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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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드디어 우리집 큰 가을걷이가 모두 끝났다. 이제는 작은 일만 거두어 들이면 된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차 소리가 나 밖을 보니 남편이 시장에 다녀오는가 보다. 저녁을 머고 나가길래 또 테니스 한 게임 하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부엌에 얼굴을 드밀고는 빨리 끝내고 소주 한 잔 하잔다.
그렇잖아도 한 잔 했으면 하였는데... 설거지를 끝내고 방에 들어오니 수육 한 접시와 내가 좋아하는 백세주 한 병, 그리고 남편의 애인 소주 한 병.. 그렇게 우리 부부는 마주 앉아 한 해의 수고로움에 서로를 격려하면서 각자의 애인을 소주잔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 남편은 속내를 털어놓는다. '미안하다라고... 당신한테는 멋진 남편이 될려고 하였는데 한 순간의 실수로 이렇게 고생시켜 미안하다라고....'
나는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자신을 자꾸 비웠지만 그래도 불쑥불쑥 올라오는 옛날의 나의 조그만 행복을 남편은 주식투자라는 괴물 앞에 모두 주어 버렸으니... 그리고는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며 그 길로 고향으로 들어온 세째 해,
이제 와 남편을 탓 해보아야 나만 괴로울것같아 무조건 참았다. 자식을 위하여.... 노쇠하여가는 시부모님을 위하여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하고 살려고 애쓰는 남편을 위하여...
남편은 소위 말하는 화이트칼라였다. 부모의 기대도 있었고 주위의 시선도 있었지만 과감히 모두들 버리고 이 고향으로 돌아와 흙 속에 파 묻혀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데 더 이상 내가 해줄것이라고는 아내라는 이름으로 같은 길을 가야지라는 생각뿐이다.
한 동안은 참 미웠지만 그래도 성실한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지금 이대로의 모습도 참 좋다. 낮에는 가족을 위하여 우리 두 부부 같이 흙 속에 살지만 저녁을 먹고 나면 각자의 생활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은 그동안은 여기에 적응하느라 잊고 살던 테니스를 지금 열심히 하고 있다. 난 별로 운동 체질이 아니라 같이 가자는 남편을 뒤로하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렇게 별도 보고 내가 좋아하는 책도 보고 그리고 먹향을 맡으며 글씨도 쓰고...
시골의 밤공기는 너무나 좋다. 우리집은 앞산의 들녘에 한적하게 내려 앉아있기에 밤기운이 아리다. 창 열면 달빛과 별빛으로 물든 야트믹한 앞산 숲 속의 풍경이란... 시끄러운 소음으로 떠들썩한 도시의 풍경과는 사뭇 대조적이이다. 도시에서도 살아보았기에 이 시골의 운치있는 풍경이 더 아름답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여기 블로그에 마실 다니다보면 참 많은 당당한 여성들을 보게된다.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멋지게 살아가는 아줌마들을 보면서 전형적인 386세대인 나는 노쇠한 시부모님 모시며 남편 따라다니면서 농사 짓고 밥하고 빨래하고..... 처음에는 나 자신을 잃어버린것같아 속도 많이 상하였지만 지금은 자꾸만 나 자신을 비우는 연습을 한다. 비우고 또 비우고 나면 텅 빈 마음에 채어질 그 무엇을 위하여.... 그리고 농심을 알아가면서 동네 어른들께 인정받는 나의 남편을 위하여... 오늘 밤 나는 무엇을 하고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고 사느냐가 우리 부부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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