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다 언니의 꼬리가 참 슬프다.
내 블로그에 들어와 내 글을 읽는 좋은님들은 말한다. 행복해 보인다고...
하지만 나는 매일 말한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내삶이 힘들고 외롭지만 내곁엔 아이들이 있다. 희망의 등불이 있다.
그래서 힘들지만 이겨내고 싶다.
친구들은 말한다. 바보처럼 산다고... 예전에 똑똑한 현숙이는 어디 여행 갔냐고?
결혼 4년차 파란만장한 내삶을 공개수배한다.
나는 1남1녀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울신랑 만나기 전까지는 설걷이도 한번 안해 볼 정도로 귀하게 컸다. 신랑을 사랑하게 되면서 나에겐 문제가 생겼다. 남편은 류씨 집안의 장손에 장남이었고, 9년째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계신 시어머님에 가출한 시동생도 있었다.
하지만 난 괜찮다 생각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이겨낼 수 있다 생각했다.
친정 부모님의 반대에도 난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했다. 결혼 한달 전 남편이 실직했다. 남편은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는 나에게 폭탄 선언을 했다. “ 나는 아프신 부모님 두고 분가할 수 없다. ” 그말이 참 슬프게 들렸다. 알콩 달콩 이쁘게 살고 싶은 내 신혼의 욕심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참 많이 속상했다. 예단비를 드리던 날 참 많이 울었다. 큰댁 동서들은 친정이 잘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친지분들에게 이불 한 채를 다 돌렸다고 한다. 아버지 8남매까정... 하지만 우리도 최선을 다했다. 예단비 오백만원을 드리고, 예단비 백오십만원을 받았다. 딸 가진 죄인이라는 말 틀린 말이 아닌가보다. 지금도 가끔 시아버지께서는 말씀하신다. 혼수가 적다며 한마디씩 하신다. 나는 가슴으로 운다.
결혼 하기 하루전 이바지 음식을 해 오라는 시어머님 말씀에 결혼 전날 친지분들 드실 음식을 해 가지고 시댁에 인사를 갔다. 30명이 넘는 대식구 와~ 심호흡 크게 하고 절을 몇 번을 했는지... 에고 에고 다리야... 시할머님 좋아하신다는 왕문어까정...
결혼식날 폐백음식도 거하게 해주신 친정 어머님... 눈물이 났다. 우리 딸 잘 부탁 한다는 말씀이... 신혼여행이 끝나고 시부모님 아침상 볼것이랑 밑반찬을 준비해 시댁까지 데려다 주시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울먹이시던 친정 부모님 ! 그때까정 씩씩하던 나!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전쟁이다. 암으로 투병중이신 시어머님 병간호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병원을 집보다 더 자주 다녀 오셨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시는 날도 있었고, 어쩌다 혼절 하시는 날에는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아프신 시어머님 병간호 힘들었다. 죽을 만들다 시누에게 야단도 많이 들었다. 가정 교육이 엉망이라며... 많이 배워야겠다고 혼이났다. 죽을 몇 번이고 다시 끓이고 끓이고... 힘들었지만 내곁엔 사랑하는 님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건 가혹한 현실뿐... 나보다 한 살 많은 시누는 우리방에 전세를 줬는지 늦게까지 와서 텔레비전 보다 잠들기전에 돌아갔고, 어쩌다 분위기 한번 잡으려면 시아버님 화장실 가시며 기침 하시는 소리에 놀라 차렷! 더운 여름날 짧은 반바지도 입지 못했고 아기가 생겼다. 허니문 베이비였다. 유난스런 입덧에 돼지고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나!
울 시아버지 돼지고기를 매번 사다 주시며 나를 괴롭게 했다. 으엑... 입덧도 유별나다며 친정으로 임신휴가를 얻어 떠나던 날 자유가 이런거구나...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시어머님의 입원으로 자유는 끝이났다.
결혼 한달만에 신랑 입원, 시어머님 입원, 친정 어머님 입원해 우울한 나날들이었다.
두분의 어머님은 큰 암수술을 하셨고, 남편도 오랫동안 병원에 있었다. 사이좋게 밥을 나눠 먹는 시부모님과 남편의 모습이 참 쓸쓸하게 보였다. 나는 남편 간호에 시어머님 심부름에 진작 아프신 친정 어머님은 돌봐 드릴수가 없었다.
그후 시아버지 생신날 7개월이 조금 넘은 배 부른 아줌마는 8남매의 친지 분들 음식 만들랴, 심부름 하랴 하루종일 종종 걸음을 걸었다. 친지 분들 다 돌아 가신 다음 배가 아팠다. 조기진통이었다. 병원을 오고 가며 힘든 고비를 넘겼다. 그중에 시어머님께서는 혼절 하시는 날들이 많았고 절대 안정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당부에도 나는 바늘방석이었다.
결국 건희 놓기 한달전 시어머님께서 돌아 가셨다. 만삭인 나 영안실에서 쫓겨났다. 시어머님께서 유언을 하셨다. “ 건강한 아기 낳으라고...” 나는 맏며느리였지만 죄인이 되었다.
시어머님 가시는 길도 지키지 못한... 건희가 태어나고 시어머님 산소에 인사 드리러 갔던 날 참 많이 울었었다. 앞으로 아버지 잘 모시고 집 나간 도련님 돌아오면 잘하겠다... 아무걱정 하시지 말라고... 좋은 맏며느리 되도록 노력 하겠다고 시어머님께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