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였습니다.
가엽운 울 엄~니!
오늘은 억척스레 힘겹게 살아오신 울 엄마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모진 세월 삶의 굴레를 힘겹게 견뎌 오신 내 어머니 !
아버지는 가난한 직업군인이셨습니다. 월남전에 참전 하셨고, 머나먼 월남에서 사무치는 그리움을 엄마에 대한 사랑을 별을 보며 노트에 시를 쓰시곤 하셨죠.
외할머니의 반대에도 엄마는 고귀한 사랑을 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했고, 아버지가 강원도 산골에서 하사로 근무하실적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채 숟가락 두개, 밥그릇 두개, 냄비 한개.... 소꼽놀이 하듯 신혼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많은 군인들을 집에 데려 오시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어머님께서는 스무명이 넘는 군인들을 밥 해 먹이려 무척 애 쓰시곤 하셨지요.
" 그래도 그때가 행복했재... 산나물 뜯고, 봄이면 진달래 따다가 꽃전 부쳐 부던때가... 월메나 맛있었는데... " 화전을 꽃전으로 붙힌 전이라 해서 이쁜 꽃전이라 하셨지요.
아버지 하나만 믿고 가족들과 이별해 낯선 강원도 산골에서 힘겹게 사셨지요. 빈곤한 삶 속에서도 오빠를 낳았고, 텃밭을 가꾸시며 알뜰 살뜰 행복을 꿈꾸시던 그때 가난했지만 행복했었다 하셨지요. 그후 제가 엄마 뱃속에 있을때 만삭의 몸이었는데 술에 만취한 군인이 우리집 싸리문을 부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셨지요. 마침 그날은 아버지께서 군대에 밤근무중이셨고, 집에는 어린 아들과 어머니뿐이셨죠. 어린 아들 다칠세라 술에 만취한 군인을 피해 아들을 안고 도망 가던 중 술에 만취한 군인은 제 집인줄 알고 제 와이프줄 알고 어머니 배를 워커로 사정없이 발길질을 했고, 어머니는 만삭인 몸으로 아들을 들쳐 업고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군대에 맨발로 달려와 쓰려지셨다고... 그후 의식을 찾으신 어머님은 강원도 시내 병원에 누워 계셨죠. 의사 선생님 말씀이 " 산모랑 아가 모두 위험하니 서울 큰병원으로 가라고..." 아버지는 자신이 지켜 주지 못했다며 참 많이 아파 하셨지요. 서울 큰 병원에 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는 더 슬픈 말씀을 하셨지요. " 산모 아가 다 위험하니 산모를 살리려면 아가를 포기하라 하셨지요." 하지만 아버지, 어머닌 쉽게 포기하지 않으셨지요. 오랜 시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면서도 당신 아픈건 괜찮아도 아이만은 안된다고 아이만 살려 달라고 애원하시던 울엄마 ! 제가 세상에 태어났을때 두분께서는 참 많이 우셨지요. 피덩이 몸에 피멍이 가득한게.... 그때 발길질 때문인것 같다며... 아가야....미안하다... 울아가 미안해.... 즈게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을련지... 무척 애처롭고 걱정 하셨다지요. 제가 태어난후 많은 빛을 지게 되었지요. 어머니의 사랑과 염려 덕분으로 무사히 태어났지만 태어나자마자 많이 아파서 몇달동안 병원에 입원했었다지요. 그때 빛이 많이 생겼다 하셨지요. 그후 부산으로 올라온 두분은 더 낳은 삶을 위해 이별을 하셨지요. 아버지께서 원양어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며 희망의 고기를 낚으셨지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없는 시간속에서 파출부, 신발공장, 화장품 세일즈, 구멍가게, 보험아줌마, 안해 본 일이 없으셨지요. 신발공장에 다니실적에 제가 중학생이었죠. 그땐 정말 너무 힘겨워 하셨지요. 신발에 붙히는 본드에 취해서.... 병원도 많이 다니셨고, 아프시면서도 매일 매일 신발 공장에 나가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내가 빨리 커서 어른이 되야지.... 그래서 돈 많이 벌어야 엄마 고생 끝날텐데... 그땐 제가 중학생이란 사실이 싫었었죠. 그후 어머닌 계곡에서 커다란 밥상에 고기, 상추, 술, 불판을 올리고 손님 계신 곳까지 배달하는 위험한 일도 하셨지요. 미끄러져서 다쳐서 집에 오시던날 " 속상해... 정말... 이 일 계속 해야해... 병원에 가요... 네? " 파스 하나면 된다고... 파스나 붙혀 달라고 하시던 그 시절 !
제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오빠도 졸업을 해서 대기업에 취업을 했고, 아버진 파도와 싸우시며 아직도 원양어선을 타고 계시지만 우리집의 가난은 끝나지 않았지만 몇년만 더 있으면 이 지긋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 날 수 있겠지요. 꿈을 꾸던 그 시절.... 비극은 그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쓰려지셨죠. 맹장수술을 하셨지요. 오빠도 구미에서 일하고 있었고, 아버진 머나먼 외국 망망대해를 떠 다니고 계셨고, 저는 혹시 엄마가 죽지나 않을까 울면서 " 엄마 죽으면 안돼.... " 울고 있었죠. 그때 아버지가 휴가를 받아 오셨지요.
" 아부지 왜 인자 와.... 아부지 미워..." 아부지 가슴을 치면서 울던 그 시절 아버진 아픈 어머니와 어린 저를 두고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 하셨지요. 그후 아버지께서 선택하신 직업은 도로를 포장하는 막노동이었습니다. 아무런 기술도 없는 아버지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직업 ! 어머니의 맹장수술을 보면서 " 엄마 다시는 아프지마..." 엄마 품에 안겨 울던 그때 한없이 넓어 보이던 엄마품이 왜그리 작아졌는지...
그후 친정 어머님께서는 대장암 수술을 2번 간암 수술을 두번 하셨지요.
그리고 지금은 자궁에 출혈이 일어나 조직검사를 해 놓으셨구요.
내 어머님이 걸어오신 그 모진세월이 원망스럽습니다.
착한 울엄~니 이젠 그만 아파하셧으면 좋겠는데....
하늘이 미웠습니다.
착하디 착한 울 엄~니 많이 아파한만큼 오랫동안 건강하게 웃으며 살게 해 드리고픈 자식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아픔이 밀려오니...
단순한 염증이면 좋을련만... 폐경기가 와서 그런거라고 쉽게 생각하고 싶지만...
내 어머니가 큰 수술을 4번 하셨기에.... 여자의 몸으로 대수술을... 배에 칼자국을 다섯번이나 내셨기에 산부인과에서 조직검사 해 놨다는 말에 깜짝 놀라는 건...
행여 또 아프실까봐.... 걱정스런 마음에...
향기는 눈물이 납니다.
내 어머니가 너무 가여워서...
더이상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이상 슬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여생 웃으며 사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부디 아무일 없듯....
신이시여! 내 어머니를 지켜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