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멋
바람처럼 물처럼 2014/06/19 18:59   http://blog.azoomma.com/byulo222/285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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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는 5일 장이 선다.

장이 서는 날이면 그 주변이 뻑적지근하다.

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은 상당히 협소하고 복잡하다.

그 복닥거리는 길가에서 젊은 아낙네가 난전을 벌이고 있다.

그녀의 품목은 간단하다.

 

깻잎, 호박잎, 마늘, 상추, 시금치, 아욱, 계절별로 흔한 채소들이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바닥에 가지고 나온 푸성귀들을 한 무더기씩 늘어놓고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상추 들여가세요, 아욱 들여가세요.” 소리 높여 호객도 한다.

그 자리가 자칫 논두렁길을 걷듯 조심하지 않으면 채소를 짓밟고 갈 수도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서

마늘도 까놓고 도라지도 까서 한 움큼씩 몫을 지어놓는다.

장날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그 자릴 지키는 그녀의 생활력에 반해서 나는

단골이 되었다.

 

집으로 오는 길목이기도 하지만 아직 젊은 그녀가 뙤약볕에 앉아 얼굴을 그을리며

항상 웃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이왕이면 그녀의 강인한 생활력을

성원해 주기로 했다.

 

어떤 날 그녀가 잘 팔리지 않아 시들해진 상추를 한 무더기 그냥 준적이 있다.

그래서 고마움의 표현으로 떡을 사다주기도 하고

꼭 사지 않아도 되는 푸성귀를 팔아주기도 한다. 그럴 때 마다 그녀는 미안한 표정으로 “아휴, 괜히 강매하는 것 같네.” 하면서 멋쩍게 웃는다.

 

그리고 다른 걸 많이 살 때는 그녀의 등 뒤에 카트기를 맡겨놓고 사다가 채우고 또 사다가 채우면서 든든한 내 보따리 지킴이로 추대하였다.

 

그러다가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사는 데가 어디요?”

“ 복룡동 이요”

“그럼 거기서 직접 이렇게 농사를 짓는 거요?”

“네, 텃밭도 있고 따로 밭도 있어요”

 

남편은 농사도 지으면서 회사도 다닌단다.

회사에서 퇴근하거나 쉬는 날이면 여지없이 농군으로 변신한단다.

 

나는 또 궁금했다.

“지금 몇 살 인가요?”

“저요? 아직 쉰 살도 안 됐어요”

“오! 그렇구나, 젊네”

그러면서 그녀의 손을 보니 나이에 비해  훨씬 거칠고 노화되어 있었다.

손톱은 새카만 때가 끼어 있고 손끝마다 녹색 물이 시퍼렇게 찌들어 있다.

 

그래도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웃는 여유가 보기 좋다.

창피하다거나 자존심 따윈 저 멀리 내 던져 버리고 일단 푼돈이나마 벌어보겠다는 그 의지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도 자신감과 희망을 엮는 그녀의 역동적 삶에서

나는 많은 걸 느낀다.

 

  요즘 젊은 주부들은 자신의 외모 가꾸기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이가 많다.

웬만하면 사먹으려 들고 편한 것을 추구하는 이 또한 많다.

손톱에 멋진 풍경화가 올라 앉아 있는 이도 흔하다.

그 만큼 젊든 나이가 들었든 비주얼이 중시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터의 그녀는 시대와 동 떨어진 사람처럼 외모 지상주의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왜 그녀라고 멋을 모르고 왜 그녀라고 가꾸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겠는가!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미래를 향한 알찬 계획을 앞당기려는 의도가 아마도 그녀로 하여금

장터 한 구석에 난전을 벌이게 만든 요인이었으리라.

 

맨 얼굴에 얼룩진 자외선 자국은 그녀가 얼마나 끈끈한 생활력의 주인공인지를 짚어보면서

언젠가는 꼭 그녀에게도 호시절이 오리라 믿는다.

옛말에도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과

부지런히 돈을 모으는 사람은 당할 수가 없다고 했다.

 

물 한 방울 덜 묻히려고 요령을 떠는 희고 매끈한 손보다

두툼한 마디위에 얹혀진 그녀의 손에서 용기와 희망이 교차한다.

 

   하루 고단한 장돌뱅이 생활을 끝내고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저녁은 얼마나 달콤한 성찬이겠는지

그녀의 어깨 너머에서 그 모습이 넘실거린다.

 

“상추사세요.” 외치던 목소리가 혼곤한 잠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로 변화되는 아침은 그녀에게 있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이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