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니 물로 심판을 하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당신은 만일 원수가 곧 쓰나미를 일으킬 것이니 동남아에서 나오라는 말을 들으면 사랑하는 가족들을 데리고 거기서 나오겠는가 아님 그대로 있겠는가 아님 쓰나미 대처법을 배우겠는가? 혹은 계획대로 그곳에 여행하러 가겠는가 아님 잡아놓았던 여행계획을 취소하겠는가? 마찬가지로 하이티에서 큰 지진이 난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사람은 그런 것을 처음 보면 두려운 마음을 가지거나 바르게 살려는 마음을 잠시 가지지만 시간이 좀 흐르면 금새 잊는다. 또한 그런 것을 몇 번 듣거나 보고 나면 자신에게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그 기근에 대해 농담처럼 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게다가 사람은 자기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좋아한다. 또한 사람은 인격체이니 그곳에서 나오려면 자신의 몸이 나오기 전에 자신의 마음이 먼저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결국 그러한 경고의 말을 미리 듣는다 하여도 자기의 발로 거기서 걸어 나오는 수가 참으로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은 수가 나오니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거기서 돌이킨 자들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인류의 역사가운데서 원수가 일으키는 기근들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이 땅의 전체에 심판을 내리시는 때가 있으시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공의로우신 심판과 원수의 불법적인 기근에는 세 가지의 큰 차이가 있으니 첫째 원수는 사람이 잊을만하면 이 세상의 군데군데에 일으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한 번에 온 세상의 모든 곳을 심판하신다. 둘째 원수는 자신이 택한 자들 외에는 자신이 일으킬 기근을 숨겼다 갑자기 일으킨다. 그러므로 원수의 갑작스런 기근은 사람들에게 놀람과 두려움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공평하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곧 다가올 그 마지막 심판을 말씀으로 충분히 알리신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나오지 않던 자들은 아버지께서 이미 말씀으로 경고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그 심판이 자기의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보며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오직 불순종한 자신을 탓한다. 또한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으니 그저 애통할 뿐이다. 셋째 원수는 기근을 통해 오히려 의인까지도 함께 삼키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가운데서 의인은 끝까지 지키시다 마지막에 모두다 구원하신다. 그리고 온 세상에 의인이 한 명도 없음을 확인하신 후에야 자신의 그 마지막 심판을 내리신다. 그리하여 의인을 구원하신다는 그 약속의 말씀을 지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내리신 심판의 예로서 노아홍수의 경우 이 세상의 어느 한곳에 일어나지 않았으며 온 세상에 임했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당시 이 땅 위에 거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노아를 통하여 충분히 말씀으로 그 물의 심판을 알리셨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순종한 그 의로운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그 심판가운데서 구원하셨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도 이 세상의 한곳에 심판을 내리신 때가 두 번 있으셨으니 그것이 바로 고라와 그를 따르며 아버지를 대적한자들을 위해 땅을 가르신 사건이요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신 유황비였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아브라함 당시에 그 죄악된 도시에 유황비가 내릴 것이니 나오라는 말씀을 아브라함을 통해 그들에게 전하셨다. 그때 롯은 그 말씀에 순종해 나오므로 건짐을 받았으니 아버지께서는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의인으로 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에 거하던 다른 모든 자들은 그곳의 죄악과 불의를 너무나 사랑했으며 살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기에 그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자신의 마음이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마음이 나오지 못했기에 인격체로서 다리가 있음에도 거기서 걸어 나오지 못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치 않은 그들은 이미 들은 말씀대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불을 자신의 눈으로 보면서 오직 자신을 원망하며 애통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이 두 가지의 심판으로서 이미 세상의 심판한 부분을 보여주신 것이 있으시니 그것은 바로 마지막 심판의 예표였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세우신 교회는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생명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에 애쓰라고 세상에다 전하기 전에 교회시대의 믿는 자들을 향하여 먼저 전해준다. 대환난가운데로 들어가서는 누구든지 육과 세상을 즐길 수 있는 그 짐승의 수를 받으면 그는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간다는 말씀도 전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알아도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서 돌이키지 못하는 자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한 그 마지막 때도 말씀을 듣고도 보고도 순종치 못한다. 그러다 그 환난의 마지막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그리스도와 함께하던 교회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가 진실로 밝혀지는 것을 깨닫는다. 즉 그들은 666을 받았으니 자신을 돌이킬래야 돌이킬 수가 없게 되어 울면서 그대로 사망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애곡하는 것은 살아있는 채로 무저갱의 불로 들어가는 자신을 보지만 자기 자신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곳에 서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노아의 때에도 소돔과 고모라의 때에도 모세의 때에도 그리스도의 전에도 교회시대에도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오직 말씀에 순종하며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애썼다. 그리고 이것은 이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이니 돌이킨 자는 지금도 거룩에 애쓰고 있다. 그리하여 정결한 그들이 아버지의 약속대로 환난의 전에 들림을 받는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께 받은 그 피를 환난가운데서 목 베임을 통해 아버지께로 올려드리고 그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