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인터넷 속 또 다른 나의 발견] 삶이 피어나는 아파트

올해로 IMF 사태가 빚어진 지 꼭 10년이 흘렀다. 그간 굴지의 대기업이 쓰러졌다 회생하기도 했고, 300포인트까지 떨어졌던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가뿐히 넘으며 연일 신기록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또 39억 달러까지 감소했던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현재 2,601억 달러까지 증가하는 등 한국인 특유의 뚝심으로 다시 한번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하지만 이제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사라지게 됐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이택백’, ‘사오정’, ‘오륙도’라는 단어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통을 말해주고 있다. 그나마 취직에 성공한 20대도 월평균 88만 원을 받는다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10대도 장기적으로 취직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는 ‘십장생’이란 말까지 생겼을 정도로 고용불안은 심각해졌다.

이렇듯 지난 10년간은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아났는가 하면 동시에 더 깊은 생채기가 생기기도 했다. 이는 환란(患亂)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던 부동산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한 채로 앉아서 몇억씩 번 사람 이상으로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잃고 주저앉아버린 사람도 늘어났다.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시장의 7대 변화에 대해 알아본다.

◈ 아파트, ‘집’에서 ‘투자재’로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주택은 가족들이 모여 쉴 수 있는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주택보급률도 낮았거니와 대부분의 서민들이 부동산 투기는 먼 나라 얘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건설경기 호전을 위해 정부에서 아파트 분양권 전매를 허용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고급 정보 없이도 운만 좋으면 쉽게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곧 아파트시장에까지 번져, 외환위기 후 한껏 웅크렸던 유동자금들이 재건축아파트를 지나 일반아파트에까지 유입됐다. 실제 1997년 11월 3.3㎡당 707만 원이었던 서울 아파트값은 2007년 11월 현재 1,649만 원으로 133.2%가 올랐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아파트=돈’이라고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 아파트 브랜드 열풍
위기는 곧 기회다? IMF는 주택시장의 가장 큰 위협요인이었던 반면 동시에 가장 큰 기회이기도 했다. 경기 회복을 위한 정부의 각종 지원은 물론 회생을 위한 각 건설사들의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998년 분양가자율화 도입 이후 건설사들은 너도나도 브랜드를 개발하며 주택시장의 ‘브랜드 전성시대’를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대우아파트와 현대아파트 자리에는 푸르지오와 힐스테이트가 들어서게 됐고, 새로운 이름에 걸맞게 품질도 향상됐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기존 아파트 주민들이 외벽 페인트칠만 새로한 채 가격을 올리는가 하면 건설사들은 품질 향상을 핑계삼아 고분양가를 책정,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 강남·북 양극화 심화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7년 11월 마지막주를 기준으로 강남권(강남, 서초, 송파) 아파트의 3.3㎡당 매매가는 942만 원이었다. 그리고 비강남권은 이보다 364만 원이 낮은 578만 원을 기록했다. 아파트값이 바닥을 찍었던 1998년 6월에는 강남권 723만 원, 비강남권 478만 원으로 격차가 246만 원까지 좁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로 급속히 자금이 유입된 2001년 하반기 이후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11월까지 566만 원의 격차를 보이더니 12월 656만 원, 2002년 1월 714만 원, 3월 816만 원, 8월 972만 원, 9월 1,043만 원으로 점점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올 1월에는 강남권 2,975만 원, 비강남권 1,242만 원으로 1,733만 원의 격차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나마 11월 첫 주 현재 각각 2,955만 원, 1,299만 원으로 차이를 다소 좁혔으나, 여전히 갭을 줄이지는 못하고 있다.

◈ 웰빙/로하스 바람
먹고살기 힘든 시기를 벗어나자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이에 말 그대로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well-being)’에 이어 개인의 건강 및 사회의 지속 성장을 추구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로하스(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바람까지 불었다.

이는 주택시장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신규 분양아파트에는 어김없이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단 벽지, 페인트, 바닥재 등이 사용되는가 하면 강, 천, 공원 프리미엄도 날로 높아졌다. 건설사들도 성냥갑 같던 아파트 대신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스카이라인의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고,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 조경을 꾸미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파트의 장점을 취한 전원주택, 타운하우스 분양 열풍이 불기도 했다.

◈ 재건축·재개발 투자 열풍
부동산도 투자재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낡고 쓰러질 듯한 집에 투자를 하는 재건축·재개발 바람이 불어닥쳤다.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던 주택들이 번듯한 새 집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안겨줬기 때문이다.

실례로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의 대표격인 개포동 주공1단지의 경우 재건축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2002년 1월 3.3㎡당 2,135만 원하던 것이 2007년 11월 현재 6,553만 원으로 3배 넘게 몸값을 키웠다. 이는 6.6㎡로 수도권의 웬만한 소형 아파트 1채를 살 수 있는 셈으로,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또 강북의 재개발 지분 역시 사업 초기만 하더라도 3.3㎡당 1,000만 원을 넘지 못한데서 현재는 2,000만 원 이하 물건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 주상복합 전성시대
‘주상복합’하면 타워팰리스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사실 이 주거형태를 널리 알린 데는 2002년 10월 분양된 송파구 신천동 롯데캐슬골드의 공이 크다. 당시 일반 아파트와는 달리 청약통장 없이 청약이 가능했던 데다 분양권 전매도 자유로워 평균 337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기록한 것이다. 이어 한 달 차이로 공급된 양천구 목동의 하이페리온2도 평균 6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이렇듯 높은 관심도에 따른 높은 프리미엄이 형성되고, 전에 없던 단지 내 편익시설 및 소속감이 생기게 되면서 바야흐로 주상복합 바람이 불게 됐다. 특히 조망권 가치가 커지면서 40~50층 이상의 초고층 주상복합이 인기몰이를 했는데, 도곡동 타워팰리스, 목동 하이페리온, 용산 시티파크, 파크타워, 자양동 스타시티 등은 일대 스카이라인을 바꿔놓기도 했다.

◈ 고분양가 논란
분양가자율화, 아파트 브랜드화, 웰빙·로하스 바람 등은 주택시장의 자율화, 다양화, 고급화 등의 순기능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를 적용한 신규 공급아파트의 분양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것이다. 실제 2000년 10차 동시분양에 나왔던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는 강남구 평균가였던 3.3㎡당 1,080만 원보다 2배 이상 비싼 2,700만 원에 소개된 바 있다. 결국 처참한 분양 실패 후 1,500만 원에 재분양됐지만, 이 역시 지역 평균보다는 높은 수준이었다.

그 이후로도 인천 송도신도시, 용인 동백지구, 성남 판교신도시, 남양주 진접지구, 은평뉴타운 등지의 수도권은 물론 부산, 대구, 창원, 청주 등의 지방에서도 지역 평균을 훌쩍 뛰어 넘는 고분양가 아파트가 선보였다. 심지어 지난 10월에는 옵션가 포함, 3.3㎡당 4,000만 원이 넘는 최고가 아파트가 공급됐으며, 분양을 앞두고 있는 성동구 뚝섬 주상복합 또한 벌써부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