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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인영
남편이 빚을 4천만원이나 졌어요. 그런데 해결할 생각도 안 하고 있어 답답합니다. 제가 공장이라도 나가겠다고 하니 3교대 하는 직장은 안 된다고 하며 말리네요. 아무 대책도 없으면서… 속 터져서 가게 가서 소주 한 병 사다가 먹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연히 남편의 메일박스를 보게 되었어요. 나 아닌 다른 여자와 주고 받은 연애 메일을 보는 순간 머리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견디기 힘들어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며 술로 시간을 달래고 있습니다.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늘도 아줌마닷컴(www.azoomma.com)의 ‘나 너무 속상해’ 방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줌마들의 힘든 삶이 조각 조각 드러나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 술의 힘을 빌어 글을 쓰고 있는 이들도 만난다.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혼자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때로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을 통해 서로 술잔을 건네며 서로의 삶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이 방이 가장 아줌마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서로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술은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기도 하고 때로 용기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 망각이 되어 고통을 덜어 주기도 하는 신비한 묘약이 아닌가 싶다.
어릴 적 내 아버지는 막 노동을 하셨다. 다 저녁이 지나 옷은 전부 시멘트 투성이가 되어 돌아오신 아버지는 늘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런 아버지의 어깨 위에는 5남매의 가장이라는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무겁게 얹혀져 있었다. 아버지는 보통 기분 좋게 술을 드시는 편이셨지만 때로는 술의 힘을 빌어 무서운 아버지가 되기도 하셨다. 극성맞은 네 딸과 막둥이 아들이 합세하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지 말 것을 몇 번이고 권유했지만 말씀만 ‘그래, 그래’ 하실 뿐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친척 어른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에 술의 힘을 빌지 않고는 그 힘든 시간을 견뎌내기 힘드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야 말로 술의 힘을 빌어 하루 하루 살아내고 계신 것이라고….
그 이후부터 나는 아버지에게 감히 술을 끊으시라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가끔 주무시는 아버지의 머리 맡에서 아버지의 다 갈라 터진 손 마디를 만지고 또 만지곤 했었다. 어서 자라서 아버지의 어깨를 가볍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아버지께서 96년도에 간암 말기, 6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통보 받았다. 아버지는 그 이후 술과 담배를 모두 끊으시고는 어머니의 각고의 노력으로 식이요법과 병원 치료를 병행하여 지금 현재 완치되어 생활하고 계신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병마와 싸우시던 그 동안 나는 아버지의 술 취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는데 그게 또 그리 마음이 아프고 서운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여도 예전의 술 마시고 웃고 즐기는 그런 분위기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싫던 아버지의 술 취한 모습이 그 때는 왜 그리 그립던지….
더 이상 술의 힘을 빌 정도로 힘든 일은 하시지는 않지만 또 다시 약주를 시작하신 아버지… 출가한 나는 가끔 전화로 전해 듣는 아버지의 술 취한 목소리를 들으며 내 가슴이 훈훈해 짐을 느낀다.
인터넷에서 만나는 우리 아줌마들은 가끔 사각 모니터를 통해 서로에게 술잔을 권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같은 시각 곳곳에서 사각 모니터를 술상으로 술잔을 기울여 건배를 외치기도 한다. 난 개인적으로 술이랑 친한 친구는 못되지만, 술은 때로 우리 인생의 힘든 짐을 덜어주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아버지에게 있어 ‘술’이 육체의 고통을 덜어주는 힘이 되었다면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아줌마들에게 있어 ‘술’은 그들의 황폐한 마음을 달래주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술 마시는 내 아버지의 목소리를 사랑하듯 술 마시는 우리 아줌마들의 이야기들을 가슴 속에 따뜻하게 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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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zoomma.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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