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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확장, 나의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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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확장, 나의 축소 |

너의 확장, 나의 축소 / 김규성
구속하지 않으면서 관심을 기울인다는 게 가능할까? 사랑은 그 둘을 양립시키는 지혜와 열정과 순수의 축제, 고도의 예술이다. 상대방이 잘못 든 길인 줄 알면서도, 그 뒤를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가까이서 조마조마 따라가야 하는 안타까움을 경험해 보았는가? 한바탕 다투고 나서 상대방의 잘못 아홉보다 내 하나의 불찰을 탓하는 아니 상대방의 잘못을 저지른 원인과 배경을 함께 아파한 적이 있는가? 상대방을 위한다고 가슴 저미는 이별을 두눈 딱 감고 받아들이려다가 아무래도 상대방의 고통과 상처가 너무 힘들 것이 눈에 선해 자존심 따위는 아랑곳없이 더 끈끈히 포옹해버린 적이 있는가? 피차 완벽하지 못한 인간의 한계를 원죄처럼 안고 살아야하는 처지에, 상대방의 어떤 잘못도 공통의 죄로 감싸고 털어내는 믿음 없이 감히 사랑한다는 말을 남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기에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하기가 얼마나 지난한 과제요 숙명인가를 충분히 숙지한 연후에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면서 헤어진다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 잘못 되었음은 물론 그들이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음을 뜻하며 그것은 곧 그들의 인격과 인생의 실패를 증명하는 주홍글씨다. 진정한 사랑의 보상은 행복이나 즐거움이 아니다. 오히려 가슴 쓰린 아픔이며, 달콤한 상처이며, 밤파도 같은 외로움이다. 상사화의 꽃과 이파리가 앓는 그리움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에겐 슬픔조차도 감미로운 음악이다. 눈물이나 다툼도 권태나 무관심보다는 몇 곱 축복이다. 항상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공존한다. 늘 서로를 창조하고 삶을 증거 한다. 상대방의 자유를 최대화해주며 그만큼 내 권리를 최소화하는 지고지순을 맛본 자만이 인생의 열쇠를 얻게 된다.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확장하며, 긍정의 미학을 호흡 하나마다 아로새긴다. 사랑하자,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반생명이며,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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