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처럼 정겹고 담담한 칼국수
칼국수 꿋꿋하게 밀어낸 굵직한 면발, 멸치간장 국물로 끓여내
할머니의 칼국수는 특별하지 않다. 고향에서 식구들과 해먹었던 맛, 만들었던 방식 그대로 끓여낸다. 아침에 미리 만들어둔 멸치와 다시마, 이게 칼국수 국물의 기본이다. 생마늘, 생강으로 맛 간장을 만든다. 면은 전날 미리 반죽해둔 걸 꺼내 두 자루의 홍두깨로 둥글게 밀어서 얇게 편다. 미는 과정에서 밀가루를 듬뿍 바른다. 이윽고 보름달만큼 반죽을 넓게 펴면 주름치마처럼 접어서 큼지막한 칼로 자른다. 칼국수가 되는 순간이다. 자른 국수 가락은 다시 밀가루를 묻혀 몇 번을 치댄다.
할머니가 손으로 자른 칼국수 면발은 대체로 굵직하다. 그러나 어떤 것은 가늘다. 너무 오래 써서 가운데가 움푹하게 패인 도마 탓이 크다. 그런데 이 불규칙한 면발의 굵기가 오히려 먹는 재미를 더해준다. 기계로 자른 반듯하고 일정한 국숫발에서는 맛볼 수 없는 묘미가 있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맛, 그 맛 못 잊어
칼국수 면발을 삶아 건진 뒤 국물을 붓고 고명을 얹는다. 고명이라고 해야 김 가루와 잘게 썬 대파가 전부다. 달걀 비린내가 칼국수 본연의 맛을 방해한다고 ,,,,잘 넣치 않는다 칼국수가 나오면 보통 양념장을 넣어 먹는다. 양념장에는 청양고추가 들어가 맵다. 너무 많이 넣지 말고 적당히 넣은 게 좋다. 고추장도 있는데 바로 이 고추장을 칼국수에 넣어 먹곤 했다. 살짝 매우면서도 달짝지근한 고추장 향기를 즐겼다. 할머니가 직접 담근 김치와 깍두기도 제법 맛있다. 젓갈 없이 생마늘을 충분히 넣고 담가 뒷맛이 깔끔하다.
할머니의 말처럼 칼국수는 아주 고급스럽거나 특별하지 않다. 억지로 멋 부리지 않았다. 장식을 하지 않은 소박한 고향의 칼국수 그대로다. 입보다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준다. 건방 떨지 않은 겸손한 맛이다. 먹다 보면 고향을 떠나기 전 본래의 나로 돌아가게 해준다.
- 칼국수 면발과 칼국수 사진
아, 어머니! 당신의 칼국수가 그립습니다
한 여름날 저녁이면 칼국수를 먹는 날이 많았다. 들판에서 돌아온 엄마는 급하게 밀가루 반죽을 밀었고, 나는 밀짚에 불을 붙여 아궁이로 밀어 넣었다. 솥에 물을 붓고 시렁 위의 남은 감자와 호박을 뚜꺽뚜꺽 썰어 넣은 뒤 간장을 풀었다. 연기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한참 밀짚을 밀어 넣으면 무쇠 솥도 눈물을 흘리고 물이 설설 끓었다. 그때쯤 마루에서 칼국수 써는 소리가 똑 똑 똑 들려왔다. 엄마는 고르게 자른 칼국수 면발을 채반에 담아 부엌으로 가져왔다. 솥뚜껑을 열고 칼국수를 넣은 뒤 긴 나무 주걱으로 몇 번 휘휘 두르고 솥뚜껑을 닫았다. 다시 타닥타닥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불을 때면 잠시 후 와그르르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칼국수가 익고 구수한 밀내가 부엌에 퍼졌다.
커다란 양푼에 칼국수를 퍼 담아 앞마당 펌프에서 길어 받아둔 찬물에 식혔다. 마당에 멍석 깔고 두레상을 펴, 식구대로 땀 흘리며 서너 그릇씩 퍼먹으면 어느새 은하수가 머리 위로 뜨곤 했다. 동네 사람들도 지나다가 한두 명씩 상머리에 끼어 못 이기는 체 칼국수 그릇을 비웠다. 다 먹고 나면 졸음이 왔고 땀내 나는 엄마 무릎을 베고 멍석 위에 누웠다. 엄마는 비료포대 잘라 만든 부채로 모기를 쫓다가 다시 수저 들고 칼국수를 먹었다. 엄마는 그렇게 부채와 숟가락을 번갈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모깃불 냄새와 두런두런 얘기소리 아련해지면 어느새 꿈나라 입구였다.
가끔 그때 먹었던 칼국수 맛이 그리워진다. 닭 육수의 구수한 맛이나 감칠맛 넘치는 바지락 국물은 아니지만 언제 먹어도 한결 같은 엄마 냄새가 나서 좋다.
기고= 글 이정훈, 사진 변귀섭 chosun.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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