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잔은 목구멍과 입술을 적시고
둘째 잔은 외로운 번민을 씻어주네
셋째 잔은 메마른 창자(고갈된 지식)를 찾나니
생각나는 글자가 5천권이나 되고
넷째 잔에 가벼운 땀솟아 평생의 불평
모두 털구멍으로 흩어지네
다섯 잔째는 기골이 맑아지고
여섯 잔만에 선령과 통하였다네
일곱째 잔은 마시지도 않았건만 느끼노니
두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이 솔솔 일어나네
베란다의 화분속의 앙상한 나무들이
겨우내 두꺼운 나무껍질 두드려 깨뜨리고
이슬방울같은 새싹이 얼굴을 내밀더니
이제는
앵두꽃,철쭉꽃등이 화사하게 펴있고
기세 좋은 잎사귀만 자랑하는
소철의 분재는 하루가 다르게
푸르름을 더해만 간다
이런날 저녁에는
갖가지 꽃들 꺽어서
넓적한 항아리에 물 담아 놓고
꽃잎과 꽃이파리 둥둥 띄워서
항아리속에 작은 세상을 만든다
코끝 간지르는 향을 피우고
茶樂 골라 울려 놓으니
물익은 소리에 장단도 맞춰준다
예전에는
팽주를 혼자서 도맡아 했는데
신랑이 이제는 그 일마저 빼았더니
엄숙하게 자리잡고 차를 우려주니
혀끝 감기는 그 맛이 황홀하다
첫잔에는 입술을 적셨고
둘째잔에는 혀끝을 감았고
세째잔부터 마음까지 감아준다
네째....
여러잔을 마시면
선령과 통하고
겨드랑이에 바람이 난다는데
난 아직........
음악:매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