에서 육체적인 충동에 따라 시동생을 유혹하고 급기야 남편을 헌병대에 고발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양공주 쏘냐로 분한 최은희는 <아름다운 악녀>(이강천 1958)의 최지희와 함께 한국영화사에서는 다소 희귀한 편에 속하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계보를 시작한다. 가슴과 등이 깊게 파인 검정색 이브닝 드레스 혹은 검정색 하이힐과 몸에 딱 달라붙는 스커트를 입은 쏘냐가 변형된 먼로 워킹을 구사하며 기지촌을 활보하자, 그리고 자신의 부도덕한 관능미를 과시하며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뿜어내자, 최은희는 팜므 파탈의 원형적인 이미지를 문신처럼 품게 된다.
명실공히 아프레게르(aprés-guerre : 전후 한국에서 '아프레걸', '아프레뛋' 등으로 발음된 전후파는 성적으로 분방하고 도발적인 이미지의 여배우들에게 붙어 다니는 수식어이기도 했다)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최은희는 이후 그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실제로 이 영화가 상영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은희를 악녀로 낙인찍으려는, 치명적인 스캔들이 터졌고 이에 맞서 최은희는 언론에 항의 고백을 실으면서 공세적으로 대응했는데, 어쨌거나 이 사건으로 그녀의 아프레적인 이미지는 더욱 강해졌다.
<지옥화>와 <어느 여대생의 고백> 모두에서 싸늘하면서도 관능적인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최은희는 가부장적 세계관에 구속받는 것을 끝까지 거부한다. 또한 상징적으로는 서로를 변론한다. 이를테면 쏘냐는 일부종사(一夫從事)의 덕목을 위반하고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소영은 일부다처(一夫多妻)의 관습을 비판하면서 남편을 살해한 아내를 변호했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여성을 구원하는, 그래서 최은희의 집앞으로 수많은 여성관객들을 불러들였던("은희 언니를 한 번만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어요") 양생의 여인인 소영의 권력과 달리, 남자들을 유혹하여 파멸의 덫에 옭아매는 마성의 여인으로서 쏘냐의 권력은 완전히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렇지만 쏘냐의 공격적인 섹슈얼리티는 결국 여성성을 악용한 대가로 남편의 칼에 맞아 진흙탕 속에서 처참히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복수의 화신처럼 사자(死者)의 여전히 위협적인 표정을 통해 유지된다. 축소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쏘냐는 여성 권력의 매혹적인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끝날 즈음 최은희가 연주하는 피아노의 격정에 찬 음률에는 그런 쏘냐의 위협적인 이미지가 부유하고 있다. 이처럼 최은희의 매력은 금기시된 성적 에너지를 성공적으로 억누르기 보다는 오히려 그 충동을 사려 깊게 간직하고 언뜻 일별하게 하는, 그런 만큼 지적이면서도 관능적으로 보인다는 것에 있다.
그렇지만 최은희는 감금되어 있는 근대 여성이다. 또는 전향한 '과거의 신여성'이다. 최은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는 평가를 듣는 <상록수>의 채영신처럼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계몽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과거형의 신여성이다. 스크린 안팎에서 최은희의 페르소나는 그 자체로 여러 긴장들의 혼합물이다. 권태와 충동, 냉소와 열정, 숭고와 관능, 그리고 모던과 전통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자이다. 그리고 1947년 <새로운 맹서>(신경균)로 데뷔한 이래 그녀를 따라다녔던 악명높은 스캔들이 스크린 페르소나와 충돌하면서 그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 속 캐릭터만 놓고 본다면 결국엔 수세로 몰리는 여자이다. 어쩌면 스크린 속에서 최은희의 모던함이 결코 동시대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상록수>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최은희는 그 시대가 원했던 이미지였다. 그러므로 당시 최은희를 '한국의 연인'이라 칭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1950, 60년대 관객들의 분신이며 우상이었던 최은희는 전후 한국 여성들의 삶을 지배했던 긴장과 불안과 충동의 흐름을 고통스럽게 드러낸 '시대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순응했던 이상적인 '한국의 연인'인 것이다.
사실 최은희의 스크린 페르소나가 이렇게 굳어진 것은 훨씬 전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여성생활》59년 11월호에는 '<삼여성>(박성복 1959)의 배역 알아맞추기 10만환 현상 퀴즈'의 정답을 싣고 있는데, 심술궂게 사랑을 추구했으나 성과가 없는, 가장 영악한 듯하면서도 서글픈 여인은 노경희이며, 신앙처럼 사랑을 믿었으나 숙명적으로 눈물짓는 여인은 이경희이고, 사랑을 해도 남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남의 행복을 위해 체념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양식이 발동하는 지성의 여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최은희였던 것이다. [위 그림 3여성부분 좌측 노경희 가운데 최은희. 오른쪽 이경희]
그런데 한 대담에서 최은희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며느리 역할이 가장 곤혹스러웠다며,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면으로 흐르는 정적인 자신의 역할과는 반대로, 동적으로 움직이는 도금봉의 역할이 참으로 멋스럽게 보여 부러웠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주위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연기 스타일을 강요하는 듯해 불만스러웠던 그녀는 관객들이 기억하든 못하든 동적인 스타일로의 연기 변신을 몇 번 시도하였는데, 일례로 <로맨스 그레이>(1963)에서는 신상옥 감독에게 동적인 역할을 달라고 졸라서 만자(滿子) 역을 맡게 되었고, 이로써 최은희는 평생동안 <지옥화>의 쏘냐를 포함해서 양공주 역을 두 번 연기할 수 있었다. 물론 최은희의 팬들은 그녀의 인상이 흐려진다고 다시는 그런 역은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1965년 <민며느리>를 감독하면서 박남옥과 홍은원에 이어 한국영화사에서 세 번째 여성감독이 되었으며 그 소란스러웠던 납북 사건으로 홍콩 미스테리의 국제적인 히로인이 되기 전까지 안양예술고등학교의 교장을 지내기도 했던, 사실 공세적인 여배우 최은희의 진심은 어쩌면 자신의 얼굴을 빌어 윤색되어가는 한국 여성성의 영원한 신화를 내심 깨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여성영화인사전(글/여선정)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