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그 불편한 진실
마음이 머무는곳 2013/11/22 10:36   http://blog.azoomma.com/byulo222/285741
 

결혼, 그 불편한 진실

 


요즘엔

주말마다 예식장으로 출석이다.

청첩장은 무언의 압력이다.

안 오면 알지?

 

미처 갈 수 없는 먼 곳은 그냥 송금으로 해결하기도 하면서

이제 다 끝났겠지 싶으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또 연락이 온다.

혼기에 들어선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든가.

 

집에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딸과 아들이 있다.

딸은 올해 서른 살 이다.

결혼하면 딱 좋을 적기이다.

문제는 이 적령기의 딸이 결혼을 꺼린다는 것이다.

 

결혼에 적령기가 어디 있냐고 따질 이도 있겠지만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아기를 낳아서 기르기 좋은 신체조건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는 私見이고 보면

애가 타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지구상의 총각들이 다 소멸되기라도 할 것처럼 불안하다.

이런 엄마의 다급해져가는 마음에 끝없이 날아드는 청첩장은 더더욱 딸을 빨리 시집보내야 겠다는 조급증을 불러온다.

 

한 날에 예식이 여러 군데 겹치게 되면 남편과 나눠서 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북적대는 하객들 틈에 끼어서

‘오늘 결혼하는 아가씬 참 좋겠다.’

어떻게 이리 결혼들을 척척 잘 시킬까 부러움이다.

 

어떤 때는 내 옆을 지나가는 신부와 맞닥뜨릴 때도 있다.

예식장 직원이 신부의 웨딩드레스 뒷자락을 길게 펴들고 뒤따라가고 신부는 전혀 수줍거나 어색함 없이 ‘ 내가 오늘은 만천하의 공주니라, 나를 따르라’ 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걸어간다.

그런 신부를 쳐다보고 있자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오늘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참 잘했다’

짝짝짝 박수를 쳐주고 싶다.

 

세상 사람들 다 못하는 결혼을 그 사람 혼자 하는 것처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속을 딸애는 알까?

이런 마음을 안다면 아마도 딸은 대경실색 하면서

“엄만 왜 그래요, 결혼 하는 게 뭐가 좋다고”

이렇게 뭉갤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딸애가 얼른 결혼했으면 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부모가 그려내는 선에서 크게 비켜서지 않는다.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해야 하는 관습도 그렇고,

앞서 말한 생물학적 나이도 그렇고,

한 살이라도 젊어서 피부가 쌀뜨물 같을 때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예쁘겠다는 생각도 그렇고,

더 늙어 서리 맞은 호박이 되기 전에 이 엄마도 곱게 화장하고 우아한 한복을 입고서

손님들을 맞아보고 싶다는 철딱서니 없는 소망도 그렇고, 나이 들어 신체 여기저기가 삐걱거리기 전에 부모 노릇을 마무리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결혼을 채찍질 하는

요건으로 작용한다.

 

저러다가 30대 중반을 훌쩍 넘으면 어쩌나

노처녀를 누가 거들떠볼까

별별 궁상맞은 상상을 한다.

 

늘어나는 나이테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남의 결혼식장으로

나설 때나 다녀와선 딸에게 은근히 스트레스를 던져주게 되기도 한다.

“이구우, 맨날 예식장만 쫓아다니다 판나”

“남들은 다 ” 그러다가 딸애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 뒷말은 중단이다.

 

부모는 결혼해라.

딸애는 아니에요.

이렇게 싱갱이를 벌이는 모습이 내 처녀적 모습 그대로다.

행여 막내딸 결혼 못시키고 돌아가실까봐 애걸복걸 하시던 아버지의

애타하시던 심정을 그 때는 왜 이해하지 못하고 엇나갔는지...

 

우리 베이비부머 세대 여자들은 이르면 20대 초반 늦어도 중반쯤에 거의 결혼을 했으므로

스물일곱 살 이 되어서야 결혼이 결정됐을 때 아버지의 기뻐하시던 표정, 한시름 놓았다는 안도감을 어찌 잊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밤에 한참 자고 있는 나를 남편이 깨웠다.

자고 있는데 깨면 밥 먹을 때 먹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 더 싫어하는 내게 그는 아주 흥분한 어조로

“여보 오늘 아주 좋은 소식을 가져왔어, 우리 딸 결혼 시켜야 겠어.”

이러는 거였다.

 

중단된 단잠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뭐어? 어떻게? 빅뉴스에 닫혀있던 감각 기관들이 화들짝 열린다.

 

누군가와 술을 마시다가 자연스럽게 자식들 결혼 문제가 불거졌단다.

그래서 우리 딸도 아직 결혼을 안 하고 있다고 했더니 마땅한 자리가 있다고

적극 주선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단다.

신이 난 남편.


줄 떡 조차 없는데 김칫국부터 준비하고 있는 격이지만

딸에게 아빠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내라고 성화를 보내자

그 전 같으면 펄쩍 뇌기를 뛰던 딸이 순순히 사진을 전송해왔다.

 

그 후 주말이 되어 집에 오게 된 딸은

“엄마 아빠가 하도 난리를 치니까 사진을 보낸 거고, 한 번 만나보기는 하는데

절대 그 사람하고 결혼 할 생각은 없으니 그것만 아시란다.”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있는 딸이

내려왔다 가면서 하는 소리에

우리 부부는 딸을 역전까지 바래다주면서 또 한 번 으름장을 놓았다.

“너 좋은 자리 다 박차고 나중에 그 보다 못한 사람 데려오면 구박덩어리 될 줄 알라” 고.

 

결혼은 이렇게 반 강제로 하는 것이 절대 아닌데

적령기라는 이유를 들이대고

기성세대의 획일적인 결혼관을 들이대면서 후딱 아무렇게나 치러내야 할

가벼운 일은 아닌데 슈퍼에서 과자 봉지 사듯 쉽게 선택해야할 문제가

아님에도 부모는 나이를 자꾸 먹고 있다는 압박감으로 딸애를 옥옥 조이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서 요새는 결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할 수 없다.

네 맘대로 살아 라는 부모들도 있다는데 난 왜 네 맘대로 살아라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 걸까?

 

요즘 젊은이들은 상대방의

경제력, 학벌, 인물, 키, 성품, 가족관계, 등을 모두

저울에 달아본다.

 

흔들어보고 털어보면서 중량 미달이 될 때는

가차 없이 퇴짜다.

 

특히 경제력을 우위에 두고 있는 시선은

하향곡선을 그릴 줄 모른다.

부모라고 예외가 될 수 있을까.

 

게다가 요즘 아가씨들은 결혼을 인생의 중요한 통과의례로 여기지 않는다.

 

시댁과의 이런 저런 잡음.

남편 시중.

출산의 고통과 양육의 고달픔.

직장과 가사의 양립.

자유스러움의 구속 등

혼자보다 둘, 둘보다 셋, 넷으로 식구가 불어나면서 겪어야 될 문제의 심각성을

너무도 약아빠지게 꿰뚫고 있다.

 

굳이 결혼을 통해 그런 것들과 골치를 썩이며 살고 싶지 않다는

개인주의가 팽배한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는 경제 능력을 닦아 놓은 것도

결혼을 귀찮게 여기는 요인이다.

 

그녀들에게서 이구동성으로 듣는 말

“ 난 엄마처럼 안 살 거예요.”

 

이래서 노처녀들이 가을철 논두렁 메뚜기보다 많다.

어쩌랴 시간은 자꾸만 그녀들 곁을 희롱하며 지나고 있는데 어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