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의 팔짱을 껴 보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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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가 끝나고 이맘 때 쯤은 참 먹을게 많다. 모든 오곡백과가 익어 열매를 거두어 들임으로써 조상들님께 제를 지내는 일이 잦다. 이름하여 묘사(기제사를 지내지 않는 윗대 조상들의 묘를 찾아다니며 일년에 한 번 제를 지내는 일)
처음에는 남편이 하지 않고 시아버님이 항상 다니시면서 제문도 읽어시고 비석에 쓰인 한자도 우리말로 해석하여 아랫대의 젊은이들에게 이해시키기도 하셨는데 이제는 연세가 많으셔서 올 해부터 남편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직장을 가지고 도시에 살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못하였는데, 어제부터 문중 순천장 씨가 의성 제실에 모였는데 전국 각지의 후손들이 모여서 음식 장만을 하여 내일 있을 제 를 지낼 일을 준비 하였다고 하였다. 올 해는 남편이 유사(제를 지낼때 책임을 지고 음식을 장만하고 모든 뒷일을 수습하는 이)가 되었다. 갈수록 젊은사람이 없어서 제를 지낼때마다 고민하여왔는데 올 해는 젊은 사람이 유사가되어서 모두 반가워하였다면서 남편도 처음 간 자리지만 흡족해 하였다.
사실 나는 남편이 유사가 되었다는 소리에 조금 당황하였다. 친정어머니의 장남 자리에 시집와 맏며느리 역활을 보고 자란 나는 제사라는 말에 거부감이 들었다. 우리 어머니가 하는 일을 맏며느리도 아닌 내가 한다는 사실이 싫었던것이다.
그렇지만 속은 감추고 그래도 여기 사는 이상 내가 할 일은 하여야기에 모든 일을 하였다. 처음에는 이런 일이 내게 닥친것을 비관하였지만 그렇게 한다고 별 뾰죡한 방법이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깨달았기에 닥치면 닥치는대로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한것이다. 새벽에 나간 남편은 밤 9시가되어서 집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각지에서 모인 순천장 씨들이 음식을 한 자리에서 준비하고, 내일은 제를 지낸다면서 내일 아침은 새벽에 나간다면서 일찍 깨워 줄것을 부탁했다.
새벽 일찍 동네 어르신들과 의성 제실에 제를 지내를 간 남편은 오후 5시가 되어서 들어왔다. 음식은 거기에 참석한 모든이들에게 모두 조금씩 돌려진다면서 남편도 여러 가지의 제사 음식을 가지고 왔다. 어른들께 음식을 올리고, 설거지를 하고 들어오니 남편은 벌써 코를 골고 자고 있다. 씻지도 않고 자는걸보니 처음 간 자리에서 유사 일을 하느라고 피곤하였는가 보았다. 이불을 덮어 주고 옆에 누우니 눈만 말똥말똥 아직 잠잘 시간이 아니니 잠이 올리없다. 시골의 겨울밤은 일찍 찾아온다. 8시가 조금 지났느데 밖은 캄캄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고 있는데 남편이 눈을 뜬다. 시간을 묻는다. 8시가 넘었다고 하니 잠깐 눈을 붙인것 같은데 이만큼이나 되었냐며 씻으러 나간다.
씻고 들어온 남편은 밖에 바람 쐬러 나가자고 한다. 춥고 밖이 어두워 별반 나가고 싶지 않다고 하니 남편은 한사코 팔을 붙잡고 나가잔다. 밖에 나오니 불을 켜고 안에 있을 때보다 밖이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달빛도 고고하고 별은 반짝반짝 쌀쌀한 초겨울의 밤 공기가 참 선선하게 느껴졌다. 나오길 잘하였다고 생각하며 오랫만에 남편의 팔짱을 꼈다.
참 오랫만에 껴 본 남편의 팔짱, 남편의 팔짱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 참 오랫만에 남편이 내 옆에 있음을 감사했다. 어른들과 살면서 우리부부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였다. 우리끼리 나가자니 어른들께서 서운해하실까봐 우리 네 식구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였다. 남편은 우리만의 시간을 가질려고 하였지만 어머님의 서운해 하시는 모습을 너무나 잘 아는 나는 이미 그런 시간을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다.
텅 비어버린 밤 들녘의 들길 그 쌀쌀한 밤 공기조차도 못느끼고 우리 부부는 오랫만에 어른들도 아이들도 방해하지않는 그 길을 걸으며 남편은 오늘 있었던 제 를 지냈던 일을 하며 이제 뭔가 가닥이 잡힌다고하였다.
'아! 이제야 이 남자가 흙에서 아니 고향땅에 사는 내음을 맡았구나"하고 생각하면서 이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나는 하늘을 올러다 보았다. 무수히 쏟아지는 별빛이 꼭 오늘의 제를 지낸 조상들인것 같아서 나는 심호흡을 한 번크게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흙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이상 흙을 떠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달라고 기원하였다.
어른들 아이들 뒷바라지에 하늘 한 번 우리의 눈으로 볼 수없었던 우리 부부는 실로 오랫만에 하늘의 별들을 어린시절의 우리로 돌아가 저 별은 무엇인지를 서로 캐 물어가면서 그 잠깐을 만끽하였다. 그 많은 별 중에서도 반짝이는 별이 있는가하면 무리지어 있으면서도 빛나지 않은 별들도 있음에 우리 부부는 저 반짝이지는 않지만 별들의 무리속에서 없는 듯 빛을 발하는 꼭 우리부부 같은 별을 보면서 그렇게 바람부는 들길을 걸어 따뜻한 우리의 보금자리로 찾아들었다. 그 캄캄한 어둠속에서 걸어오는 우리 부부를 우리집 봄(강아지)이는 알아보고 짖지도 않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