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기본 주제방 2003/12/14 01:15   http://blog.azoomma.com/chrkgb/109321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여동생과  두 명의 이복형제를 주셨다.

 

나의 오빠는 할머니와 작은 어머니 밑에서 나이 차이 얼마 나지 않는 삼촌들과 형제처럼 자랐다.  아버지는 핏덩어리 오빠를 남겨두고 오빠의 어머니를 버리고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바다도 뒤로하고 육지로 날아오셨다.

 

수려한 외모와 언변과 몇몇가지의 재주로 나이 어린 아내와 두 딸과 남부럽지 않은 재력으로 빨리도 자리잡은 아버지에게 세상은 또 어떤 유혹을 했었던 것일까?

 

긴 생머리, 오똑한 코, 야무진 입매... 아버지의 새로운 그녀와 나와 아버지는 사진을 찍었다. 누구를 노려보는건지 부릅뜬 눈의 여섯살난 여자아이가 그렇게 박혀있었다. 나의 여동생은 그 사진에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나오면서 딸도 하나만 들고 나온 이유였겠지만...

 

정말 새엄마와 나와 아버지는 여관방에서 살았다. 단칸방으로 옮기고 배신감으로 크게 멍든 나의 외할머니는 어느날 찾아와서 나의 여동생을 데려다 놓고 새엄마가 내 놓은 쥬스도 한잔 마시고 가버리셨다. 그렇게 우린 네 식구가 되었고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간지 얼마 안되어 우리 자매에게 솜털같은 남동생이 생겼다. 철이 없었을까... 새엄마와 나와 내 여동생은 양푼에 밥을 비벼 먹으면서 행복해했다. 옆에서 남동생이 오줌싸는 것을 보고 배꼽이 빠져라 웃으며 우린 맛있게 밥도 먹고 한 식구가 되어있었다.  남동생도 크고 제법 큰 집으로 이사를 가고 정원에서 돼지고기도 구워먹으며 적어도 나와 내 여동생과 내 남동생은 끔찍한 형제였다.

 

제주도의 오빠는 가끔씩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나 뭐 그런 행사의 회비가 없어 곤욕을 치루기도 했었다. 고사리를 뜯는 할머니와 목수인 작은 아버지와 식구들 수발하러 결혼한거나 마찬가지인 작은 어머니의 낮은 한숨에 나의 오빠는 키도 자라지 못하고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살았던 모양이다. 다 자란 오빠는 내 어깨정도 밖에 닿지 않는다. 그렇게 국민학교들어가고도 몇년이 지나서야 우리 아버지는 참 철없이도 나타났다. 고급자가용에 썬글라스에 새엄마에 낯선 꼬마까지 데리고... 그렇게 오빠 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옹졸한 변명적힌 편지 한 장 보내지 않고 데리고 가마 약속한 번 해주지 않고 성공해서 돌아온 옆집 아저씨마냥 고렇게 나타났다고 한다.

 

오빠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우리 집에 왔다. 아빠를 닮아 다 같이 속이 없는 이유였을까 드라마 보면 탈도 많더만 우린 금방 오빠 동생 형이 되어 그렇게 어우러졌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에게 부족한 건 뭐였을까... 세상이 아버지에게 바란 건 뭐였을까... 그렇게 우리가 아버지를 끝없이 이해하면 할 수록 아버지는 나이를 잊고 가정을 잊고 세상속의 남자로만 살고자 했다. 술과 여자와 세상속의 것들로 늘 묻혀 지내는 아버지는 이미 우리 식구가 아닌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네 살 난 딸아이를 키우며 난 정말 행복하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그 자식을 껴안고 킁킁 거리며 맡는 그 냄새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정녕 아버지는 그런것을 못 느끼고 사신걸까? 세상은 그것보다 더 좋은게 있다고 아버지를 호시탐탐 노려온 것일까?

 

아버지는 지금 아무것도 없다. 아내도 없고 돈도 없다.

 

인간으로 이해하자고 오빠가 말했었다.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그저 한 인간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거라고 용서할 수 있다고 했다. 왜 그런 용서는 다른 형제들도 아니고 오빠만 할 수 있는 걸까? 지금까지도 끝없이 배신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다른 사람도 아닌 오빠가 이해할 수 있는 걸까?

 

두 살난 아들의 아버지가 된 우리 오빠는 지금 저기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고단한 세상을 쉬고 있겠지.  아버지도 용서한 편안한 마음으로 곤히 잠들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