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썼다, 그치?” “아니에요, 너~무 잘 쓰셨어요!” 할머니 옆에 바짝 붙어 붓글씨를 돕던 여대생이 환한 웃음으로 용기를 북돋았다. 매주 금요일마다 이곳에 와 어르신들에게 붓글씨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안민지 학생(23)이다. “구영회 할머니는 욕심이 많으세요. 지난주에는 화선지 15장을 쓸 정도로 열심히 하시는 걸요.” 그렇게 만난 구영회 할머니는 안민지 학생을 손녀처럼 좋아하신다. “내가 붓글씨를 배우면서 정신도 좋아졌어”라고 말하는 할머니는 사실 이곳에 들어왔을 때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붓글씨를 배우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김윤숙 담당사회복지사가 전했다.
단짝 서정희 할머니(83세)도 치매를 앓고 있지만 붓글씨 배우는 시간만큼은 손꼽아 기다린다. 이날도 신이 난 듯 붓글씨를 쓰다 말고, 벌떡 일어나 흘러간 노래를 부르며 어깨를 덩실덩실 흔들었다. 서정희 할머니는 화선지에 “예쁜 모습”이라고 썼는데, 딸들의 예쁜 모습을 생각하며 썼다고 귀띔했다. 여든아홉의 태을성 할아버지(89)는 글씨를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랐지만 붓글씨로 배운 글은 쓸 줄도 읽을 줄도 알게 됐고, 윤정자 할머니(92)는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죽으러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서예 때문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안민지 학생이 서예와 연을 맺은 것은 6살 때부터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꾸준히 배우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느라 중단했었다. 사자숙어 경연대회에서 상도 받고 서예 1급 자격증도 딴 실력을 그대로 묵혀두는 것보다 봉사활동에 적용해 보자는 생각에 2008년부터 이곳에서 어르신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봉사활동은 어머니 김애선씨와 서예 선생님 권훈자 씨가 함께 했다.
“서예교실 선생님들이 책임감이 강하세요. 한 차례도 빼먹지 않고 매주 꼬박꼬박 찾아와 어르신들과 말벗도 되주시고 하니까, 저희도 그 시간이 기다려지더군요.”(김윤숙 사회복지사) 김윤숙 사회복지사는 “금요일 이 시간이 되면 어르신들이 직접 화선지며 붓 등을 준비하고 기다리신다”며 “서예교실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생각에 새로운 보람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민지 학생은 “저도 여기 와서 어르신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특히, ‘왕년에 이랬다’는 경험담을 들려주시며 인생 상담을 해 주실 때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안민지 학생은 붓글씨를 통해 이곳 어르신들과 벗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안민지 학생의 봉사는 중·고교 학창 때부터 시작됐다. 봉사활동 점수를 채우기 위한 봉사가 아니라 진짜 봉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탈북가족 아이들을 가르쳐 보기도 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 중인 안민지 학생은 이 같은 봉사활동을 계기로 청소년·노인 복지, 교육문제 등을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교육학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프로그램을 보면 획일적인 것은 물론, 현실적이지 못한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노인복지와 관련해서도, ‘은퇴후 설계’에 대한 관심이 적은데 이런 부분들을 채워줄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들을 개발해 보고 싶어요.” 안민지 학생을 비롯한 서예 봉사자들은 올해 어버이날 쯤에 이곳 어르신들이 쓴 붓글씨를 모아 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다. 그날은 어르신 가족들도 초청해 맛있는 음식도 대접하고 북춤, 바이올린, 마술 등을 공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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