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 잡은 詩
茶 한잔 여유 2005/06/06 10:43   http://blog.azoomma.com/esook1143/195414

슬픔.

                  알프레드 드 뮈세.

 

나는 힘과 생기

친구들과 쾌활함을 잃었다

천재성을 믿게 했던 자존심도 잃었다

진리를 접했을때

그것이 나의 벗이라 믿었다

진리를 이해하고 느꼈을때

이미 그것에 진저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진리는 영원하고

진리를 모르고 산 사람들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셈이다

신이 말씀하시니

우리는 답해야한다 

이세상에서 내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다.

 

Louis-Charles-) Alfred de Musset

1810. 12. 11 프랑스 파리~1857. 5. 2 파리.

프랑스의 뛰어난 낭만파 시인, 극작가.

그의 자서전적 작품인 〈세기아(世紀兒)의 고백 La Confession d'un enfant du siècle〉(1836)은 고전적으로 믿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 젊은 뮈세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즉 그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전통적인 모든 가치관이 공격받고 있던 시대에 오로지 감정의 지배에 따라 살았다. 소년시절부터 낭만주의 운동의 지도자인 샤를 노디에와 알프레드 드 비니 및 빅토르 위고의 영향을 받았고, 1830년에 첫 작품 〈스페인과 이탈리아 이야기 Contes d'Espagne et d'Italie〉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멋쟁이' 브뤼멜을 흉내내는 우아한 파리 멋쟁이가 되어 주색에 몰두하는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다.

희곡 〈베네치아의 밤 La Nuit vénitienne〉(1830)이 실패하자 다른 희곡 작품들도 무대에 올리기를 거부하면서도 〈로렌차초 Lorenzaccio〉(1834) 등의 역사비극과 〈함부로 장담해서는 안 된다 Il ne faut jurer de rien〉(1836) 등의 경쾌한 희곡을 계속 발표했다. 그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낭만파 작가들의 작품은 오늘날 일반적인 공연 목록에서 모두 탈락했지만, 그의 희곡만은 정기적으로 상연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놀랄 만큼 다재다능한 그는 격렬하고 복잡한 감정을 열정적으로 선명하게 표현한 〈10월의 밤 La Nuit d'octobre〉(1837) 같은 서정시뿐 아니라, 가벼운 풍자시와 눈부신 기교를 보여주는 시도 썼다. 줄곧 낭만주의 운동과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그 무절제함을 자주 비웃곤 했다. 예를 들어 〈뒤퓌와 코토네의 편지 Lettres de Dupuis et Cotonet〉(1836~37)는 당시의 문학 양식을 재치있게 풍자한 작품이다. 1833~35년에는 소설가 조르주 상드와 열렬한 연애를 하면서 이별과 재회를 거듭했는데, 이 연애는 그가 〈고백 Confession〉에서도 말했듯이 그의 가장 뛰어난 서정시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