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과女
터놓고 하는 수다 2005/04/05 19:50   http://blog.azoomma.com/esook1143/188327

<그 남자>

 

그녀와 나는

아직 이름도 서로 모르지만

거의 매일 같은 버스르 타고 다니는 사이!

그러니까 서로 얼굴만

잘 아는 사이라고 할 수 있죠.

 

보통 그녀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창 밖을 내다보곤 하지만,

오늘은 많이 피곤한지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어 버립니다.

 

졸고 있는 그녀의 고갯짓은

거의 예술입니다.

오른쪽으로 끄덕끄덕, 왼쪽으로 끄덕끄덕

그러다 가끔 휙~ 하고

목운동을 한 바퀴 하기도 하고,

 

그녀의 뒷자리에 앉아 있는 나는

저러다 창문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죠.

 

그런데...이러언~

차라리 창문에 머리 부딪혀서

잠을 깨는 편이 나을 뻔했나 봅니다.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순간,

그녀는 제가 붙잡을 사이도 없이

저~ 앞으로, 한 바퀴를 굴러가더라구요.

 

사람들은 다들 웃고 난리가 났죠.

무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녀,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운 나.

웃지 않는 사람은 우리 둘뿐 입니다.

 

아, 마음 아파.

얼마나 창피할까요?

 

 

<그 여자>

 

'아.. 머리 감기 진짜 귀찮다.

그냥 모자 쓰고 나갈까?'

 

하지만 결국은 머리를 감았어요.

오늘도 버스에서

내 뒷자리에 앉을 그 사람을 생각하면!

그럼요! 아무리 귀찮아도

머리, 감아야죠.

 

비몽사몽 젖은 머리로 집을 나서면

어김없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그 사람.

 

내가 이틀에 한 번 감던 머리를

이젠 아침마다 감는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매일 음악도 안 나오는 이어폰을 꽂고

그 사람 콧노래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사람은 오늘도 그냥 그렇게

말없이 내 뒷자리에 앉아만 있습니다.

 

그런데 술기운 때문인지,

자꾸만 감겨지는 내 눈꺼풀..

졸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지만 결국,

정말 안될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끽~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렸는데...

나는 왜 버스 바닥에 앉아 있을까요?

 

꿈처럼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차라리 괜찮아요. 하지만,

웃지도 않는 그 사람의 표정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거죠?

불쌍하다는 표정? 한심하다는 표정?

 

..난 왜 이럴 때, 기절도 안 하나요?

 

- 이미나의 <그 남자, 그 여자> 中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