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요한 계시록 2010/04/27 09:11   http://blog.azoomma.com/dojsuk/284769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교회를 이끄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경륜의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 핍박으로 인해 이방인들 가운데 첫 교회가 안디옥에 세워졌으니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바울은 그곳에서 그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이방민족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그 당시 바울만이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요 다른 자들도 계시를 받지는 못했으나 그리스도를 전했다.
 
     그런데 계시를 받고 전하는 것과 계시 없이 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아느냐 모르느냐이다. 그러므로 계시를 통해 아버지의 뜻을 깨달은 바울은 경륜을 이루고자 거룩만을 전했다. 또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두렵고 떨림으로 거룩을 이루어가라고 했다. 하지만 계시가 없는 자들은 아버지의 그 뜻을 몰랐으니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로서 그저 온전한 구원의 첫걸음인 거듭남만을 전하며 전통을 이루어갔다. 물론 어떻게 거듭나는지 조차 말하지 아니하고 그저 영을 말하여 육의 이익을 끼치는 거짓선지자들도 그때부터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방의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해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자신들이 교회라고 하는 곳이 이 세상에 모두 1243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택하신 일곱 교회가 있던 소아시아에도 모두 12곳이 있었다.
 
     그런데 요한은 당시 그리스도께 계시를 받은 후 그 말씀을 오직 일곱 교회에만 보냈다. 그러므로 그때 계시록을 받은 교회의 수는 전체 교회의 수에 비교할 때 많지 않았다. 마지막 때의 말씀을 받은 교회들과 받지 못한 교회의 차이가 무엇이었는지 한가지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택함 받은 교회와 전통에 속한 교회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한 포도원주인이 두 종에게 포도나무를 한 그루씩 주면서 이러한 말을 전했다. “나는 오직 깨끗하고 풍성한 포도열매를 원하는 도다. 그런데 열매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자기의 나무를 가꿀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니라. 또한 다른 자들도 땀 흘리는 너희를 보고 따라 행할 것이니 깨끗한 열매가 더욱더 풍성해질 것이니라.” 이 말을 듣자 첫 번째 종은 자신이 받은 포도나무를 가꾸느라 온 마음을 다했으니 그의 온 몸에서 땀이 흘렀다. 그러므로 그의 나무는 하루하루가 지나며 깨끗하고 튼튼하게 자라갔다. 그리하여 그 종의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들도 깨끗했으며 점점 더 풍성해져 갔다. 그러나 두 번째 종은 땅을 넓혀서 포도나무를 많이 심으면 열매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땅을 넓히며 나무를 많이 심는데 자신의 온 마음과 힘을 다하면서 이것이 바로 주인이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나무와 열매는 썩어가되 그의 땅은 점점 더 넓어져갔다. 이것을 보자 어떤 사람들은 첫 번째 종에게 가서 그 종을 따라 일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크고 근사하게 보이는 것이 좋았으니 두 번째 종에게 가서 그 종을 따라 일했다. 하지만 첫 번째 종과 일하는 것은 처음에는 힘들었으나 나중에는 쉬웠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중간에 포도원을 떠나기도 하고 두 번째 종에게 옮겨가기도 했다. 반대로 처음에는 두 번째 종에게 갔다가 첫 번째 종에게 옮겨가는 사람들도 몇이 있었으니 주인의 뜻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추수 때가 되자 그 주인이 돌아와 열매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첫 번째 종과 그를 따라 일한 자들은 모두다 깨끗하고 풍성한 열매를 갖다 바쳤다. 그러나 두 번째 종과 그를 따르던 자들은 주인에게 신 포도를 갖다 바치면서 자기들이 넓힌 땅을 자랑스럽게 보였다. 이에 그 주인은 자기의 말에 순종한 자들은 가까이에 그 불순종한 자들 가운데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깨끗한 열매를 맺겠다고 하는 자들은 멀리 두었다. 그러나 자기의 뜻을 끝까지 원치 않은 자들은 포도원에서 쫓아냈다.
 
     이와 같이 당시 아버지께서 택하신 교회는 초대교회든 안디옥교회를 비롯한 이방인의 교회든 자신의 마음을 다해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어갔다. 그리고 이것은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인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전통에 속한 교회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와 아들은 알지만 거룩을 깨닫지 못하니 당시에도 지금처럼 여러 가지 일들을 이루어가며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요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때나 지금이나 은혜를 받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교회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행위들을 이루어가는 그 전통에 속한 교회들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차이점들이 있다.
 
     우선 은혜를 받은 교회에 모인 영혼들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의 믿음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씀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자신이 의롭고 거룩하게 될 것을 믿고 자기의 생각과 의를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교회는 그 마음을 포기했으니 거룩을 이루기보다 자기가 원하여 마음에 품은 뜻이 주님의 뜻이 되게 하옵소서 라고 하며 그것을 열심히 행한다.
 
     두 번째로 은혜를 받은 교회에는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그들 가운데 여자는 자신의 남편을 따르며 남편의 말에 마음을 다해 순종한다. 또한 거룩한 공동체로 모였을 때는 그 입을 열지 아니하고 집에서 늘 종용하게 남편에게 배운다. 그러나 전통에 속한 교회에서는 이러한 순종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그러한 것은 초대교회에만 그런 것이지 지금은 시대와 문화가 달라졌으니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그 말씀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로 은혜를 받은 자들은 그 마음이 오직 아버지의 의와 셋째 하늘만을 구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위하여 오직 자신이 의롭고 깨끗하게 되기만을 구하며 말씀에 순종한다. 또한 아버지의 나라만을 소망하니 그 증거로서 이 세상에서 나왔으며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그것을 구하지 아니하니 순종이 없다. 또한 자기의 몸은 예배 드리는 곳에 있을지라도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돌이켜 나왔던 이 세상에 있다.
 
     네 번째로 은혜를 받은 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깨닫지 못했으면 자기의 입을 열지 아니한다. 오직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그 진리의 깨달음을 아버지께로 구하며 겸손히 엎드린다. 그러나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깨닫지 못해도 입을 벌려 가르치며 전하다 모르는 것을 질문 받으면 ‘그냥 믿어라. 기도해보자. 구원과 관계가 없는 것은 몰라도 된다. 너무 깊이 알려고 하면 잘못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도자도 따르는 자도 둘 다 함께 구덩이에 빠져있다.
 
     다섯 번째로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사탄이 무엇으로 어떻게 죄를 짓게 하는지 또한 생명나무의 깨달음도 없으니 늘 선악에 이끌리며 자신은 다른 영혼을 선악으로 누르고 자신도 다른 영혼에게 그 선악으로 눌린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에서는 기쁨과 평화를 이미 빼앗겼다. 그러나 택하신 교회의 지체들은 그 선악을 뽑아내고 이겼으며 어떤 자들은 이기고자 싸우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께서 끼치시는 기쁨과 평화가 변치 아니하며 오히려 더해간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