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食탐탐] 물컹한 첫 맛, 잊을 수 없는 고소함
기본 주제방 2009/01/11 08:42   http://blog.azoomma.com/finger310/283289
 
[호食탐탐] 물컹한 첫 맛, 잊을 수 없는 고소함
김동환 '이도(李陶)' 대표
 

흔히 자반으로 구워먹거나 조려 먹는 고등어에도 명품이 있다. 우리집에선 고등어를 몇 달씩 소금에 절였다가 쪄 먹기도 하는데 밥도둑이 따로 없다. 고등어를 '사바(鯖)'라고 부르는 일본에서도 노릇노릇 잘 구워진 고등어 토막이 흔히 식탁에 오르지만, 고소한 맛이 특출한 고등어는 대개 초밥으로 즐긴다.

시모노세키(下關)해협에서 잡히는 고등어를 '세키사바(關鯖)'라고 한다. 고베 지역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쇠고기 '고베와규(神戶和牛)'처럼 브랜드화 된 명품 고등어이다. 요코스카(橫須賀) 부근의 물살이 센 해역에서 낚시로 잡는 '마츠와사바(松輪鯖)' 또한 최근 세키 사바처럼 브랜드화 되고 있다.

오랜 일본 친구들이 요코스카의 솜씨 좋은 이자카야(居酒屋·일본식 선술집) '치히로(ちひろ)'에 특별히 부탁해 마츠와사바를 맛보게 됐다. 음식에 대한 일본인 특유의 호들갑에 인색한 나로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 명품 고등어 마츠와사바로 만든 초밥.(이자카야 '치히로'제공)
고등어 하코스시(箱�·상자초밥)도 그렇지만 고등어 초밥은 대부분 생선살이나 밥의 덩어리를 큼직하게 내는데, 이 집의 고등어 초밥은 롤케이크를 두툼하게 썰어 낸 모양새이다. 초밥 위에 얹혀진 고등어의 두꺼운 부분은 2㎝ 정도나 되는데, 붉은 색이 그대로 비쳐 보이는 생선 단면의 조직은 방어처럼 보인다. 한입에 넣기는 거북한 크기의 고등어 초밥을 겨우 우겨 넣었다. 물컹하게 씹히는 식감이 순간 비린 맛이 연상되었으나, 곧 사바 특유의 고소함이 입안 가득 감돈다. 처음 보는 생선 맛이다. 기름이 자르르하게 밴 최상급 고등어에 오토로(大トロ·지방이 많은 참다랑어 앞쪽 뱃살)를 섞어 놓은 맛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씹는 맛은 맛 오른 방어의 뱃살보다 조금 무른 정도지만 몇 번 씹을 사이도 없이 녹아 없어진다. 오토로의 촘촘한 마블은 고소한 맛 뒤에 약간의 기름기가 입안에 남지만, 마츠와사바의 기름은 생선살 자체에 녹아 있어서 아이스크림을 베어먹듯 입에서 사라지고 뒤이어 초밥이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낸다.

초밥용으로 고등어를 손질할 때는 보통 고등어의 맛을 잡기 위해 식초와 술, 설탕을 섞은 물에 두어 시간씩 담가 초절임을 한다. 그러나 이곳의 초절임은 식초물에 잠깐 담그는 정도로 최소화했고, 고등어 초밥에 으레 올리는 생강 따위도 없다. 이자카야 주인은 "신선한 마츠와사바는 초절임을 10여 분 정도에 끝낸다"고 했다. 본디의 맛이 훌륭한 것이다.

조금은 시끄러우리만치 음식에 대한 자기 주장이 확실한 주인은 자신들의 솜씨에 대한 자부심으로 일본인들이 최상품으로 치는 다랑어인 '오마(大間)의 혼마구로(本�)', 수십 개를 실험한 후 최적의 도나베(土鍋·도기솥)를 골라 거기에 지었다는 솥밥을 내놓았다. 그리고 음식 칭찬과 맛있게 먹어준 답례로 꽤나 맛있게 만든 겨울 별미 '앙키모(鮟肝·아구 간 요리)'를 집에서 드시라며 선물로 내놓았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훌륭한 맛이었지만, 이날의 여러 가지 훌륭한 음식들은 모두 마츠와사바의 빛에 가려졌다. 본디의 맛은 만들어진 맛보다 자연스럽고 보다 근본적이며 만들어진 맛이 넘을 수 없는 경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만들어진 맛에는 인간의 공력이 들어있으니 이를 얕잡아 볼 수는 없을 터이다. 본디의 맛과 만들어진 맛은 우열로 가늠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높이에서 다양성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은 도전해야 할 대상이 있어 즐겁지만, 그 대상에 가까이 이르렀다고 생각되어서야 넘지 못할 대상의 깊이를 알게 된다. 한없이 겸손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