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는 그 나름의 뚜렷한 질서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의 질서가 있고, 뿌려서 가꾼 대로 거두는 수확의 질서가 있다.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가꾸고, 가을은 거두어 들이는 시기...그때마다 다른 일들이 대지의 주인인 우리들을 기다린다.
참 올 여름은 무더웠지만 우리 두 부부의 들판은 풍요로웠다.
그 힘듬을 뒤로하고 이 가을에 우리 부부는 그 힘듬의 미학인 거두어 들이는 수확의 수고로움으로 허리 한 번 펼 기회가 없었다.
어제의 가을비는 농사에는 필요가 없는 비였지만 우리 두 부부에게는 쉴수있는 단비였다.
대지는 우리에게 원천적인 삶의 터전이고 배경이다.
문명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하나의 도구이고 수단이지 최후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도시생활에서의 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해져버린 나였지만 지나온 시골생활의 3년은 나를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순박한 우리 한국인의 얼굴을 만들어주었다.
자연은 말없이 내게 많은 깨우침을 주었다.
내 육신에 난 탈은 나무들이 청정한 가지를 펼치고있는 숲 속에서,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는 강물에서, 그리고 맑디 맑은 흙내음에서....자연의 병원은 그렇게 나를 치유해 나갔다.
이제는 자꾸만 나를 채우는 번뇌가 아니라 자꾸만 나를 비우는 텅 빈 충만 으로 만들어 나간다.
오늘은 이 단비를 맞으며 남편과 여유를 찾아보았다.
조용한 산 속의 저수지에서 우리 부부는 오랫만에 강태공의 마음으로 돌아가 한가함을 누렸다.
저수지에 내려 앉은 자연만큼이나 우리 부부의 마음도 평화로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