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선화공주 작품 아니다
기본 주제방 2009/01/20 06:28   http://blog.azoomma.com/finger310/283337
                                 ‘미륵사지’ 선화공주 작품 아니다

‘서동왕자’로 유명한 백제 제30대왕 무왕(武王·재위 600∼641년)과 신라 선화공주의 설화가 깃든 전북 익산 미륵사지가 선화공주가 만든 것이 아니라 좌평 사택적덕(沙積德)의 딸인 백제왕후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국보 제11호 미륵사지석탑(서탑)도 무왕의 재위기간 중인 639년에 만들어진 사실도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조사 과정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일체을 발견하고 19일 오후 2시30분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 현장에서 중요 유물 일체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유물들은 지난 14일 1층 심주(心柱·중심 기둥으로 찰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윗면(상면·上面) 중앙의 사리공(舍利孔·사리장엄을 안치하는 공간)에서 수습된 금제사리호(金製舍利壺)와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 은제사리합(銀製舍利盒) 6개, 장식용 칼로 보이는 단도 2점, 은제관식(銀製冠飾), 시주자 명단이 새겨져 있는 얇은 금편, 각종 구슬 등 유물 500여점이다. 이날 발굴된 금제사리봉안기를 분석한 결과 미륵사를 창건한 백제왕후는 선화공주가 아닌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에따라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와 결혼했다는 설화는 후대의 가공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최영창기자 ycchoi@, 사진제공 = 국립문화재연구소
 
                
                                  미륵사 금동사리항아리 열어보니…


더 작은 金항아리… 그 안에 사리 12과

전북 익산시 미륵사 터 석탑(국보 11호)에서 발견된 금동사리항아리(높이 13cm) 안에 숨어 있던 작은 금제사리항아리(높이 5.9cm)가 공개됐다. 작은 금제사리항아리 안에서는 사리 12과(顆·사리를 세는 단위)도 나왔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일 “몸체를 위아래로 따로 제작한 이중구조인 금동사리항아리를 분리해 사리항아리 안에서 작은 금제사리항아리를 꺼냈다”며 “이 금제사리항아리는 금동사리항아리 발견 당시 X선 촬영으로 존재만 확인됐던 것”이라고 밝혔다.

1월 미륵사 터에서는 미륵사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의 딸인 백제 왕후가 창건한 사실이 담긴 금제사리봉안기(記) 등 국보급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본보 1월 20일자 A1·14면 참조

▶선화공주 미륵사 창건’ 사실 아니다


▶1370년만에 깨어난 ‘국보 중의 국보’





작은 금제사리항아리는 어자(魚子·물고기 알)무늬나 연주(聯珠·구슬)무늬로 불리는 동글동글한 무늬가 표면에
촘촘히 새겨져 있으며 연꽃무늬, 세잎넝쿨무늬가 장식돼 있다. 국제적 수준의 백제 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된 금동사리항아리와 거의 유사하다. 몸체는 위아래가 따로 제작됐다.

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에 나온 사리에 대해 “성분 분석을 하지 않았지만 탑에서 발견된 사리는
부처의 몸에서 나온 진신(眞身)사리로 여긴다”고 말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금동사리항아리 안에서 다량의
구슬과 성분이 확인되지 않은 유기질 분말도 발견했다고 밝혔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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