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이렇게 살았다 (2)
기본 주제방 2004/03/30 17:37   http://blog.azoomma.com/bada3599/122167
 

그후 홀로 되신 아버님께 잘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어머님 가신지 몇 달후 재혼 이야기가 나왔다.

남편과 시누,시동생이 반대했다. 어머님 땅에 이슬 마르면 가라고...

자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씩씩한 우리 아버님의 연애는 시작 되었다.

어떤날은 자고 들어오셨고, 어떤날엔 새시어머님을 모시고와 안방에서 함께 달콤한 꿈나로로 쑹~

아버님 환갑 잔치도 집에서 해 드렸다. 외식을 싫어 하시는 검소한 울 아버님...

그덕에 30살의 내손은 할머니 손처럼 거칠어졌다.

친지분들 오시는 날엔 새시어머님 눈치를 보며 우리집에 머물러 계신다.

남편은 당연한거라 했지만 나는 힘겹다. 내가 할 일이 많이 생기니까...

울님 미운 말 한마디 “ 지금 내가 하는 거 류씨 집안의 종부로써의 기본자세를 갖추기 위함이라...”

아~ 맏며느리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상견례 하는 날 새시어머님 아들내외,딸내외 불러다 집에서 상견례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어머님 자녀들이 한번 초대 한다고 했는데 며느리가 유산 시키는 바람에 또 다시 우리집에서 상견레는 이루어졌다. 울 아버님 식혜 좋아하셔서 밤새 식혜 만들고... 잡채에...

와~ 내가 생각해도 대견하다.


재혼하시고 한달을 새시어머님 모시고 살았다. 그후 집근처로 분가해 가시면서 시누랑 시동생을 데리고 가셨다.

하지만 그때부터 새시어머님과의 갈등은 시작 되었다. 시할머님께서는 새며느리 눈치 보여 손주한테 제사를 모시라고 말씀 하셨고, 신랑은 당연히 모셔야 한다며 나에게 커다란 짐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참았다. 우리님 어머님 제사밥 새시어머님께 해 달라기 싫다는 말에 군소리 없이 나는 했다. 그리고 아버지 진갑 잔치도 집에서 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즐겁게 하자고 마음 독하게 먹지만 나에겐 꿈이 하나 있다. 이룰수 없는 꿈... 시아버지 손 잡고 “ 아버지 저 피자 먹고 싶어요. 피자 사 주세요. ”  시아버지랑 며느리랑 다정히 피자 먹는 꿈... 우리님 말씀 하신다. 꿈깨라고 !


넌 조선시대에 시집 왔다 살라 한다.

울 아빠가 시집 가기전 말했다. 류씨 집안의 귀신이 되라고...

하지만 새시어머님과의 갈등은 쉽지 않았다. 울 어머님 내모습이 게을러 보이고 한샘해 보였을까? 종이 기저귀 쓴다고 아낄 줄 모른다며 명절때 손님들 앞에서 내 흉을 보셨다. 그것도 자신이 살아 오신 힘든 이야기 끝에 천 기저귀 안 쓴다고 ... 귀가 막혔다.

참았다. 참는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던가?

하지만 매번 명절때만 되면 내가 헤프다고 말씀 하신다.

텃밭을 가꾸는 울 아버님 밭에 음식 쓰레기 갔다 버리지 않는다고 새시어머님 잔소리를 하신다. 결국 나는 그 말도 따랐다. 밤에 갔다 버렸는데 그것도 파 묻지 않아서 혼이 났다.

지금도 가끔 아버님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버린다며 야단치신다.

그런데 변명이지만 쉽지가 않다. 아이 둘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 들고 밭에 가서 버린다는 것이... 그래서 오늘도 난 헤픈 여자가 되어 버렸다. 절약이 몸에 밴 시부모님을 본 받으라며 남편에게 혼나며 산다.

재희 가진지 석달쯤 되었을때 남편이 친구 댕기 풀이에 가서 외박을 한 경우가 있었다.

새벽 5시 낯선 여자에게 전화가 왔다. 우~씨! 남편 친구 애인이라는데 지가 뭔데 울신랑 붙잡고 안 놓아준단다. 바보 같은 울님... 끝까지 놀아봐라. 내는 니랑 못산다. 부부싸움을 했다. 치고 박고... 육탄공세... 결국 짐싸서 친정까정 갔다. 이혼하겠다며... 그때 신랑한테 맞았다. 처음으로... 분했다. 나는 옆구리 한 대 때렸는데... 울 신랑은 9대는 때린것 같다. 친정 부모님 앞에서 무릎 꿇고 빌던 남편 .... 친정 엄마는 이혼 하라며 난리였지만 난 참았다 건희가 있는데... 그사건 후 부부싸움은 하지 않는다. 아이가 많이 놀랬다. 엄마 아빠 목소리 높여 싸우는 걸 본 후 예민해 진 아들... 힘들어도 참자... 교훈 하나 얻었다.

부부싸움을 하고 몇일후 시부모님께서 아셨다. 재송동... 친지분들도 많고... 울아버님 재송동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누구집 며느리 새벽에 치고 박고 싸웠다는 소문이 들어가 불려가 혼이 났다. 울 어머님 술 먹은 남자 건드렸다며...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겠지...

그 한마디에 가슴에 새찬 겨울 바람이 분다.


새시어머님 아버지 앞에서 내 흉을 보셨나보다.

우리 아버지 어머님 말씀에 날 불러 훈계를 하신다. 눈물 흘리며 돌아서던 날...

시어머님께 잘하라는... 착한 사람 들어왔다고 니는 복 받았다며 말씀 하시는데...

왜 맨날 나만 욕을 먹는지...


새시어머님과 한판 붙었다. 명절날 친지분들 앞에서 자신이 힘들게 살아오신 이야기 끝에 나를 씹는다. 나는 화가 났다. 더 이상은 참지 못했다. 바보처럼... 결국 시어머님께 한마디 했다가 죽도록 혼이 났다. “ 며느리가 시어머님 말씀 하시면 다 지 잘데라고 하는 말인데 새겨 들을 것이지 이디 말대꾸 하냐면서... 내를 친시어머님이라 생각하며 저렇게 행동하냐며... 날 무시한다면서...”  결국 나는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님, 시아버지, 시누이, 남편에게 불려가 훈계와 충고를 들었다. 근데 왜이리 억울한지...


그후 아들이 폐렴으로 입원을 했다. 그날 새시어머님께 딸 재희를 부탁 했다.

딸아이가 감기 때문에 밤에 많이 보챘다고 한다. 아버지 병원으로 전화를 하셨다.

“ 당장 퇴원하라며...새시어머님 힘들어서 안된다고 잠 한숨도 못잤다고...”

결국 가퇴원을 했다. 시댁에 들러 재희 데리고 집에 들어오는데 피눈물이 났다.

왜그리 미운지... 우리 어머님 따라 들어오시며 한마디 하신다. “ 손주 한번만 더 맡기면 집 나간다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바다는 이성을 잃었다. 참았어야 하는데...

내가 놀러 다니면서 아이들 맡긴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잠시 봐 달라고 했는데 그게 큰 잘못이냐며... 다시는 시어머님께 아이들 안 맡긴다고...  그런데 만약 내가 건희 아빠랑 안 살고 도망 가면 아이들 어머님이 보살펴야 되는거 아니냐며?

울 어머님 절대로 못 키우신단다. 이혼 꿈도 꾸지 말란다. 자기는 도망 갈 수 있어도 내는 이집 귀신이란다. 내가 도망 가면 아이들 고아원에 갔다 준다는 말씀에 뻥....


그 사건 이후 새시어머님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아니 미운정 때문에 하루에 수십번도 더 가던 시댁에 이젠 자주 가지 않는다. 이런 내가 못됐다고 남편은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가슴에 한이 많다.


하지만 남편 말처럼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금은 말하지 말란다. 먼훗날 살아보고 나서 말하란다.

나는 언제쯤이면 울아버님이 원하시는 종부로 거듭 날 수 있을지...

오늘도 난 열심히 기도한다. 좋은 맏며느리...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게 해 달라고...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못난 막내딸 걱정에 항암 치료를 하시면서도 매번 맛있는거 사다 주시는 친정 어머님 때문에... 암수술을 4번이나 하신 불쌍한 우리 엄마 !

안부 전화라도 한통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