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창조자 말씀 2010/12/16 09:43   http://blog.azoomma.com/dojsuk/285217

당시 감람산 맞은편 언덕에 긴 타원모양의 거대한 성벽 안쪽이 예루살렘성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통곡의 벽안에 세워진 직사각형모양의 높은 성전 안에 돈 바꾸는 자들과 제사짐승을 사고파는 넓은 공간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독사새끼들이 문안 받기 좋아하는 시장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다시 사람 키보다 조금 더 높은 담을 쳤으니 그 안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고 그 좌우로 두 개의 긴 공간이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 뜰이 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성소까지 대제사장은 지성소까지 들어가되 백성들은 뜰과 좌우의 공간 즉 회당까지 들어와 거할 수 있다. 그런데 성전목자들 가운데 한 명이 성소에서 나와 말씀을 봉독하고 그 뜻을 말해주는 시간을 정하며 또한 사람들을 회당의 한 장소에 모아 바리새인의 설교를 듣도록 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또한 회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므로 모든 것이 오로지 같음이 없고 분쟁이 없도록 했으니 그가 바로 회당장이다.

 

그리스도의 당시에 회당장은 모두 세 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영혼의 이름은 야이로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성인의 나이인 12살에 이른 사랑하는 외동딸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딸이 이제는 육신의 시간이 다 되었기에 그가 자신의 뜻대로 자기의 육체를 이용하지 못하고 그저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야이로의 딸은 죄가 쌓여 얻게 되는 그 어떤 질병으로 인함이 아니요 혹은 자신의 육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해서 얻는 질병으로 인함도 아니요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태어나며 얻은 질병으로 인함도 아닌 오직 그의 육의 수명이 다하여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자신에게 다가온 그 죽음의 문턱에서 그리스도의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에 그 여자의 영혼은 아직은 죽음이라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그리스도께 방문을 요청하고 싶었다. 유대인으로서 만물의 창조자이신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았으며 그리하여 자신이 거룩을 이룰 수 있도록 육신의 시간을 허락해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그리스도께 구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아비를 통해서 부탁했다. 그것은 유대인여자인 자신이 부끄러울까 했기 때문이요 또한 스스로 깨닫기에는 이미 자신의 때가 거의 다 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자기의 아비에게 요청을 했으나 결국 그의 영혼이 12년 동안 거했던 그 육을 떠났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자기 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자기의 목숨까지 바쳐 자식을 구하려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으니 회당장의 자리는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앉아있던 자리보다 딸을 더 소중하게 여겼으니 그 여자의 영혼이 육에서 나온 후 인간의 시간으로 약 15분 후에 집을 나와 발걸음을 재촉해 그리스도를 찾아가게 된다.

 

야이로는 그리스도를 만나자 유대인으로서 가장 정중하고 간절한 부탁의 표현을 했다. 그러므로 그는 먼저 그리스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머리를 그리스도의 발 위에 얹었다. 하지만 그가 날마다 간구한 것은 영의 생명이 아닌 썩어질 육의 생명이었으니 그리스도께 자기 딸의 육의 생명을 구했다. 그러므로 독사새끼들에게는 항상 엄중하셨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알릴 바를 알리시고자 ‘육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되 네 영혼이 어디로 갈까를 생각하고 구하여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야이로는 썩어질 육에서 영원한 영으로 헛되고 헛된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로 자신의 마음을 돌이켰다. 그리고 그 증거로써 자신과 딸의 썩어질 육의 생명이 아닌 영원한 영혼의 생명을 간구했다. 그러자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회개한 마음이 진실함을 들여다보시고 아버지의 뜻과 계획에 따라 즉 그 여자의 육체가 거룩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을 한 번 더 허락하시고자 야이로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이미 피리를 부는 자들이 와있었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풍습을 보고 따라서 피리를 부는 것은 그 육체에서 떠난 그의 영혼이 그와 가까웠던 영혼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그 영혼과 또한 그 함께 하였던 자들에게 그 악한 영들을 계속 붙들게 하려 함이었다. 그러나 어리석게 믿는 자들과 이방인들은 영적인 세계의 깨달음이 없으니 썩은 몸을 장사하러 가거나 굴에 넣을 때 피리소리를 내는 것은 죽은 자와 함께했던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세상의 문화를 따르는 어리석은 유대인들과 또한 슬픈 소식을 듣고 모인 야이로의 몇몇 친척들과 또한 자신을 따르는 군중들과 제자들에게 이 여자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신 후 제자 셋과 부모만 데리고 그 여자의 몸이 놓여있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전에 야곱이 그 광야에서 방황할 때에 돌을 베고 잔 것을 기억하므로 영혼이 떠난 몸이 쉰다는 의미로써 만든 풍습이 있었으니 죽은 자가 어린 생명이면 그의 부모가 단단한 돌을 들고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누운 자가 성인이라면 그의 가장 가까운 두 사람 혹은 네 사람이 그 길쭉한 돌을 들고 들어가되 그 돌을 들어줄 자가 없으면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영혼이 떠난 그 여자의 몸도 유대인의 그 관습에 따라 편편한 돌 위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과 때가 있으며 또한 그에 따라 그 여자의 영혼은 육신의 죽음을 원치 않았고 또한 그의 부모도 마음을 돌이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돌 위에 누워있는 그 몸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그 육에게 명하신 것이 아니요 그 육을 움직일 수 있는 그 여자의 영혼에게 말씀하신 것이니 하나님의 일곱 영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해 다시금 그 여자의 영혼을 이끌어 그의 몸으로 인도했다. 그러므로 그 여자의 영혼은 자기의 육체에서 나간 후 사람의 시간으로 90분 후에 다시 돌아왔다.

 

이제 그 여자의 영혼은 자기의 육체로 돌아온 후 아버지의 뜻에 이르기 위하여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온 힘과 온 마음을 다했다. 자신에게 육의 생명을 한 번 더 허락하신 아버지의 그 뜻과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요 그에게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시고 아버지께서 그것을 깨우쳐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마지막에 결국 영과 혼과 육의 거룩함을 이룬 후 다시 육을 떠났을 때 유대인으로서 그토록 원하던 거룩하고 영원한 육체의 생명을 얻어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었다. 한편 그 여자의 아비는 당연히 독사의 자식들에게 성전의 좋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으니 야이로는 스스로 그 배설물을 버리므로 자신의 첫 마음을 지켰다.

 

한편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첫사랑을 붙들고 깨어있는 영혼들은 달리다굼이란 말을 통해 기억할 것이 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의 능력이 교회시대와 또한 마지막 환난 때에도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거룩하고 신령한 교회에 임하실 것이요 아버지께서는 그 이방영혼의 마음과 믿음을 보시고 그 약속에 따라 자신의 뜻과 때에 맞추시어 이 땅에서 썩어질 그의 몸을 일으키신다. 그리하여 죽었다가 살아난 그 이방인도 달리다굼이라는 말을 들었던 그 여자의 영혼처럼 자신의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거룩을 이루어가리니 아버지께서는 광야로 나온 모든 믿는 자들이 그 능력을 보고 다 함께 일어나 오직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가기를 간절히 소원하신다.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