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정(水程) 노을 / 박소향
갈라진 대지의 살 냄새가 허공에 날리면
빛의 틈새로 꽂히는 혈의 황혼
목 울을 타고 흘러내린 열정의 숨 끝에
가시지 않은 목마름처럼 그가 늘 숨어있다
서서히 쓰러져 가는 노을의 얼굴만큼
하루를 달구던 가슴 한 쪽에 기대
붉은 취기가 되고 싶은 나는
너를 조금씩 닮아가나 보다
네가 없는 거리만큼 쓸쓸한 계절이
또 있을까
바람마저 앉지 않는 마른 가지에
조용히 눕는 수정(水程) 노을
손가락 마디마디 실핏줄을 건드리며
결코 빈 허공일 수 없는 네 등줄기에
빈곤한 시어 숨길 수밖에 없는 나는
수줍은 저녁별이라도 되어야지
뜨겁게 타다 만 정염의 혀끝에
순수의 눈물로 비틀대며 부서지는
초라한 이름이라도 되어야지
살얼음 진 언덕에 눈부신 발아를 꿈꾸는
씨앗의 그 환한 희망의 노래처럼
이제 맘껏 너를 흔들며
감추었던 나신(裸身)을 벗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