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婦
사업을 하는 남편은 한낮의 마음 고생을 친목과 비즈니스라는 명목으로
술자리를 자주 갖는다.
그러다보니 허구한 날 휘청 거린다.
아침에 점잖게 나서던 중년남자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밤이면 몸 따로 마음 따로 흐물흐물해진 상태로 귀가하기 일쑤다.
기분 좋게 마신 날은 발성의 고저를 갖춰서 김은 힘있게 미선은 부드럽게
김 미서~언 동네방네 아내 이름을 공개하는가 하면 조금 껄그러운 날은
현관에 구두를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김미선 , 김미선 을 연호한다.
조밀하게 짜여진 아파트에서 한 밤중에 창문 밖으로 도망치는
고성을 잡으려고 쪼르르 뛰어나가 기겁을 하며 입을 틀어막고
안방으로 반 강제로 끌여 들여도 여전히 그의 입에선 김미선이 멈추질 않는다.
사지가 제멋대로인 사람을 안방으로 겨우 데려다 놓으면
그때부터 그의 인생사가 파릇 파릇 펼쳐진다.
취중에도 쑤셔 박혀있던 기억까지 끄집어내는 총기?를 보이며
역사의 뒤안길을 헤매는 것이다.
대단원을 기다리는 고통과 조급증을 감추고
“알았어, 알았어”
긍정의 표정을 계속 연기해야만 그의 장광설에 찬물을 끼얹지 않게 되는것이며
만약 신경질을 부린다든가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 그는 즉시
그동안의 진도를 바꿔서 훈시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혼자 엮어가는 모노드라마보다 언제 끝이 보일지 모르는
교장 선생님 같은 지긋 지긋한 훈시가 더 두려워서 맞장구를 쳐줘야만 탈출구가
보인다는 것도 이미 오래전에 터득해 뒀던 터라 혼자 신이 난 그의
무용담에 얼씨구, 절씨구 추임새를 넣어준다.
추임새 속에는 “어서 끝내줘 어서” 호소의 메시지가 담겨있건만
술 취해 정신없는 사람이 멀쩡한 사람의 애타는 심정을 접수할 까닭이 없다.
그저 터져 나오는 하품으로
피곤함을 표시 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게 숱한 하품을 토해내고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겨우 겨우 달래고 있다 보면
그가 체력의 한계에 도달한다.
씻지도 않은 고약한 발로 엉금엉금 침대로 기어 올라가
벌러덩 눕는 것으로 인생강의가 끝이 나면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와글와글 쏟아져 나온다.
곧이어 날숨과 들숨 속에 코고는 소리를 동반하고 그는
일시 복잡한 세상과 무관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괜히
잘못한 것 없이 교무실로 끌려가 야단맞은 학생처럼
교무실을 나서며 선생님을 원망하는 학생처럼
남편을 향해 씩씩거린다.
그 꿀 맛 같은 잠도 놓쳐버리고
쪼그리고 앉아서 세상에서 제일 지루하고
재미없는 얘길 듣느라 두어 시간을 베어버린 안타까움과 분노를
털어내며 헛손질을 해댄다.
온 방안을 휘 젖고 다니는 술 냄새와 발 냄새
코고는 소리가 어우러져 여인네를 조롱한다.
곧바로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싶어진다.
수시로 겪어내는 일상이건만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밥상을 차리면서
여인네는 생각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 굴곡마다에
곤고한 삶의 현장에서 얻어먹은 고달픈 생의
조각들이 뒤웅박만한 뱃속 갈피마다에 똬리를 틀고
매순간 포효하고 있는 걸 거야.
속상할 때마다 제일 만만한 마누라에게 다 퍼내버리고 싶은걸 거야.
한밤중에 울고 싶던 마음을 스스로 달래며
밤새 괴상한 냄새와 소리가 춤을 추고 다니던 안방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그네들을 내쫓는다.
밉디 미운 남편을 흔들어 깨우면서
미간에 힘이 들어가고 있음도 시인한다.
수시로 곤두박질치는 부부라는 묘한 관계 속에서
숨구멍을 틀어막는 힘든 일들이 툭툭 터져 나올때 마다
전생의 웬수 였음을 실감하며
흰자를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던 관계,
그 관계가 세월 속에서 새우젓처럼 발효되고 있다.
곰국 같은 진득함이 없었더라면
벌써 보따리 쌌을 미련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며 부부라는
테두리 안에서 건져 올린 기쁨은 도대체 몇%일까?
미운 부분을 수시로 감싸는 서로의 넓은 치마폭이 없었더라면
세상에서 제일 돈독한 관계는 이미 지속성을 잃었을 것이다.
부부!!
그 영원한 미스테리에 의문부호를 꾸욱 눌러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