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 잡은 詩.
茶 한잔 여유 2004/09/17 00:00   http://blog.azoomma.com/esook1143/159748

어릴 때 내 꿈은                 

詩.도종환

 

어릴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 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 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 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 늦게 까지 아이들을 묶어 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 하게 아이들을 속여 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좋은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

 

도종환시인:부드럽고 곧은 시인.

1984년 동인지(분단시대)로 작품활동시작.1954년 충북 청주 생.

(접시꽃 당신) 죽은 아내를 노래한 이 시집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외에(당신은 누구십니까)(지금 비록 너희곁을 떠나지만)(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부드러운 직선)

등의 작품이 있다.  신동엽창작기금, 민족예술상, kbs바른 언어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