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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의 3보는 불(佛), 법(法), 승(僧)이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있는 통도사를 불보(佛寶)사찰, 보조국사 등 국사를 16명이나 배출한 송광사를 승보(僧寶)사찰, 그리고 팔만대장경이 있는 화엄종의 종가 해인사를 법보(法寶)사찰이라고 한다. 지난 12일 선각(善覺·49·사진)스님이 해인사 주지로 임명됐다. 동자승과 같은 맑은 미소에 나이가 쉰 가까운 스님이라고 믿기 어렵다. 정말 이름 그대로 ‘착한 깨달음’을 이뤘다는 느낌이 난다. 모처럼 서울에 올라와 한국 불가의 법보종찰의 책임자로 좀 떠들썩하게 사람들을 만날 법도 하건만 그는 임명장을 받고 바로 내려가 버렸다. 몇 차례 전화를 걸어 겨우 한번 통화가 돼 인터뷰 약속을 잡으려 했지만 “아직 살림도 파악하지 못했다”며 미루기만 했다. 나중에 하면 더 알찬 인터뷰가 될지 모르지만 뉴스는 역시 뉴스(news), 새 것이어야 한다. 전화와 e메일로 22일 억지 인터뷰를 했다.
축하인사를 먼저 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꼭 축하할 일만은 아니다. 도를 닦는 전형적 이판(理判)스님에서 행정을 보는 사판(事判)스님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첨예한 갈등을 말할 때 ‘이판사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판스님과 사판스님의 갈등은 유명하다.
“이판사판의 어의적 해석이 잘못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갈등적’ 표현이라기보다 서로 경계가 무너지고 역할에 대한 소임원칙들이 무너져 아수라장이 됐을 때의 형국을 두고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쓰지 갈등을 두고 이르는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선각스님은 “흔히 ‘이판’을 수행하는 스님으로, ‘사판’을 절집을 운영하는 살림살이 스님으로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제대로 알고 하는 말들이 아니다”며 “‘이판’과 ‘사판’이 각각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승가공동체 속에서 함께하는 존재”라고 정정했다.
“역대 훌륭한 사판은 역시 뛰어난 이판이기도 했습니다. 공부(理)의 내공 없이는 절대로 살림(事)을 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事)을 수행(理)의 경지로 끌어올려야만 그게 바로 제대로 일을 하는 겁니다. 결국 수행과 일, 이판과 사판은 둘이 아닌 하나의 승가이며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들이라는 것으로 인식하시면 될 듯 싶습니다. 이(理)를 잃어버리고, 사(事)에 매몰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事)를 떠난 이(理)만 주장하는 것도 또한 옳지 않습니다. 이사(理事)가 불이(不二)일 때 비로소 온전함으로 빛이 납니다.”
그는 한국 선지식의 최고 도량으로 평가되는 해인사의 책임자 답게 이판사판의 의미를 멋진 법문으로 풀어냈다. 해인사는 화엄종의 종가로 불리는데 ‘화엄’이 뭔지 궁금했다.
“1200년 전 신라시대 때 화엄종이 불교사상계의 주류였습니다.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 이정 스님 역시 화엄종 승려였습니다. 당시 화엄경은 ‘국민화합’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이(理)와 사(事)가 둘로 나뉠 수 없는 것처럼 ‘현실 그대로가 곧 진리의 세계’라는 매우 현실 긍정적인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양성의 조화 추구가 화엄사상의 요지이기도 합니다.”
해인(海印)은 글자 뜻대로 새기면 ‘바다가 찍은 도장’이라는 시적인 의미가 나는데 그 뜻이 궁금했다.
“화엄경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말이 나옵니다. 바닷물이 잔잔하고 고요히 맑을 때 삼라만상을 있는 그대로 도장을 찍듯이 비추어 줄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처럼 고요한 평정심을 유지할 때 한 인간이나 사회문제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지요. 그러면 그 문제를 풀기도 쉬워집니다. 선입견이나 자기의 이기적 시각을 버리게 해주지요. 그래서 해인삼매는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수행법입니다. 해인사의 이름도 여기에서 기원합니다. 해인사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의 고요’를 주려는 것이 창건이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5일 해제된 하안거에서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이 한 법어가 인상적이었다. 운문선사의 ‘마른 똥막대기를 마음껏 물어뜯어라’를 인용, “공부를 하다보면 금인 줄 알았는데 똥인 경우가 많다. 법은 금이지만 법에 대한 집착은 똥이다” “안목이 열리지 않은 범부승은 법과 법에 대한 집착을 구별할 수 없어 똥과 금을 착각하지만 알고 보면 똥과 금은 둘이 아니다. 번뇌의 똥을 치우면 보리의 금이 나오기 때문이다”는 공부를 하는 스님들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주는 말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분법(二分法)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합니다. 예를 들면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그렇게 규정을 해버립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도 나쁜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좋은 면이 있기 마련이지요. 한 인간 속에 선과 악이 동시에 들어있는 만큼 그것을 함께 볼 수 있어야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그럴 줄 몰랐다’고 하면서 그 인간에 대한 실망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반대로 ‘그런 면도 있었나’ 하면서 그 사람의 새로운 긍정적인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백을 남겨두면서 살자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선각스님은 “정치인, 종교인도 마찬가지”라면서 “자기는 ‘금’이라고 믿고 있는 사실들도 국민이 보면 ‘똥’인 경우가 많은데 해인삼매의 지혜로 마음을 비우고 금과 똥을 잘 구별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 불교에서 해인사가 차지하는 의미와 역할이 크다. 해인사는 조계종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총림(종합수도도량)이며 현재 가장 많은 수행승려들이 머물고 있는 사찰이다. 든든한 영남불심이 뒤를 받쳐주고 있는 가운데 성철스님을 비롯해 자운, 영암, 고암, 혜암, 일타 등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빛나는 선지식들이 바로 해인사 출신이다.
선각스님은 “해인사는 많은 문중 스님들이 함께 생활하는 대표적인 수행처이며 가야산 국립공원에 위치, 불자들뿐 아니라 한국의 명산고적을 찾는 일반인 및 타종교인, 세계 각지의 외국인들까지 많은 관광객들이 철따라 찾아드는 곳”이라며 “‘원융화합(圓融和合)’을 목표로 해인사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원융화합을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공심입니다. 공심은 두 개 의미를 가지는 하나의 단어입니다. 내 마음을 비워 남, 즉 새로운 대상과 가치들이 마음 안에서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도록 나를 비워놓고 열어놓는 자세로서의 공심(空心)이 하나이고, 공익을 우선 생각하면서 배려하고 공생(共生)을 지향하는 마음으로서의 공심(公心)이 또 하나입니다. (두 공심은) 모두 같은 마음에서 출발하는 하나입니다. 이런 공심과 공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원융화합을 이뤄나가고자 합니다.”
그는 “앞에서 이판과 사판의 구분을 지어 질문을 했는데 그 구분이 다를 바 없듯, 선승으로서 익힌 공심(空心)과 주지로서 가져야 할 공심(公心) 두 가지 모두 필요한 마음가짐이라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선각스님은 또 법통을 잇는 수행교육 중심 도량으로서의 분위기 조성과 함께 소통과 회향에 대한 노력에 중점을 두겠다고 했다.
“세계화와 다문화공동체, 다양한 사회적 욕구와 개성 등으로 특징 지어지는 이 시대, 너와 나의 소통과 회향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소통은 이웃과의 소통이며 여기서 이웃은 바로 옆사람, 옆집, 옆나라, 다른 종교 등 내가 아닌 모두와의 소통을 포함합니다. 이런 소통은 사회공동체 이상의 실현으로 교육을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그 교육은 바로 중생제도라는 간절한 발원을 가지고 용맹정진하는 수행력을 바탕으로 불퇴출의 신심이 있어야만 됩니다.”
선각스님은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는 사회분위기, 나보다 우리, 남을 먼저 생각하고 화합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산 교육장으로서의 해인사”를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과 관련, 인재를 기르는 ‘인재불사’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적 태도와 연관해서 볼 때 요즘 일고 있는 정치권 일각의 행동들은 21세기 공동체 이상을 지향하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반사회적, 역사 퇴보적 처신이라 생각합니다. 한 국가를 이끌어가는 사회 지도층들이 사회 정신을 발전시키고 사회 통합을 성취시키지는 못할망정 내가 가진 가치를 최고라 여기고 이를 사회 중심 가치로 만들어가고자 다른 종교를 소외시키고 사회정신을 분열시키는 원인을 제공한다면 이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사회 통합이 절실한 이때 이렇듯 옳지 않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이를 제지하는 그룹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 희망이 없다는 말과 같다”며 “사회통합과 발전을 기원하는 호국기도 도량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올바로 사회를 보고 이끌어갈 수 있는 최고의 인재를 키워내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3대 경제중심이 모두 어려움을 겪는 등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시간이 예고되고 있다. 국민들이 이 어려운 시절을 헤치고 나갈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법문을 하나 부탁했다.
“작은 것으로도 만족할 줄 아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지나친 물질의 풍요는 정신을 빈곤하게 만듭니다. 한 템포 느리게 생각하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고성장 시대’를 다시 한번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경제가 풍요롭더라도 ‘청빈’은 그 자체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념이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각스님은 끝으로 “사회가 행복하려면 우선 내 가정이 행복해야하고 내 가정이 행복하려면 바로 내가 행복해야만 한다”며 “내가 가장 행복할 때 찬찬히 나를 들여다보면 ‘무엇으로 행복해지는 나인가’를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행복할 때는 내 가족이 행복했을 때이고 내 가족이 행복했을 때에는 사회가 통합되고 발전에 대한 희망이 보여 모든 게 안정됐을 때입니다. 결국 내 행복은 내 주변과 우리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희망적일 때 느껴지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리지만 역으로 남이 살아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공심과 공생의 도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문화부장 hyeon@munhwa.com 사진 = 해인사 제공
◆ 선각 스님은...
▲1959년 경남 산청 출생 ▲1984년 해인사에서 혜인 스님을 은사로 출가,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94년 일타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1985년 해인총림 소림선원에서 수선안거 이래 40안거 성만 ▲승가대학 운영위원, 해인사 미타원 주지, 종정 예경실장 등 역임 ▲2003년 사회복지재단 해인사 자비원 대표이사 ▲2004년 해인사 선원장 ▲2004년 해인사 고불암 감원 ▲12~14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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