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소위 ‘반값아파트’로 불리는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주택과 관련한 논란도 부동산과 주택을 둘러싼 이같은 지극히 한국적 상황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지난해 하반기 신규 주택의 고분양가로 인한 집값 상승이 이어지자 시민단체 등에서 분양가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여야가 정치논리로 내놓은 ‘반값’ 이라는 이름의 베스트셀러는 불가피하게 정부가 그 실효성을 검증하는 시범사업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 토지임대부 아파트와 환매조건부 아파트 시범단지의 청약률이 저조하게 나타나자, 일부 언론에서는 마치 이를 참여정부 ‘주택정책’과 ‘주거복지 정책’ 의 대명사인 것처럼 둔갑시키고 주택정책 전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알다시피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근간은 거래투명화와 투기수요억제, 주택공급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8.31정책이며, 국민임대주택 확대와 비축용 임대주택을 통한 주거복지 실현에 역점을 두고 있다. 신규 주택의 분양가를 합리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원가공개와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주택은 모든 선택가능한 제도를 검토한다는 차원에서 시범 사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분양 신청이 저조하다는 사실을 놓고 정부의 주택 정책 실패로 왜곡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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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는 17일 ‘반값아파트’ 시범사업 논란을 마치 참여정부의 주택정책 전반의 실패인 것처럼 호도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
반값 아파트 왜 무엇이 잘못됐나?
엄격히 말해 ‘반값’의 실패인지 아니면 토지임대부와 환매조건부라는 새로운 분양 형태의 실패인지 아직 정확히 단정짓기는 이르지만, 이 제도의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면 무엇이 왜 잘못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런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실체는 ‘반값’이다. 그런데 이 반값아파트는 애초 정부의 정책적 용어가 아니라 정치논리가 만들어낸 희망섞인 조어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현재 군포 부곡지구에 분양되고 있는 토지임대부 및 환매조건부 방식의 아파트가 반값아파트로 등식화되는 것을 경계해왔다.
“할부로 차를 구입한다고 해서 반값 차가 아니듯 토지임대부 분양시 임대료 등을 계산하면 결국 지가의 95%를 부담하게 된다. (환매조건부 분양에 대해) 지가가 현재보다 낮아야 시장수요가 생기며 결국 환매를 하게 되면 정부가 부담을 떠안게 된다.”(노대래 재경부 정책조정국장, 2006년 12월19일)
“환매조건부 분양제나 토지임대부 분양제를 두고 반값아파트라고 하나 맞는 말이 아니다. 사과는 사과와 비교해야지, 사과를 오렌지와 비교하는 건 맞지 않다. (일반분양아파트와) 비교대상이 아닌 것을 비교하려 들면 포퓰리즘이 될 수 있다.”(정세균 산자부 장관, 2006년 12월21일)
“‘반값 아파트’는 정확히 의미를 따져보면 과장된 표현으로, 국민들에게 잘못된 기대심리와 환상을 줄 수 있는 적절하지 못한 용어다. 이를 정부 차원의 분양가 제도개선 논의와 성급하게 연결시키는 것도 국민들에게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대지임대부 분양제도 등 이른바 ‘반값 아파트’ 분양 제도가 실제 아파트 값을 ‘반값’으로 낮추거나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근거는 별로 없다.” (강팔문 건교부 주거복지본부장 2006년 12월18일)
반값 아파트가 안되는 이유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갖고 있다. 단순히 들어가 사는 주거의 목적도 있고, 주택의 소유나 미래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 차원도 있다. 그런데 이런 욕구를 다 충족하며 가격도 절반인 반값 주택은 사실 없다. 수요자의 기대수익이 높으면 가격이 높기 마련이다.
토지임대부 아파트의 경우 토지는 임대로 하고 아파트만 분양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분양가에는 건물 값만 포함돼 있고 대지에 대해서는 임대료 형식으로 받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분양 당시에는 건물 값만 받기 때문에 ‘반값’으로 보일지 몰라도 입주 후 계속 매달 임대료를 내야하니 ‘제값’을 받는 것이다. 분양가에 땅값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인근 지역에 비해 55% 수준이지만 월 40만원 안팎의 토지 임대료를 따로 내야 한다.
환매조건부는 주공 등이 조성원가 수준으로 아파트를 분양해 분양가는 주변시세의 90% 수준으로 다소 낮지만, 일정기간(20년간) 집을 집을 팔 수 없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따르고 기간만료 후 주공 등에 되파는 경우에도 당초 분양가격에 정기예금 이자를 더한 가격 또는 주택 공시가격 중 낮은 가격만 받을 수 있다. 주택 소유 개념이 강한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시범사업 시작 당시에도 토지임대부 아파트는 무늬만 반값아파트라는 지적이 있었고, 환매조건부는 재산권 제약이 많아 주택을 ‘주거’보다 ‘소유’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국민정서와 너무 떨어진 방식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정부는 왜 시범사업을 했나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아파트를 놓고 올해 초까지 정치권과 정부 간에 실효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정부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요구를 일정부분 수렴해 그렇다면 토지임대부와 환매조건부 아파트가 뿌리 깊은 토지소유욕을 불식시키고 분양가를 낮추는데 효과가 있는 새로운 방식인지 면밀히 따져보고 검증해보자는 입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이 지난해 12월20일 “분양가를 낮추고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안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토지임대부 분양, 환매조건부 분양 등 모든 방안을 용광로에 넣고 검토중이며 우리 현실에 맞게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를 보고 있는 단계”라고 밝힌 데서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이듬해 초 정부는 토지임대부와 환매조건부 아파트을 시범사업으로 실시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확대여부를 결정짓겠다는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분양가 인하를 위한 모든 제도를 폭넓게 검토한다는 차원에서 일단 토지임대부 및 환매조건부 등 새로운 분양제도를 올해 중 시범 실시키로 했다. 이 제도의 확대 여부는 시범사업의 성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2007년 3월2일, 김석동 당시 재경부 제1차관, 정례브리핑 중)
반값아파트는 아니더라도 토지임대부와 환매조건부 아파트가 분양가를 낮추는데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먼저 확인하고 여러 가지 평가를 토대로 보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를 검토하겠다는 의미였다.
땅 문제가 해결되면 반값이 가능한가?
정치권에서는 분양가가 반값이 안돼서 실패한 것이라고 하지만 토지 조성원가를 외면한 채 ‘반값’이라는 기준에 분양가를 맞춘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더러 일부에서 제기하듯 용적률을 400%로 높이면 된다고 하지만 이는 제도(토지임대부) 자체의 효과가 아니라 단순히 용적률 특례에 의한 효과에 불과하다. 거기에 주거환경 악화도 고려해야 한다.
반값아파트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보면 대개 ‘땅값 문제가 해결된다면’, ‘땅이 저렴하게 공급된다면’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는데 문제는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반값아파트로 잘 알려진 싱가포르는 전체 국토의 80% 가량을 정부가 소유하고 있어서 땅 자체를 값싸게 공급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국유지 비율이 30%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대로 된 택지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민간 사유지를 감정가격에 사들여 택지를 조성하기 때문에 땅값 부담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결국 토지임대부 아파트를 위해 수도권 땅을 사들여야 하는데, 한해 12조 원에 불과한 주택관련 정부 예산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부에서 반값을 맞추기 위해 정부가 손해를 보고라도 택지조성원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택지를 공급한다면 분양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국가재정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국민 세금으로 개인 아파트를 분양받는 사람들에게 분양가 부담을 보조하는 데 동의할 국민은 없다.
진정한 주거복지 정책을 이야기하자
그렇다면 이번 경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반값’이라는 허상과 한건주의 정치논리에서 시작된 이번 시범 사업은 어쩌면 비현실성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반값’이 아닌데도 반값 아파트로 둔갑시켰고, 수요와 공급을 밑바탕으로 한 경제원리나 정책적 고려가 아니라 정치적 논리로 접근한 데 근본 원인이 있다.
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와 정부도 이번 시범사업의 결과를 토대로 여러 가지 평가를 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해서 발전 가능성은 있는지, 지속성이 있는지 여부를 토론하고 검토해야 할 것이다. 아파트 가격과 분양가를 낮추는 것은 원가공개와 분양가 상한제를 잘 활용하는 것이 기본이며, 분양과 임대의 중간 형식인 이런 실험방식보다 임대아파트 확대가 바람직하다는 점이 이번 기회에 다시 증명된 셈이다.
이번 시범사업을 놓고 정부 주택정책의 실패라고 호도하거나 ‘책임공방’으로 여론몰이를 할 게 아니라,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을 위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임대주택법 등 진정한 주거복지 정책의 정착에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